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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서 따라잡기]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 김유하 기자
  • 승인 2012.09.25 15:32
  • 호수 142
  • 댓글 0

고개를 떨구고 몸을 웅크린 소녀, 죽음을 앞둔 소녀를 뒤에서 응시하는 독수리.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었던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의 장면이다. 전 세계에 기아의 참혹함을 알리며 해결을 촉구했지만, 사진 속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연민을 느끼는 데 멈추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꾸리지 않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수전 손택은 전쟁과 사진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폭력적이고 참혹한 순간을 촬영한 사진만 기억할 뿐, 이미지 아래 담긴 고통에 대해선 무관심한 상황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벌어진 일인 탓이다. 손택은 ‘내가 혹은 나와 관계된 사람이 피사체라면 ’이라는 날 선 질문을 던진다.

   
▲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이재원 옮김, 이후)
사진, 가장 자극적인 매체
[베리타스알파 = 김유하 기자] 사진이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다. 범람하는 사진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자극적인 장면을 추종하도록 이끈다. 수전 손택은 “카메라의 시대에는 현실감을 둘러싼 새로운 요구들이 등장한다. 현실적인 것은 충분히 무섭지 않기 때문에 좀더, 무서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 좀더 믿을 만하게 재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지속적인 자극과 충격이 감정을 무디게 한다는 사실이다. 폭격으로 신체가 훼손된 사람을 담은 사진을 볼 때 대다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보다 섬뜩한 것을 보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다. 관련 사진을 찾으며 무의식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탐닉하는 상황에 빠져버린다. 사진은 진실을 전달한다는 목표를 담보로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사진은 어느 매체보다 가장 자극적이다. 손택은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이라고 전한다.

‘사진을 찍다 = 총을 쏘다’
손택은 사진을 매개로 타인의 고통을 엿보기 시작한 시점을 1940년대로 본다. 전 세계가 세계대전에 휩쓸렸던 시기였고, 사실과 시사문제를 사진기술로 표현하고 보도하는 포토저널리즘이 모습을 드러낸 시기였다.

“사진 없는 전쟁, 즉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다.”

‘쏘는(shot)’이라는 동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영어 동사 shot이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는 의미를 모두 가지는 데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의 약탈적 속성을 고발하는 셈이다. 불특정 다수의 알 권리를 존중하지만 고통 받는 당사자의 피사체가 되기 싫은 권리를 무시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00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작가의 의도, 권력의 개입 고려해야
사진은 현장을 담지만, 사건을 투명하게만 보여주진 않는다. 손택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構圖)를 잡는다는 것이며,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라고 밝힌다. 담아야 하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촬영하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진도 촬영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쟁사진은 전쟁을 합리화하는 정치적 목적이 앞선다. 1945년 2월23일 이오 섬에서 미국 국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담은 ‘이오 섬에서의 국기 게양’은 연합통신 사진작가 조 로렌탈이 재구성해 촬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을 통해 보는 사진 역시 목적에 따라 이용하거나 배제한 결과물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면을 내세우게 마련이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지만 주관적인 의도나 권력에 얽매인 특성상 보이지 않는 사실과 정보를 차단해버린다. 손택은 사지가 잘린 시체 등을 담은 사진에 담긴 이중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중략)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 필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행동하라’ 식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라고 전한다. 손택에 의하면 연민에만 머물러 일시적인 눈물을 흘리지 말고 그들에 비해 안락한 삶에 안도감을 가지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는 셈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 생계형 노동자로 전락해 저임금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본 순간에만 동정표를 던져서는 곤란하다. 세끼 밥 먹듯 사 마시는 커피가 어느 경로를 거쳐 나에게까지 왔는지 고민하고, 공정무역 커피 같은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두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타인의 고통이 나와 관계 있음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 사진에서 보여주지 않은 그들의 숨겨진 삶과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일상생활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해보게 마련이다. 현장을 그대로 보여줄 뿐 스스로 표현하지 않는 사진은 물론 고통의 당사자와 고통을 전달하는 자 및 고통을 전달받는 자 사이에 놓인 사진, 그 행간부터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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