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권 없는 비강남 일반고의 한계 넘은 수시체제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한영고는 일반고에서도 특목자사고만큼 폭 넓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학교다. 일반고 중에서도 전국모집 자율학교처럼 선발권을 가진 학교가 있는 반면, 한영고는 배정방식으로 신입생을 받는 일반고이자 비강남소재 학교지만 전국 정상급 진학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종체제의 잣대가 될 수 있는 서울대 등록자를 기준 2018대입 수시11명 정시2명 등 13명(전국44위), 2017대입 수시9명 정시3명 등 12명(전국50위), 2016대입 수시8명 정시1명 등 9명(전국65위)의 실적으로 명문고 기반을 다진 지 오래. 절대적인 실적만 아니라 성장세도 뚜렷하다. 진학실적만으로 학교의 교육력을 평가할 순 없겠지만 일반고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만은 명백하다.

한영고는 일반고에서도 특목자사고만큼 폭 넓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학교다. /사진=한영고 제공

<수시체제 선도, 한영고의 힘.. ‘창의적 사고뭉치’>
한영고는 1933년 중구 삼각동에서 개교, 1947년 성동구 마장동을 거쳐 1983년 현재 강동구 상일동 신축공사로 이전했다. 오랜 역사만큼 달라진 입시환경에 동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학교보다 빠르게 달라진 입시환경에 적응했다. 특히 한영고의 부상은 서울대의 수시중심 입시구조와 맥이 닿아 있다. 서울대가 특목고 위주 특기자전형에서 일반전형으로, 수시전체를 입학사정관제를 거쳐 학종중심으로 입시구조를 바꾸면서 일반고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무엇보다 급부상의 비결은 수시체제의 변화를 포착한 교사들의 열정이다. 수십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영고가 학종중심 대입지형에서 뚜렷한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영고의 지향점은 학종이나 대입이 아니라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교육’이다. 참고서만 들여다보는 ‘문제풀이형’ 학생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협력할 수 있는 인재,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재, 스스로 탐구할 능력을 갖춘 인재다. 한영고 배경석 교장은 이를 ‘창의적 사고뭉치’라고 표현했다.

배 교장은 “요즘 학생들에게 실력은 ‘쓰기와 말하기’ 능력에서 나오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이라며 “한영은 쓰기와 말하기를 매우 강조한다. 매 시험 과목마다 늘 200자 이내 서술형 문제를 출제한다. 3학년1학기까지 총 10번의 정기고사 동안 200자 안에 함축적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만큼 논리적 기초를 자발적으로 쌓게 된다”고 말했다. 말하기 능력은 다양한 토론토의 수업으로 키운다. “매년 네 번의 ‘토의토론 수업주간’을 만들어 교실 내에서 협업수업과 말하기 경험을 하게 한다”며 “대입 대학별고사 시기에 닥쳐서 반짝 준비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 논구술을 준비하는 셈이자 궁극적으로 ‘창의적 사고뭉치’를 만드는 기초공사”라고 강조했다.

한영고의 높은 인기는 고입지원율로도 드러난다. 지난해 한영고 경쟁률은 10.61대1. 올해 고1 학생수는 397명으로, 무려 4000명 이상의 중학생이 한영고에 지원한 셈이다. 그만큼 입학성적도 우수하다. 현 중3학생들이 입학할 때인 2016학년 기준 입학생의 43% 이상이 중학교 성적 상위30%내로 나타났다.

<‘학생 선택중심’ ‘창의융합’ 교육과정>
한영고는 학생수 1375명, 교원수 91명에 이르는 대단위 학교다.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이 가능하고 학생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무리 없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전 과목 교과교실, 실험실, 이동수업교실을 확보하고 있어 선택과목별 이동수업이 가능하다.

