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리더] 하나고 김진성 교장

교육철학 확고한 구성원의 헌신이 일군 ‘드림 스쿨’
재단전입금 한 해 30억 모두 교육에 투자 … ‘귀족학교’ 오해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하나고는 올해 실적으로 자사고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첫 졸업생을 배출하며 ‘두 명에 한 명은 SKY’라는 ‘꿈’ 같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감탄하는 꿈을 이뤄냈지만 김진성(60) 하나고 초대교장이 바라는 꿈은 대입실적 너머에 있었다. “좋은 교육의 성취가 입시실적에 반영된 것이지, 입시를 목표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 자율을 토대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좋은 교육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적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궁극적으로 국가발전이라는 교육의 성과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첫 실적으로 급부상의 신화를 만든 하나고에서 오히려 대입실적 너머를 겨냥하고 있는 김 교장의 ‘드림스쿨론’을 들어보았다.

하나고의 첫 대입실적으로 김진성 교장은 ‘하나고 신화’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하나금융그룹의 학교라는 배경 때문에 쏟아지는 의혹과 비난에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하지만, 입시교육이 아닌 ‘행복하고 정직한 교육’이라는 가치관을 밀어붙여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냈다. /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news.kr

<계산기 두드리지 않는다>
첫 졸업생이라 재수생 없이 실적이 투명하다. 200명의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SKY에 합격했다. 서울시내 주요대학 외에 포스텍 KAIST UNIST에도, 경찰대와 사관학교에도 합격생을 냈다. 국제반을 운영하지 않는데도 Cambridge Oxford Caltech 등 해외 명문대 합격생도 배출했다. 유명대학뿐 아니다. 졸업생 한 명은 명문대 진학을 택하는 대신 소신대로 대기업 사내대학인 대우조선해양중공업사관학교에 입사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올 봄 언론들은 하나고에 대해 칭찬일색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지 않고도 학력과 인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공교육의 롤모델이라며.

하나고의 실적은 짙게 드리워진 교육풍토의 그림자를 딛고 일어선 대단한 역경극복의 사례라 할만하다. 하나고는 개교준비 당시부터 유명세를 치러왔다. 대기업 하나금융그룹이 세우는 학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았고, 1인당 연간 1295만원이라는 학비는 ‘귀족학교’라는 꼬리표를 달아놓았다. 특유의 교육프로그램은 재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입시와 무관한 교육’이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으며, 괄목한 대입실적까지 ‘서울권 인재들을 흡수한 선발효과’라 폄하되기도 한다. 하나금융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고와 연결되어 불편하고 낯선 곳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김진성 하나고 교장은 학교 밖 얘기에 동요하지 않는다. 올해로 개교 4년 차. 내성이 생긴 걸까. 귀는 열어두되 가치관을 흔들진 않는다. “지나고 나니 입시만을 목표로 교육했더라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냈을 거라는 게 보인다. 수시에서 성과가 많이 나니 ‘하나고가 수시맞춤교육을 했다’는 기사들이 나기도 하던데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입시맞춤 교육을 하지 않아 그간 학부모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고, 실제로 수능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불합격한 학생들까지도 나왔다.” 경제학 박사인 김 교장이 계산기를 잘못 두드린 것일까.

하나고가 이번에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배경에는 입시와 무관해 보이는 교육프로그램 운영이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무학년 무계열이라는 학생주도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학생 스스로 필요와 능력에 따라 설계한 개인별 맞춤 시간표가 작성된다. 교과는 일반교과부터 심화, 전문 교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개설되어 있다. 전교생이 1인1체육, 1인1예술을 의무적으로 선택해 수련하고 매 학기 발표회를 갖는다. 매년 외국 학생들을 초청해 특정 주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명사특강과 인턴십프로그램으로 진로설정에 도움을 준다. EBS교재를 끼고 있는 여느 고교의 모습은 아니다.

