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유럽역사는 처음이지?
프랑스 영국 독일의 유적에서 만난 민주주의의 시작과 현재

■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여행유영근, 웅진지식하우스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새책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여행’은 사회학을 전공한 판사 아빠가 두 딸과 10여 일에 걸쳐 프랑스 영국 독일의 주요 유적을 답사하면서 나눈 내용을 대화하는 형식으로 담은 역사/정치 교양서다. 마냥 낭만적으로만 보이는 유럽의 유적지를 각각의 장소와 유적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건들의 의미와 유산을 짚어준다. 민중의 손으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을 이룬 영국, 분단의 벽을 부수고 눈부신 번영을 일궈낸 독일… 하나같이 청소년들이 민주 시민으로 자라기 위해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깊이 있게 배우기 어려운 내용이라 책은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출간동기는 현직 부장판사인 저자가 서너 살의 두 딸과 연수시절 유럽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문득 스친 생각에서 비롯한다. “아이들은 궁전에 가면 공주나 왕자가 등장하는 디즈니 만화 같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궁에는 권력투쟁의 역사나 비극적인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매번 실망하곤 한다. 이곳에 담긴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저자는 청소년기에 접어든 딸들과 추억을 더듬으며 역사 현장을 다시 찾는다. 책의 내용은 다시 찾은 유럽 여행에서 딸들과 나눈 3~4년간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책은 우리나라와 한참 떨어진 유럽을 여행하며 나눈 대화이지만, 대화의 내용은 우리나라와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혁명의 현장인 베르사유궁전과 바스티유감옥에서 나눈 첫 번째 대화 주제는 왕이 지닌 절대 권력이 일반 시민에게 옮겨가는 과정이었지만, 이내 아빠와 딸은 사형 제도를 둘러싼 찬반 논란과 최근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두고 토론을 벌인다. 청교도혁명부터 명예혁명까지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로운 혁명 과정을 거쳐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한 영국의 법체계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한 독일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점과 통일의 효용을 따져보며 우리나라의 내일을 그려 보기도 한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권리가 사실은 어마어마한 피를 흘리며 인류가 쌓아온 것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폭군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미국의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은 말했어. 루이 16세의 죽음 이면에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죽음이 있고, 이걸 깨닫는 게 역사와 사회과학 공부의 시작이란다.(36쪽, 1장. 왕은 왜 권력을 잃었나요?)’ ‘영국은 왕권에 대항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오랜 투쟁을 언제나 의회가 주도해 승리해왔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어. 의회는 국민들의 편이라고 믿고, 국가적인 갈등 상황에서도 늘 의회 안에서 대화와 타협 또는 권력투쟁을 통해 가장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왔다는 자부심이 있지. 영국의 의회주권은 자신들이 뽑은 대표, 정치인이나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형성될 수 없어. 의회에서 개별적인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쟁이 영국만큼 치열한 나라도 없어. 그래서인지 국민들도 권력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이 의회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 의회에서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을 수긍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후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쉽사리 흉내 내기 어려운 제도이자 기대하기 어려운 현상이지.(139쪽, 5장. 왕이 있는 민주주의국가, 법이 없는 법치국가가 있어요?)’ ‘전문가들은 한국이 통일만 되면 10~20년 내에 세계 7~8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고, 1인당 국민소득도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전망해. 그리고 최근 아주 설득력 있는 견해 중 하나는, 우리 경제가 구조상 자칫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고, 심각한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생산력의 저하와 복지의 위기가 올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해결책은 통일이라는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지.(290~291쪽, 9장. 분단을 극복하고 다시 통일을 했다고요?)’.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관계자는 “오늘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바로 이 세 나라,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졌다”며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남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저자가 딸과 나누는 대화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원리뿐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쟁점들을 아우르고 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민주주의를 막연한 개념이 아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판단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치로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수시 중심의 대입을 앞둔 수험생은 물론 성인까지 기본교양을 닦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대화형식으로 쉽게 펼쳐져 있어 이해하기 쉽다. 장소에 얽힌 사건을 구체적으로 담을 수 없는 대화체이지만,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 책을 추천한 이계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민주주의의 근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성장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힘들었던 일선 교사나 학부모들께도 소중한 책이 되리라 확신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근원에 대한 자각은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교양이다. 세계사를 익히고, 면접과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든든한 무기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했을 정도다. 책을 읽고 관심 있는 사건을 파헤쳐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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