올해 고1부터 적용 중인 2015개정교육과정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창의력을 실천하기 위한 메이커 교육 ‘창의융합 R&E 오케스트라언스’ ‘뜬구름노트’ ‘뜬구름메이커대회’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NIE 잡학박사 배틀그라운드’, 고교-대학 연계로 한양대와 함께 하는 인문학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실질 역량을 높이기 위한 모의창업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한영고 박여진 진학지도부장은 오케스트라와 사이언스를 합성한 ‘오케스트라언스’를 제일 먼저 꼽았다. 강동구 명문고 육성지원 사업의 일환인 오케스트라언스는 창의융합 R&E 프로그램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연주를 하고,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인문학 심리학 수학 의학 뇌과학 공학 사회과학과 융합한 탐구활동과 프로젝트를 자기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완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심미적 감성은 물론 관심 분야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더해준다. 박 교사는 “연주곡이나 작곡가에 관련된 독서활동뿐 아니라 탐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알고리즘 설계, 3D모델링 등을 통해 탐구결과를 구체화하는 메이커 교육이 이뤄진다”며 “연습한 곡들을 자선콘서트를 열어 직접 연주함으로써 나눔까지 실천하는 종합적 성격의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커 교육이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의 제반이론을 통합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STEAM교육이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융합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한영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3번의 탐구활동에 참여한다. 정규교육과정 내에 자율활동 시간을 학급특색활동 시간으로 편성해 관심 분야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탐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나눔도 실천할 수 있다. 창의적 발상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를 ‘다빈치-넛지 수첩’ ‘뜬구름 노트’에 기록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뜬구름노트’는 학생들의 막연한 지적 호기심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흩어지는 생각들을 한 곳에 모아 기록하고 생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주도적으로 지적 호기심을 구체화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기능이 있다. 뜬구름노트에 수록된 뜬구름 발상법으로 구상한 아이디어 한 가지 이상을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거나 아이디어 제안서 형태로 제출하면 그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뜬구름 메이커 대회’로 이어진다.

대학과의 연계도 밀접하다. 최근에는 한양대와 연계해 ‘고교생을 위한 인문학 아카데미’를 실시하고 있다. 한양대 인문대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와 기관협약 체결을 맺고 교수들이 학교로 방문해 실시하는 인문학 강연이다. 다양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대학과 고교 간 발전적인 교육협력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아리는 교육과정 동아리와 자율동아리로 구분된다. 올해 기준 교육과정 동아리는 55개, 자율동아리는 47개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개인의 흥미와 특기를 계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아리 간 연계활동과 유닛 동아리 활동으로 지적 호기심을 해결해 나간다. 통합적 사고력이 바탕이 되는 심화된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박 교사는 “동아리는 학생선발단계부터 사전면접을 통해 부원을 선발해 학생들이 특정 우수 동아리에 집중되지 않고 흥미와 적성에 맞게 골고루 분포한 게 특징”이라며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돼 있고, 매해 동아리 학술지 발간을 통해 대학에서도 우수한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로 자리잡은 독서교육>
한영고에서 독서활동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의 하루일과는 ‘15분 아침독서’로 시작된다. 1층부터 4층까지 층마다 도서관을 배치해 물리적으로 독서와 친숙한 환경도 만들었다. 1층 ‘진리의 배움터’와 2층 ‘한빛 꿈터’는 복합학습실과 도서관이 합쳐진 형태다. 교실 옆에는 ‘지혜의 계단’을 만들었다. 학생들 가까이에 크고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심리적 장벽부터 낮췄다.

가령 교실 옆에 설치된 ‘지혜의 계단’은 독서의 생활화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책꽂이에 비치된 도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독서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접근성을 높여 독서를 생활화하고, 편안한 독서환경을 통해 독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높였다. 평일 점심시간과 방과후 오후4시부터 6시까지, 학급특색시간 등을 이용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활발한 독서활동을 유인하기 위해 책 읽은 시간을 ‘지혜콩 장바구니’에 쌓는 ‘지혜콩 포인트제도’도 운영 중이다.

먼저 학생들이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만들었다면 다음은 ‘능동적 책 읽기’다. 단순히 책을 많이 접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프로그램으로 주체적으로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독서감상문대회, 말하는 공부방, 이래그래 독서토론활동, NIE존 토의토론활동, 한영 독서토론대회 등 각종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고를 확장한다.

다양한 독후활동 중 하나가 ‘이래그래 독서토론활동’이다. ‘나의 생각은 이래. 너의 생각은 그래’라는 표현에서 착안한 ‘이래그래 독서토론활동’은 학기 단위로 대주제를 선정, 소주제에 따라 도서를 정하고 독서는 물론, 영상 강연 등을 통해 토론을 위해 배경지식을 갖춘다. 팀별 주제토론을 펼치며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은 공감능력은 물론 사고의 개방성과 논리력까지 키워준다.

