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보고서 제출거부 가능성..'전면 재검토 요구'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교육청들의 일방적인 자사고 재지정평가 기준 상향에 대한 현장 학교들의 집단반발이 처음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은 최근 공문을 통해 교육부와 서울교육청에 요청한 평가지표 재검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평가를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서울의 자사고들이 집단적으로 ‘운영성과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방안을 고려중인 상황이다. 자사고 재지정평가는 학교들이 낸 보고서를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거부할 경우 평가 자체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서울교육청이 평가지표의 변경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청들이 재지정평가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상향하면서 논란은 이미 커졌던 상황이다. 자사고들은 변경된 기준을 제대로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데다 지표들의 배점도 불리해지면서 재지정평가를 통과하기 매우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통합대상자와 관련된 지표들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일부 교육청들은 평가지표를 다시 수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부의 표준안에 따른 지표들의 불합리한 측면이 다수 있는 만큼 평가대상인 자사고들과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그동안 기준점 상향과 배점 변경에 대한 협의과정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만큼 자사고들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요자들이 입는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재지정평가의 기준 상향으로 고입의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지정평가의 기준이 교육청마다 계속 달라지고 있어 전국단위 자사고들 사이에선 일부 학교로 지원자가 몰리는 ‘쏠림현상’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사고 폐지의 의도가 강하게 읽히는 ‘고입 동시실시’를 밀어붙이면서 지난해 내내 정책을 뒤집어온 교육당국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도 따져보지 않고 동시실시 추진해 고입 혼란을 초래해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월성 교육을 제공하는 자사고를 입시를 준비해온 수요자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폐지하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확산되고 있다.  

교육청들의 일방적인 자사고 재지정평가 기준 상향에 대한 현장 학교들의 집단반발이 처음으로 논의되고 있다.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은 최근 공문을 통해 교육부와 서울교육청에 요청한 평가지표 재검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평가를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자사고 ‘평가거부 움직임’.. ‘운영성과평가보고서 제출 거부’>
지난 20일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 회의에서 재지정평가의 지표수정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평가를 거부하자는 논의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학교들이 내야하는 ‘운영성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서울자사고연합회는 현재 공문을 통해 평가지표 재검토 요구한 상황이다. 13일에는 서울교육청, 14일에는 교육부에 각각 요청 공문을 보냈다. 오세목(중동고 교장) 서울자사고교장협의회장은 “사전예고 없이 일방적으로 교육당국이 기준점을 상향하고 평가지표를 변경한 점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 공문을 제출한 상황이다. 다음주까지도 답변이 없을 경우 다른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의 의견을 모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고 전했다. 

서울 자사고들은 평가기준에 대한 재검토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지정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방침이다. 오 교장은 이를 위해 ‘운영성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밝혔다. 자사고들의 재지정평가는 자사고들이 자체적으로 제출한 운영성과보고서를 바탕으로 서면/현장평가가 실시해 최종적으로 지정취소 여부가 결정된다. 학교들이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재지정평가가 진행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교육청은 평가기준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사고들이 보고서 거부 등의 행동을 할 경우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도 밝혔다.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서울자사고연합회가 집단행동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재지정평가 기준 강화에 대한 현장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교육부와 전북교육청을 상대로 상산고가 여러 차례 시정 요구를 했었다. 전북지역의 기준점이 다른 지역들보다 높은 것이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과 관련된 지표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민사고 역시 재지정평가와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식적인 의견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동산고의 경우 학부모 비대위가 나서 지정취소를 염두에 둔 재지정평가가 불공정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당국이 현장의 반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검토 요청’ 평가지표.. ‘자사고 불리해진 배점 변경’>
서울지역의 자사고들이 교육당국에 평가지표의 재검토를 요청한 이유는 갑작스럽게 배점이 변경되면서 불리해졌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이전까지 자사고들이 점수를 쉽게 얻었던 항목들인 재정/시설여건, 학교만족도, 교원의 전문성 배점을 모두 줄었다. 반면 수정되면서 배점이 오른 지표들은 자사고들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 상황이다. 실제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와 관련된 지표들은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면서 강원교육청과 울산교육청 등은 평가기준을 다시 변경하기도 했다. 교육청 재량지표가 확대된 부분 역시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교육감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킨 변화라는 지적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지표는 사회통합대상자와 관련된 지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함께 마련한 표준안에선 총 3개의 사회통합관련 지표가 있었다. 사회통합 대상자의 ▲선발노력(4점)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8점) ▲1인당 재정지원 현황(2점) 등 총 14점이다. 특히 선발노력이 자사고들의 가장 큰 반발하는 부분이다. 지난 평가보다 배점이 오른 데다가 단순히 충원율을 정량적으로 판단해 점수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매년 자사고들의 사회통합 모집이 미달을 빚어 개선이 어렵고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법적 의무도 없는 사항이어서 부당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교육청마다 사회통합 관련의 배점이 달라지고 있어 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으로도 번지고 있다.