배경은 교수 출신 김 교장의 교육원칙에 있다. 교육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데서 교장과 교수는 공통분모를 지니지만, 환경은 엄연히 다르다. 고교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깨부수는 데 어쩌면 교수 출신이라는 이력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김 교장은 “정직한 교육”을 주장한다.

“교육체제가 어긋나있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 내신을 위한 교육이 있고, 수능을 위한 교육이 따로 있는 아이러니한 구조는 교육을 통해 소질과 끼를 발견해 열정을 갖게 하고 꿈을 찾도록 도와주자는 구호와는 상반된다. 실적을 낸다는 학교들을 보라. 고2 때까지 고교 3개년의 교과과정을 모두 마치고 고3 땐 수능준비에 몰두한다. 수능준비라는 게 ‘틀리지 않는 연습’에 불과하다. EBS교재에서 수능지문의 70%를 출제한다는 방침은 한두 문제 틀리면 대입에서 미끄러지는 구조를 낳았고, 사고력과 창의력 대신 암기력을 신장시키는 게 교육이라는 이상한 결과를 야기했다. 사교육비 절감의 취지와 수준 높은 강의는 존중하지만, 교재를 반복적으로 학습해 암기에 이르게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소모적인 입시경쟁에 불과하다. 어른들부터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김 교장이 “하나고가 실적만 노리고 교육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말한 배경도 바로 이 불편한 진실에서 비롯한다. “처음엔 몰랐다. 암기위주로 받아먹는 데 익숙한 교육환경은 우리에게도 큰 문제였다. 하나고 아이들도 첫 시험 볼 때 과외선생을 학교 주차장에 데려와서 과외를 하기도 했다. 현재 교문을 통제하고 있는 이유다. 방과후수업에 수능관련은 개설하지 못하게 했고, 이미 수업시간에 진행한 것을 반복하는 것도 학습부진의 경우가 아니라면 역시 못하게 했다. 정규수업에 없는 걸 개설하라 했더니, 그것이 불편한 것이었고 교장이 이상한 것이었다. 첫 신입생이 2학년2학기를 맞았을 때에서야 알았다. 하나고 내신은 수행평가 기준이 높게 설계되어 있고, 수능문제풀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수능준비 시스템에서 보면 낭비인 셈이다. 활동보다 시험 보는 걸 잘하는 아이들에겐 시험 잘 보는 걸 더 잘 보도록 방과후수업에서 선택해 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평소 ‘시합에서 성과를 내려면 운동을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하니, 체력을 키우는 데 힘쓰겠다’고, ‘우리학생들이 시합에 나가서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나고 학생이 수능최저등급을 못 맞출 줄은 몰랐다. 학교 내에서 준비한 것과 시합 나가서 경기를 뛰는 건 다른 얘기였다. 시험 잘 치르는 훈련도 필요한 시스템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 것은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원칙의 말뚝을 어디에 박을 것인가>
‘원칙고수’의 가치를 실현시킨 김 교장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입시실적이라는 수치로 평가될 대상이 아니라 성장가능성에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라 강조한다. “하나고 아이들은 활동을 많이 하지만 공부도 잘한다. 기본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선발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하고 싶은 얘기는 선발된 학생뿐 아니라 전반적인 아이들의 수준을 어떻게 높여갈 것인지의 고민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선 전무한 것 같고, 할 수 없이 특수한 학교들을 만들어 본을 받게 만들려 하는 것 같은데, 본을 받기도 전에 이런 저런 연유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학교가 잘했다 못했다 하는 판단은 역시 그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고등학교가 대학진학률을 갖고 성과를 평가 받듯, 대학도 취업률을 갖고 평가 받는 상황이니 취업률을 조작하는 병폐도 불거지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인식의 문제다. 평가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취업률만이 아니라, 졸업한 지 20년 된 자의 연봉까지 고려하는 등과 같이 다양한 지표들이 활용되고 좀더 정확한 데이터들을 축적해서 평가해야 한다. 굉장히 단순하게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재단의 경제적 뒷받침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하나고가 ‘귀족학교’라며 사회적으로 눈총을 받은 근거는 비싼 학비다. 작년의 경우 학생 1인당 학비가 1295만원이었다. 하지만, 이중 기숙사학교이기 때문에 소요되는 급식비(3식) 기숙사비 등 수익자부담교육비가 연간 760만원이었다. 등록금(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은 1인당 연간 535만원. 장학금으로 1인당 연간 225만원이 지급되니 실질적으로 비용은 생각보다 크게 적다. 여기에 학생 1인당 연간 500만원에 해당하는 재단전입금이 투입된다. 전국단위 자사고의 재단전입금은 등록금의 20%로 법제화되어 있다. 하나고의 학교법인은 의무전입금 6억4600만원의 4.6배인 30억1600만원을 지난해 학교에 쏟아 부었고, 매년 전입금은 30억 수준이다. 김 교장이 “표면적으로 총액만 따졌을 땐 비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다.