<‘교과연계심화’ ‘프로젝트기반’ 방과후학교 이원화>
정규수업을 제외하면 학생들이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프로그램은 방과후학교다. 학기중 20회, 방학중 15회로 각 3강좌 이상을 수강해 2년반 동안 525시간 이상을 할애한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교과연계 심화과정과 프로젝트 기반학습으로 이원화돼 있다.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인 학습 설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단계별 유기적으로 설계된 다양한 과정을 경험한다. 특히 수능 준비에 힘을 실을 수 있는 핵심역량심화과정과 교과연계 토의토론/과제연구를 할 수 있는 창의융합심화과정을 운영해 우수한 학생들도 높은 동기를 가지고 수월성 교육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박 교사는 “외고에서 지원 나오신 원어민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영어토론능력을 보고 놀라실 정도”라고 말했다.

한영고만의 3P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은 배움이 빠른 학생도, 느린 학생도 진학지도에서 열외시키지 않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모든 학생이 전문성 높은 지도를 받으며 다양한 학습욕구를 사교육보다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수준별 선택형 주문형 강좌를 운영해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강좌를 선택할 수 있고, 연속적으로 심화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도 넓혔다. 전공심화학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참여율은 70%를 넘는다.

다양한 과제연구 경험은 개별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팀 활동으로 진행된다. 박 교사는 “올해부터 ‘한영 토의토론 주간’을 신설해 집중적으로 토의토론 중심의 정규수업이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학급특색활동 영/인재학급 창의심화반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팀 활동을 비롯해 말하는 공부방, 아우멘토, 학급 내 멘토링, NIE존에서의 토론, 글로벌토크콘서트, 한빛 꿈터에서의 토론과 소통을 통해 협업능력과 소통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수업 시간과 방과후 시간을 이용한 합창발표회인 ‘한영 아모레콘체르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학교 축제인 ‘한맥제’와 함께 스포츠클럽 체육문화제 실험탐구활동 등 협업과 소통 중심의 긍정적 경험은 창의융합적 인성을 함양하는 기반이 된다.

<지자체가 인정하는 한영고 교육력, 영/인재학급>
학교 경쟁력을 인정받아 교육청과 구청의 지원도 활발하다. 서울교육청 지정으로 운영되는 영재학급은 ▲수학 ▲과학 ▲인문사회 세 가지 영역으로 1,2학년 20명씩 60명이 대상이다. 영재학급이라고 해서 고학년이나 대학과정의 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실험, 토의학습, 발표수업, 연구방법 탐구 등 창의성과 자발적 탐구능력을 키우고 지적능력을 충족할 수 있는 심화된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제한인원이 있는 영재학급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교육청만 아니라 강동구에서도 ‘명문고 육성 창의인성 인재학급’ 사업을 통해 인재학급 운영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교육활동을 돌아보기 위한 피드백 과정도 잊지 않는다. 매년 11월 중순경 실시하는 ‘한영 EDU-EXPO(교육활동 산출물 전시회)’은 교육활동의 결과물을 뽐내는 시간이다. 1년 동안의 활동 결과물을 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지역 학부모를 대상으로 전시한다.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학교홍보효과를 극대화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개선사항을 찾아 매년 발전지점을 찾는 피드백 효과가 탁월하다.

<한영고 수시체제 ‘버팀목’ 교사공동체>
촘촘하게 짜인 프로그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무엇보다 교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수다. 학종 도입 이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중심은 수업연구다. 수업방법 개선연구회를 조직해 다양한 수업모델을 개발하고 우수사례 발굴을 통해 일반화에 힘쓰고 있다. 토의토론, 거꾸로수업, PBL(Problem-Based Learning, 문제중심학습), 프로젝트기반학습, 융합수업, 모의법정, Thinking Board(교실 뒤편의 생각 나눔게시판) 활용 수업, 메이커 교육 등 미래사회에 맞는 수업개발을 진행 중이다.

진학지도를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교사의 진학관련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정기고사 기간 동안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진학연수를 실시한다. 학년초와 수시 정시 총 3회에 걸친 고3담임 워크샵과 함께 매 학기 초에는 전 학년 전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입시설명회를 진행한다.

한영고만의 특색이라면 교사수첩인 ‘한영 낙서장’이다. 한영고 교사라면 모두 한 권씩 가지고 있는 낙서장은 학생들의 평소 수업활동 참여모습, 토론, 발표, 탐구활동, 독서, 수행평가 관련 학생 성장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어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1년간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학생 개개인을 관찰한 내용을 메모하며 학생부의 기반을 다진다. 학종 대비는 물론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가장 알맞은 진로진학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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