양진초도 반대 서명운동.. '학력저하대책없이 밀어붙인 교육당국의 자충수'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서울교육청이 혁신학교 공모를 29일부터 시작하지만 신청을 타진하던 일부 학교들이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강남의 대곡초의 경우 혁신학교 신청을 위해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갔지만 결국 좌초됐다. 학부모들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집단행동까지 나선 결과다. 마찬가지로 강남 소재 개일초도 혁신학교를 신청하려 했지만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포기했다.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학교들이 혁신학교 신청을 학부모들이 거부하는 사태가 확산되면서 2022년까지 혁신학교 비율을 2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서울교육청의 계획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현재 213곳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 전체 고교 가운데 16%를 차지한다. 그동안 교육청 주도로 혁신학교 확대가 가능했지만 지난해 말 송파구의 신도시급 재건축단지 헬리오시티의 혁신학교 지정 논란 이후 학부모들의 반대여론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교육당국이 '학력저하'에 대한 현장의 우려를 외면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이미 수요자들의 항의가 지속되면서 고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기 어려워진 상태다. 대신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으로 눈을 돌린 듯하지만 그마저도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당국이 스스로 불신을 키웠기 때문이다. 교육공무원들도 자녀를 혁신학교로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 드러난 데다 혁신고교들의 학종실적도 부진이 거듭되고 있다. 최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학생들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늘어나면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도 불안감이 번진 양상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혁신학교 확대와는 무관하다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학력저하 자체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 내비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이 혁신학교 공모를 29일부터 시작하지만 신청을 타진하던 일부 학교들이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학교들의 혁신학교 신청을 학부모들이 거부하는 사태가 확산되면서 2022년까지 혁신학교 비율을 2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서울교육청의 계획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잇따른 철회’ 서울 혁신학교.. 대곡초 개일초 ‘신청계획 취소’>
최근 서울교육청의 혁신학교 공모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 학교들이 신청을 검토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29일부터 내달 7일까지 신청한 학교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혁신학교를 지정할 계획이다. 최근 강남에 위치한 대곡초와 개일초가 혁신학교 신청을 추진했으나 불발됐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집단시위까지 예고하며 갈등이 격화되자 두 학교 모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광진구의 양진초에서도 학교의 혁신학교 신청에 대한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대곡초는 혁신학교 신청을 위한 안건을 학운위 심의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교사 53명을 대상으로 지난 7일 진행했던 찬반 투표에서는 92.4%가 찬성해 학운위 안건 상정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의 경우 교사나 학부모 중 한 집단에서 50%이상의 동의를 받은 후 학운위 심의를 거쳐야 신청 가능하다. 그렇지만 14일부터 학부모들이 공식적인 반발 움직임이 시작됐다. 16일엔 집단시위까지 벌어지자 다음날인 17일 대곡초는 교장과 학부모들은 긴급회의를 통해 혁신학교 신청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곡초와 같은 강남에 위치한 개일초도 혁신학교 신청을 추진했지만 16일 철회했다고 밝혔다. 본래 17일 혁신학교 설명회를 진행한 후 23일부터 3일 동안 학부모를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대곡초에서 학부모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설명회 일정은 물론 모든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진구 소재 양진초의 경우 14일 혁신학교 찬반 의견을 묻는 가정통신문 보냈지만 곧바로 학부모들이 항의에 직면했다. 학부모 200여 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며 향후 진행과정에 따라 시위까지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헬리오시티 혁신학교 논란.. ‘1년 유예’ 예비혁신학교 지정>
지난해 말 서울교육청이 송파구 재건축단지 헬리오시티에 있는 가락초와 해누리초중의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했을 때도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셌다. 가락초는 2014년부터 휴교상태였지만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한 올해 3월부터 다시 개교했고, 해누리초중은 서울의 첫 초중등 통합운영학교 문을 연 상태다. 당초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신설학교에 대해 혁신학교 임의지정 해왔던 관행을 들면서 강행하려는 의지를 내비쳤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이 단체민원을 제기했을 뿐 아니라 교육청 앞에서 반대시위도 이어가면서 결국 세 학교를 ‘예비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예비혁신학교는 우선적으로 약 1000만원 정도의 예산과 교육연수 등을 교육청이 지원한 후 1년간의 운영성과를 토대로 학교 구성원들에게 혁신학교 전환여부를 다시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혁신학교 전환 기준이 일반학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아 교사 또는 학부모 가운데 50% 이상이 동의하면 가능하다. 1년 후 다시 교사를 중심으로 혁신학교 추진을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 예비혁신학교가 혁신학교 지정을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배경이다. 서울교육청이 혁신학교 도입의 이유에 대한 설득은 생략한 채 학부모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단편적인 방안을 내놨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신설학교는 일반학교와 달리 혁신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혁신학교 지정여부를 결정한다. 가락초와 해누리초중처럼 운영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교육감에게 결정권한이 위임되는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당시에도 서울교육청은 사전 수요조사를 위해 입학 예정자인 학생명단은 받았으면서도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단체청원과 반대의견을 제기했던 학부모들의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회 관계자는 “허울뿐인 운영방침과 교육감 개인의 취향에 따른 권력 행사로 인해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육 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력저하 우려’ 학부모 반발..  ‘교육부는 외면’>
다수의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발표된 2018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중고교 모두 수학과 영어에서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수조사가 진행됐던 이전의 시기에도 혁신학교들의 학력저하가 명백하게 확인됐던 만큼 지난해 전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하락이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감까지 고조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뚜렷한 설명 없이 혁신학교 확대가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늘어난 것과 연관성이 없다고만 밝히면서 논란을 자초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동안 전수평가를 통해 공개됐던 혁신고교의 학업성취도는 일반고에 비해 확실히 뒤쳐졌다. 가장 최근 전수조사로 실시됐던 2016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미달인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였다. 전국 고교평균이 4.5%인 것에 비해 학력저하 현상이 두 배 이상 높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혁신학교의 보통학력이상 비율도 59.6%로 전국 평균인 82.8%을 크게 밑돌았다. 반면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기초학력 비율은 28.5%로 전국 평균 12.7%의 2배 이상이었다. 기초학력미달을 포함한 기초학력 이하 학생이 40.4%이었던 셈이다.