그 밖에 교육부 표준안에는 따른 27개의 공통지표들 가운데서도 합당하지 않은 문제가 많다고 자사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국영수 비율이 50% 미만이어야 만점인 ‘기초과목 편성의 적정성’ 지표는 자의적인 기준으로 자사고들의 운영자율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원 1인당 학생수 비율’ 역시 자사고 입장에서 교사를 증원하거나 학생 정원을 감축해야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자사고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던 간에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해 이를 가급적 억제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해온 방침과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학생전출/중도이탈 비율’도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수 있음에도 예외조항을 없애고 평가기준을 상향해 자사고들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반발이 나온다. 

교육청 재량지표의 배점이 확대되면서 자사고들의 재지정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지표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어 형평성의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수요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더 어렵게 만들어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특히 배점이 10점에서 12점으로 늘어나면서 감사 등의 지적사례로 감점할 수 있는 폭도 최대 5점에서 12점으로 확대된 변화로 자사고들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현장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재량지표의 감점폭이 확대된 변화는 다소 의아하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감사 처분의 대부분이 지참 미숙지나 주의 소홀 등 경미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육감이 배점이 확대되면서 재지정평가에 교육감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고 말했다.

<재지정평가 ‘평가기준 상향’.. ‘자사고 폐지 위한 의도’>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지표의 배점을 변경하고 평가기준을 상향한 목적이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올해 재지정평가를 시행하는 시/도교육청 10곳 모두 기준점이 상향됐다. 지표들의 배점과 평가항목들이 바뀐 부분들도 있어 이전에 통과했었던 자사고들도 올해의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강원교육청이나 울산교육청 등은 일부 지표의 배점과 평가방식을 변경하면서 다소 기준을 낮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전북교육청은 지정취소의 기준점을 다른 교육청들보다도 10점 더 높은 80점으로 올렸다. 전체 42개자사고 가운데 24개교의 평가가 예정돼있는 상황에서 지역마다 기준이 달라지면서 고입 수요자의 혼란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교육계에선 예고 없이 평가기준을 변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5년 단위로 평가가 이뤄지는 만큼 학교들이 이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세목 교장은 “사전예고 없이 평가기준이 상향된 부분이 가장 부당하다고 여겨진다. 기준점 상향 등의 계획이 있었다면 미리 자사고들에게 이를 알려 대비할 수 있도록 절차가 이뤄졌어야 했다”면서 “그 외에도 세부적인 평가항목들이 불합리한 측면도 있었고 지표들의 배점변경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학교책무성 강화와 교육수요자를 위한 정보공개 등을 위해 교육평가를 실시하고 있다는 교육당국의 설명이 무색하다”고 비판했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평가기준이 강화한 방식도 자사고 관계자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제로 평가기준 높일 계획이었다면 평가를 받는 자사고들에게 미리 알려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수순이기 때문이다. 자사고의 한 관계자는 “교육청들은 매년 학교운영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개선할 사항을 미리 논의했다면 지금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 교장도 “교육당국이 입맛대로 기준을 변경해놓고 이전까지 재지정평가가 ‘봐주기 식’으로 진행되어 이를 강화했다고 밝힌 부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전까지 설립취지에 부합하도록 운영하며 평가기준을 잘 지켜왔던 자사고들의 입장에선 황당한 대목이다”고 덧붙였다.