“비싸면 다 ‘귀족’이란 단어를 붙이는 건 문제다. 비싸다는 것의 기준을 생각해보자. 좋은 교육을 한다는 건 돈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정말 귀족들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고가 추구하는 건 ‘경제적인 능력과 관계없이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하나고에 들어온 이상 경제적인 문제는 학교가 부담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다. ‘귀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경비가 많이 드는 학교라는 것으로만 사용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굉장히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하는 단어라는 사실이다. 다른 학교에는 재벌 아이들도 다닌다 하던데 하나고엔 그런 애들이 없다. 초점은 하나고의 학생분포를 봤을 때 국내 평균소득 대비 잘 사는 집 아이들도 있지만 더 어려운 집 아이들도 있다. 하나고의 경우 법정 경제적배려대상자가 20명(사회적배려대상자 40명 중 50% 이상을 경제적배려대상자에 한해 선발)이지만, 배려대상자로 지정되어 있는 사람보다 더 어려운 ‘비지정’ 사람들이 있다. 제도를 몰라서 지정을 못 받는 집도 있고, 아이가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싫어 신청을 안 하는 집도 있다. 하나고는 그런 사실까지 파악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확인된다면 기숙사비까지 지원한다. 동일한 교육철학을 지닌 재단이 해마다 의무전입금의 5배 가까이 되는 30억 가량의 전입금을 납입해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귀족학교’라는 개념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옳지 않으므로 고쳐야 한다고 본다.”

학교구성원들의 마음을 한데 뭉치게 하는 일도 좋은 교육을 유지하는 토대다. 하나고엔 30대 중후반의 젊은 교사들이 부장자리에 앉기도 하고 나이든 교사들이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작년부턴 밴드부 등 교사동아리 활동도 활성화하고 있다. 학생도 교사도 즐거운 학교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교직사회라는 데가 아주 뾰족한 피라미드를 형성하고 있다. 부장을 단 다음엔 교감, 그 다음 교장이 전부다. 승진을 목표로 학교에 몸담는 교사들은 아니지만, 동기부여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 개선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고에선 보직을 돌아가면서 한다. 1인2기 후 저녁 7시 이후 방과후수업도 교사들이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회식자리 한 번 만들기가 힘들다. 교수시절에 말로만 들었지 직접 와서 보니 열정이 없다면 하기 힘들 정도로 바쁜 업이 교사더라. 열정을 다하는 교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냉엄한 현실 외면 말라>
첫 졸업생을 낸 하나고가 유난히 서울대 합격생, 그것도 일부에선 준비방법을 알 수 없어 ‘로또’라 칭하는 서울대 수시합격생을 많이 낸 것에 대해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고의 교육수준이 증명되지도 않아 의심스럽다는 시각 한편엔 도대체 하나고의 어떤 면이 좋은 성과를 낸 원동력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존재한다.