학력저하는 특정 지역과 시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보통학력이상 비율이 2014학년 69%에서 2015학년 67.9%, 2016학년 59.6%로 꾸준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전국 평균이 2014학년 85.2%에서 2015학년 81.8%로 줄어들었다가 2016학년 82.8%로 다시 반등한 것과 대비된다. 혁신학교와 전국 평균간 격차도 2015학년 13.9%p에서 2016학년 23.2%p로 대폭 늘어났다. 한 과목을 기준으로 봐도 지역별 자료에서 지속적인 하락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수학의 경우 서울은 2014학년 64.6%, 2015학년 61.1%, 2016학년 57.7%으로 꾸준히 낮아졌다. 경기도 역시 2014년 72.8%, 2015년 69.2%, 2016년 60.5%로 하락했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현재 표집조사로 전환되면서 학생들의 구체적인 학력현황을 파악할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지난해의 평가결과만으로도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교육전문가는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의 지원방안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혁신학교 확대 등 기존의 정책에 의한 영향력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학업성취도 평가 자체를 문제 삼았다. 기초학력미달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내놓지 못했으면서도 혁신학교만은 아니라고 확답한 명확한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최근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기초학력미달 학생의 비율은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증가세를 보인다. 혁신학교 확대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된 시기와 맞물리는 것이다.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확한 분석은 생략한 채 학력저하와의 연관성만 부정하는 교육부의 태도는 불신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론 찾기 급급한 교육당국 .. ‘학부모 현실은 무시’>
특히 학부모와 교육당국의 현격한 시각차는 계속 문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학력저하 지적에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낸 이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같은 내용을 인용하며 혁신학교 확대정책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의 분석을 위해 통제한 상황이 실제 학부모들의 체감하는 현실과는 다르다는 점이 지적된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이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를 ‘정쟁식 공방’으로 규정하면서 편향성에 대한 논란까지 제기된 상태다.

연구진들은 국어 수학 영어의 성취도 점수와 함께 수업참여도 교우관계 학교만족도 등의 정의적 특성도 종합해 분석을 진행했다. 통상 학력저하를 따질 때보다 평가항목을 늘린 셈이다. 학생의 종단연구를 수행해 비슷한 조건의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학생들의 입학시점과 졸업시점의 성적을 비교한 특징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자료를 기준으로 중3, 고2 시기의 자료를 연계한 종단자료를 다양한 모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혁신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일반학교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국어 수학 영어의 성취도 차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에서는 혁신학교가 정의적 영역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됐다고도 덧붙었다.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같은 연구진의 결론이 현장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연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셈이다. 현장에서 우려하는 ‘학력저하’ 문제에 대해서는 일종의 논리적인 반박이 가능한 결과이기 때문에 유은혜 장관 등 정부당국자들이 인용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같은 결과를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일반학교와 큰 차이가 없는 만큼 굳이 혁신학교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들은 정의적 영역에서 차이를 보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간의 학력저하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점이 맞지 않는 반론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정의적 특성은 혁신학교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도 높일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통제된 연구진들의 실험결과가 수요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자녀들을 당장 학교로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입장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10년간 수업과정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쌓이면서 혁신학교가 현실적인 학교운영의 방안이기보다는 단순한 이념에 그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 교육전문가는 “수업의 질은 성과로 판가름 난다. 혁신학교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라는 명목아래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고 학습부진 학생의 지도를 위해 방과후 학교프로그램이나 수준별 학습자료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지금과는 평가가 달라졋을 것”이라며 “혁신학교를 무리하게 추진해오다가 교육수요자들의 신뢰를 잃은 만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학부모들의 우려에 대해 논박한다고 해서 지금의 혁신학교 확대정책이 지지받을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에는 혁신학교 정책의 수정이나 폐기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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