수요자들이 피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단위 자사고들도 평가기준 변경에 따른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평가기준이 다른 상황에서 수요자들은 보다 재지정 가능성이 높은 자사고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강원교육청과 울산교육청이 관할하는 민사고나 현대청운고 등으로 지원자들의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일부 지역의 자사고들의 쏠림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고입을 준비하는 시점인 현재 학생들은 학교선택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이 학교의 특성뿐 아니라 재지정 가능성까지 함께 따져봐야 하는 상황은 바람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혼란의 중심’ 고입 동시실시.. ‘수요자 피해 우려’>
재지정평가의 기준 상향뿐 아니라 고입 동시실시도 정부가 자사고의 폐지를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입에서 자사고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점이 교육부의 명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특목고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과 함께 고입 동시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내용이 당선 후 마련된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면서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자 자사고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현장에서 갈등이 심화되면서 수요자들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입 혼란이 빚어지면서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섣불리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논란의 중심이었던 고입 동시실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전국단위 자사고 이사장과 학생 학부모들이 고입 동시실시와 이중지원 금지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의 결론이 곧 나오기 때문이다. 헌재가 헌법소원에 대해 위헌을 판단할 경우 고입전형은 전기고와 후기고 선발체제로 회귀한다. 특목고와 자사고들은 이전처럼 전기모집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합헌 결정이 난다면 고입 동시실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특목고 자사고들은 일반고와 함께 후기모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정책으로 상황을 이렇게 만든 교육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헌법소원 공개변론에 자사고 측 변호를 맡은 김용균 변호사는 고입 동시실시로 인한 지원자의 불이익이 자사고 기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등권과 사학 운영의 자유, 학교선택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점도 언급했다. 반면 교육부의 대리인은 고교서열화를 완화하기 위해 자사고에게 주어진 특혜를 정당하게 제한한다는 입장이었다. 학생선발 시기가 달라질 뿐 학생선발권이나 학교선택권에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자사고가 우선선발권을 토대로 우수 학생을 선점해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꾸리고 고교서열화와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고입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당시 위헌다툼이 이어지는 상황 자체를 꼬집었다. 지난해말 고입 동시실시 방침이 공개된 이후 원서접수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고입정책이 무수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중지원 금지방침에 지역별로 일반고 배정방법이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6월 헌재판결로 이중지원이 허용되면서 수요자들의 혼란을 다시 낳았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결론마저 나지 않고 올해 입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수요자들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예측 어려운 ‘안갯속 고입’.. 교육당국 ‘정책뒤집기 빈발’>
실제로 그동안 교육당국은 고입 동시실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정책이 여러 차례 뒤집히면서 수요자들의 혼란을 확대해왔다. 2017년 말 교육부는 2019고입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후기모집을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했다. 그에 따라 2018학년까지 8~11월경 전기모집을 실시했던 자사고 등은 지난해 12월 일반고와 동일한 후기모집으로 바뀌었다. 당초 교육부는 고입 동시실시와 함께 이중지원도 금지했다. 후기모집에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반고 중 1곳만 지원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불합격할 경우 미달된 일반고에 지원해야 되는 상황이 우려되면서 고입재수 논란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와 일반고의 중복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이중지원은 유지될 수 있었다. 헌재 재판관은 “2019학년 고교 입학전형 실시가 임박한 만큼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고 효력정지 이유를 밝혔다. 헌재 결정에 따라 교육부는 자사고는 물론 외고 국제고의 이중지원 금지방침을 철회했다. 자사고 등에 지원하는 학생도 2개이상의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 협조를 요청했다. 헌재가 교육정책에 있어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우선된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대목으로 분석된다.

반면 서울행정법원은 ‘고입 동시실시’에 대해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학교법인 22곳이 서울교육감을 상대로 낸 ‘2019학년 서울 고교 입학전형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학교법인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기본계획의 핵심의 자사고의 전기 선발권을 박탈하고, 일반고와 중복지원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일반고와의 이중지원은 6월 헌재 가처분신청 인용과 이에 따른 교육부 방침으로 행정법원의 판결 이전에 결론이 났다. 서울 자사고의 행정소송은 패소했지만, 전국단위 자사고 법인이 낸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고입의 지형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독단’이 문제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무리한 정책이 일관성마저 유지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혼란으로 수요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한 채 실현될 가능성을 제대로 타진해보지 않고 어설픈 정책을 내세웠다가 뒤집히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장갈등은 심화되고 혼란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수요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폐지하지 말아야.. ‘사교육 유발 아닌 억제 역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사고 폐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가 엄연히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목자사고가 일반고들의 학교운영에 있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롤모델 역할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등성’의 가치만을 강조한 정책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자사고들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정부를 포함한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자사고들의 선발방식에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거꾸로 사교육으로 흐를 수 있는 수요를 공교육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반고 롤모델’ 역할을 하는 특목고와 자사고들도 있는 만큼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로 출발한 특목고와 자사고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면서 다른 일반고들이 벤치마킹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 관계자는 “자사고는 2002년부터 평준화 교육을 보완하고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도입됐으며 이후 정부들도 계승해왔다”면서 “더욱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창의성과 자율성 등이 부각되는 미래교육 환경을 감안할 때 앞으로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을 조화롭게 추구해나가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감들이 일방적으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키려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사고의 입시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현장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자사고 선발방식을 고려했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현 자사고 입시에서 지필평가나 교과지식 질문이 금지되면서 전형준비를 위한 사교육 유발요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선발방식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사교육이 침범할 여지는 사라진다. 실제로 서울지역 광역단위 자사고들은 1단계에서 정원의 1.5배수를 추첨으로 선발하며, 2단계에서는 면접으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한다. 내신성적을 따지지 않고 일단 지원하면 추첨 대상이 되는 구조다. 특히 내신과 관련된 제한도 없어 내신 9등급이라 하더라도 지원만 하면 추첨을 통과해 입학할 수 있는 구조다. 

오히려 입학이후 사교육을 차단하는 효과가 높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특성화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와 만족도가 높아 학생들이 별도의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 모든 학생들이 일반고로 배정시키면 전반적인 학습 분위기가 높아진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란 반응이다. 한 고교 교사는 “특목 자사고가 없어지면 일반고에 긍정적인 효과가 유발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현장을 모르고 하는 얘기에 불과하다. 전국 특목 자사고를 전부 없앤다 하더라도 일반고에 배정되는 인원은 한 반, 한 두명 선에 그친다. 이 정도로 학습 분위기가 나아질 리 없다. 오히려 학생들 간 학업수준 격차가 커져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어려움만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체로 하향평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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