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71명 최대.. '과학기술계 전반 위축 영향'

[베리타스알파=유수지 기자] KAIST DGIST GIST대학 UN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인재 중도 이탈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상민(더불어민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4개 과기원에서 2016년 133명, 2017년 143명, 2018년 171명의 중도탈락생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증가하는 모양새다. 이공계 인재유출 문제는 그간 지속적으로 지적돼왔지만 일반대가 아닌 과기원이 흔들릴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육성해온 우수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최전선이 무너질 경우 미래 연구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과기원은 일반대에 비해 다양한 장학금과 저렴한 학비 등 혜택이 풍부한 만큼 재학/입학을 포기할 요인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의대열풍과 연구원의 직업적/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적 구조가 중도탈락생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KAIST DGIST GIST대학 UN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인재 중도 이탈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2016년 133명, 2017년 143명, 2018년 171명의 추이다. /사진=KAIST제공

<이공계 우수 인재, 의대 이탈 심각>
과기원 학생들의 중도 이탈 이유로는 가장 먼저 의대선호현상이 지목된다. 국내 최고 연구기관들에서 매년 평균 150명 가량의 학생이 자퇴를 결심하는 것은 의대 진학 외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안정성이 보장되는 의학계열 전문직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의대 입시가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들을 휩쓸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의대 정원확대와 계속되는 취업난으로 이공계 학생들의 이탈수치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점이다.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행은 고교 현장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2017년 이동섭(국민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과고/영재학교 계열별 진학현황’에 따르면 영재학교는 2017학년 졸업생 675명 중 8.4%인 57명, 과고는 졸업생 1676명 중 2.7%인 45명이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의대진학 시 추천서 작성거부, 장학금/지원금 회수 등 학교 차원에서 의대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들의 입학을 막고 있지만 매년 의대 진학인원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공계 우수 인재의 이탈은 과학기술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력은 모든 산업 경쟁력의 기본이고, 국가 경쟁력의 시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초학문분야의 연구가 활성화 돼야 국가 발전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공계 인재를 양산하기 위해 영재학교와 과고에 대한 교육투자를 실시하고, 대학에서 이공계 정원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정지원 사업을 실시했지만 이런 정책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전반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다 보니 연구 개발에 뜻이 있는 소수만이 연구원의 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연구원의 직업적/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등 보다 실질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대입의 블랙홀로 올라선 의대열풍을 감안하면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사회적 기반과 분위기 조성이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의 과학계 길들이기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특히 전문연폐지와 과기부 표적감사논란 등은 정부가 나서서 의대열풍을 더욱 강화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전문연 폐지 여파>
최근 서울대 공대 대학원 미달 사태로 수면에 드러난 이공계 위기는 전문연 제도 폐지와 맞닿아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공계를 전공해도 연구자들이 안정된 연구 환경을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특히 2016년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병역특례요원 제도를 단계적으로 감축, 2023년 완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던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국방부는 박사과정 3년간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박사 전문연은 올해부터 폐지한다고 덧붙였다.

KAIST DGIST GIST대학 UNIST 등 과기원 4곳은 신입생 수만큼 박사 전문연 인원이 배정되는 등 전문연 제도의 직접 수혜대상이다. 박사 전문연은 병역으로 인한 단절 없이 꾸준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높다. 국방부 발표 당시 과기원은 물론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한양대 등 9개대학이 전문연 폐지반대 의견서를 공동으로 발표한 이유다. 각 대학과 총학생회는 “지난 40여 년 동안 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 양성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해 온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면서 “전문연구요원제도는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의 연구 경력 단절을 해소하고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유인책으로 작용해왔다”고 말했다. 폐지 계획에 대해서도 “병역자원 감소를 이유로 국가 미래를 책임져야 할 핵심 이공계 인력의 연구 경력을 단절시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유발하게 하는 결정이며 국반 인력자원을 양적 측면에서만 본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면서 “현대의 국방력은 과거와 달리 병역자원의 수보다는 탄탄한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한 첨단 국방기술과 무기체계로서 확보될 수 있으므로 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우수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국방력 확보에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3월 서울대 재료공학부 곽승엽 교수가 공개한 ‘전문연구요원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 보고서에서도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기피현상을 완화하고 이공계 인재의 해외유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 교수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스텍 대학원생 1565명을 대상으로 설명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문연 제도가 박사과정 진학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은 80%에 달했다.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기피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묻는 문항에서는 62%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전문연 제도가 폐지되면 해외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겠다는 비율도 49%로 높았다.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유인효과가 있다는 점은 이외에도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됐다. 201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고급과학기술인력양성을 위한 전문연구요원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 연구’(엄미정)에 따르면 대학/기업체에서 복무하고 있는 전문연구요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공계 유인 효과’ ‘연구직 요인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60% 이상이 높은 효과가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대학에 복무하는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그 효과가 더 크다고 봤다. 전문연 제도가 없었다면 30% 이상이 석사 자체를 진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대부분 석박사 진학 시 전문연 제도의 이용여부를 고려한 것이다. 