김 교장은 “확인은 못하겠지만 하나고의 차별화된 교육내용에 신뢰감을 가진 듯하다”고 말한다. “어떤 학생을 선발할지 고민하는 건 고교나 대학이나 마찬가지다. 서울대에 하나고 프로파일을 보냈고, 간담회도 가졌다. 서울대 입학처는 고교에 방문해 설명회를 하지는 않지만 입학사정관제를 제대로 시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관계자들이 하나고의 교육내용을 확인하고 놀랐다 하더라. 프로파일에 표방한 것을 직접 할 줄은 몰랐다고. 관점의 차이이긴 하지만 하나고는 대입에 맞춰 교육과정을 운영한 건 아니다. 최소한 ‘바른 교육’ ‘좋은 교육’이라 생각한 것이니 그걸 교육철학으로 밀고 나간 거고, 대학측에서 원하던 것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결과가 좋았다고 본다.”

같은 철학을 가진 재단의 지원도 큰 힘이다. “교육이든 사업이든 잘 만들려면 돈이 들어간다. 제품도 가격이 비싼 건 거품이 낀 경우도 있겠지만 정상적이라면 잘 만든 제품이라고 보는 게 바른 일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이 들어가면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생각이다. 기업이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적극 동의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학교운영이 비정상적으로 나갈 우려가 있다. 교육이라는 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만일 사립학교가 나름의 특성을 살려 하길 원하고, 그게 사회적 발전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그 길을 열어주는 게 옳은 일이라 본다. 그런 차원에서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김 교장의 발언은 최근 대기업들의 학교설립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새겨 들어야 한다. 삼성(충남 아산 2014년) 포스코(인천 송도 2015년) 현대(충남 당진 2015년) 한수원(경북 경주 2015년)이 학교설립에 뛰어들며 공교육계에 대대적 자금유입이 예상된다. 삼성의 출연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김 교장은 “우리나라에도 건실한 사학이 나타나야 한다. 대기업들이 무절제하게 학교를 사업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본다”며 “다만 기업에도 교육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금력만으로도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없다. 말로만 다양성을 얘기할 게 아니라 정말 생각이 다른 교육기관들이 만들어져서 학교간 차별화를 기해야 할 것이다. 재단이나 교장이나 고민 없이 ‘실적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면 결국 실적마저도 안 난다. 학교설립이나 교육목적 방향은 정확하게 가지고 있고 나름의 철학이 근간이 되어서 운영된다면 좋은 학교가 많이 생겨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대기업의 학교설립은 공익사업으로만 볼 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불거진 대기업 학교에 대한 대표적인 사회적 불만이 ‘직원자녀 쿼터’ 문제다. 포스코의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인천하늘고는 직원자녀학교라는 인식에서 불편하다. 포철고는 정원의 60%, 광철고는 정원의 70%, 하늘고는 정원의 44%를 임직원자녀로 선발한다. 김 교장은 “학교설립의 배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이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포철고의 경우 새로 공장이 들어설 허허벌판에서 시작했다. 직원의 자녀교육이 가장 큰 문제였으니 당연히 포철고 설립의 목적도 직원자녀 교육인 게 맞다. 나름의 이유를 인정해야 한다.”

학교는 분명 이윤추구 집단은 아니다. 다만 좋은 교육에는 상당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외면에서 나오는 사회적 오해는 결국 학교운영까지 왜곡시키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나고의 경우 임직원자녀전형 20%를 갖고도 말이 많다. 공익적인 사업 아니냐는 얘기들이 있는데, 좋은 학교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자. 일부 자사고들의 운영이 힘든 이유는 자금력 부족 탓 아닌가. 경제적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 많아지는 게 교육이다. 학교를 설립 할 땐 엄청난 비용이 투입된다. 하나고에도 초기에 600억원 가까이 들어왔다.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누군지를 생각해보자. 금융그룹이 학교를 설립한다면, 금융그룹에서 얻은 수익을 가지고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수익을 창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 돈을 왜 거기에 주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이익이 조금이라도 돌아가야 일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법칙이 있는 건 아니고 사회적 인식이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 역시 사회적 여론에 반해서 기업의 입장만 취해서도 안 된다.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시작할 때 상황이 진행되어가며 변질되는 일이 많다. 처음 시작할 때의 생각을 무시하면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룰 위반의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재된 불편함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본다.”

하나고는 최근 ‘강남3구 제한’ 조항 때문에 역차별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간 잠잠하다 올해 실적이 나자 새삼 불거진 문제인데, 강남 서초 송파 출신을 정원의 20% 내에서 선발한다는 입학규정 때문이다. 김 교장은 역시 설립초기의 배경에 따른 문제로 설명했다. “강남3구 제한은 실질적으로 거주지에 따라 입시에 영향을 준다는 데서 원칙적으로 맞지 않다고 분명히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이 문제를 참 의아하게 생각했다. 당시 강남북간의 격차해소를 통한 균형발전이 중요한 이슈였다고 한다. 서울시는 자사고를 유치하면 인재유출을 막을 수 있겠다 생각했고, 강북이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교육상황이 열악하니 강북에 세우자는 결론을 냈다. 강북에 두 개의 학교를 세우려 했지만 지원자가 없어 하나만 설립이 된 것이고,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요구가 워낙 강해 강남3구 제한요항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당시엔 사회적으로도 문제제기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문제로 제기되는 건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뀌고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계약변경은 학교가 원한다고 할 수 없고 합의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떤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핍이 피우는 성장의 꽃>
김 교장은 비록 실패라 할지라도 경험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김 교장 역시 실패의 경험이 많다. 초등학교 편입은 세 차례나 실패했고, 중학교 편입도 한 차례 실패했다. 시험울렁증이 생겨 고교 입시는 생각도 안 하고 동일계 고교로 진학했다. 대입은 두 차례 낙방해 세 차례나 치렀다. 고려대 농경제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Kansas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 Ferris State University 조교수를 지내다 귀국해 교보투자자문 연구위원을 거쳐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와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총무처장, University of Kansas 초빙교수와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방문교수를 지낸 이력. 하나고 신화의 주역이라는 현재와 상반된다.
김 교장은 “입시 하나로 인생을 가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종종 얘기한다. 당시의 나에겐 실패의 경험이 창피했지만 지금은 얘깃거리다. 삶의 경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건 모두 유익할 수 있다.”

김 교장이 고려대 재학시절 경제학에 대한 눈을 뜨고 유학을 생각하게 된 건 당시 서상철 고려대 경제학 교수(서울대 상과대 학사, 하버드대 개발경제전공 박사. 건설부차관을 거쳐 동력자원부장관직을 지내다 아웅산 폭파사건으로 순직) 덕이었다. “당시 ‘족보’ 외워 보는 시험이 일반적이었는데 서상철 교수님께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문제를 내셨다. 경제학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경험은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것이다. 누군가와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지금 학생들에게 나중에 바뀌더라도 지금 관심 있는 진로와 관련한 인턴십프로그램을 권장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김 교장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이다. 김 교장은 피난길에 태어났고, 포목상 회계업무를 보던 아버지를 도우며 경제 경영의 길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삼수를 하고 입학한 대학에선 소심한 성격에 나이 차 있는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고교 경제교사를 하고 싶었으나 농학사 학위 때문에 포기했다. 아버지 회사의 지원으로 아버지께서 건네신 태극기를 품고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고, 유학 이후 국내에 들어와 대학교수가 되는 데도 열 차례 넘게 실패를 맛봤다. “당시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다. 국수를 싫어했다. 가난의 표상 같았다. 아버지께서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치신 덕에 유학을 갈 수 있었고, 고교 때 한 번 대학 때 한 번 장학금 받은 걸 ‘우리 진성이는 장학금 받으며 학교 다닌다’고 평생을 자랑스럽게 말씀하곤 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진심 어린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는 김 교장. 소박한 시골분교 교장의 고백과도 같다. 김 교장이 그리는 ‘꿈의 학교’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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