<이공계 홀대하는 정책적 분위기..과기부 표적감사논란까지>
특히 문재인정부들어선 이후 줄곳 ‘과학기술계 길들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과기원이 더욱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과기정통부가 서울중앙지검에 신성철 KAIST총장을 국가연구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직무정지 요청을 KAIST 이사회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를 소위 ‘물갈이’ 하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문제는 과기원에 대한 논란들이 현 정부 들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이공계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한 기관을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조종하려 하는 감사는 피 감사기관과 그 구성원에 대한 심대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며 "이공계 이탈'에서 '이공계 기피'로 학생들의 인식이 이어지지 않도록 정치적 성향에 따라 기초학문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KAIST논란은 신 총장이 DGIST 재직 시 진행한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와의 협약 과정에서 이중계약을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12년 당시 맺은 협약은 LBNL는 연구 장비를, DGIST는 연구비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장비 사용료를 비롯한 연구비 200만 달러가 중복으로 보내졌다는 의혹이다. 신 총장은 본인을 둘러싼 의혹을 두고 “국제 공동연구협약은 양국의 연구기관은 물론 국가간 신뢰 문제인 만큼 결코 이면계약은 있을 수 없다”며 적극 해명했다. LBNL에 대한 현금지원은, 일부 장비에 대한 독자적인 사용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제자를 편법 채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신 총장은 “교수가 관련학과에 추천하면 논의를 거쳐 전공책임교수가 최종결정한 뒤 행정절차를 밟아 임용하는 것”이라며 “LBNL과 공동연구가 진행되면서 양 기관간 교량 역할을 할 인사가 필요하다고 봤고 자연스럽게 임 박사가 거론된 것”이라고 말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했고, 관련 채용 서류도 완벽히 구비했다”며 “총장으로 직접 개입했거나 경제적 이익을 주도록 관여한 사실도 결코 없다”고 말했다.  

KAIST 이사회에 앞서 과학계에서는 직무정지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성명에 600여 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과학계 교수진은 성명서를 통해 연구협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거대실험장치를 보유한 국제적 연구소의 시설은 비용을 낸다고 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탁월한 연구주제를 선별해 시설사용시간을 대여한다. 이들 연구소는 우수한 연구계획서를 제출해 통과한 연구자들에게는 일주일 정도 무료로 시설을 사용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이 정도 시간으로는 최첨단 연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DGIST는 고가의 장비를 보유한 LBNL과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연구자들이 시설 총 가동시간의 50%를 사용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가로 DGIST는 시설운영비의 13%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지불해 투자효율이 매우 높은 연구계약이었다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국제공동연구에 대한 설명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성급히 판단해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한 연구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리더에게 오명과 좌절을 안기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우려했다. 

DGIST와 협약한 당사자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는 의혹에 대한 반박서한을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과 KAIST이사회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NBNL은 "두 기관의 협력은 미국 법령을 준수하고 미국에너지부(DOE)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며 "한국에서 문제가 된 임 모 박사의 인건비는 내부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지급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감사내용을 정면 반박한 셈이다. 과기정통부가 무리한 '표적감사'를 실시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도 이번 사태에 보도를 내보내면서 표적감사사태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전 세계 과학연구 동향을 보도하는 네이처가 한 나라의 과학계 스캔들을 다룬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달 열린 KAIST 정기이사회에서는 신성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차기 이사회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황으로, 신 총장의 거취는 추후 재논의될 예정이다.

<초유의 강도 길들이기 과학계전반 위축>
과학계 길들이기 의혹이 불거진 것은 신 총장 사태가 처음이 아니다. 현 정부 출범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한 정부출연연구기관/과기원 기관장이 1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 정권 지우기’차원을 넘어 초유의 사태라고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대한 감사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기도 했다. 표적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의혹에 더해 총장 거취를 연계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결국 손상혁 DGIST총장은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사임했다.

DGIST감사 당시 DGIST뿐 아니라 전 과기원이 반발하고 나섰다. KAIST교수협의회와 GIST교수평의회 UNIST교수협의회는 ‘과기부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감사에 대한 과학기술원 교수평의회 의장 및 교수협의회 회장의 입장문’을 내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기부 감사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교수평의회와 교수협의회는 대학 비보직 교수들이 중심이 돼 학내외 현안에 대해 교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다. 

KAIST교수협의회 등은 “무릇 감사는 내부에서 밝혀내지 못한 비리를 밝혀내고, 만일 잘못이 발견되는 경우 적법한 절차에 의해 관련된 인사를 징계해 추후 동일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러한 당연한 원칙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대한 감사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슬로건처럼, 감사의 과정이 공정해 결과 역시 정의롭기를 소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DGIST 감사는 연구비 부당 집행 의혹과 정규직 전환 과정 특혜 등에 대한 DGIST 내부 민원에 따라 진행됐다. 일반적인 감사 방식과는 달리 내부 제보나 말만을 근거로 감사가 진행되면서 학내 구성원의 반발은 컸다. DGIST 관계자는 “과기부가 제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손 총장 거취 문제와 연결하는 등 통상적인 감사 절차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감사 방식으로 인해 연구와 학교 행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가 내부 감사를 받은 학내 관계자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표적 감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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