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믿고 따른 고교/대학만 손해’..'사교육 부활의 신호탄 되나'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교육부가 2022 대입개편안을 공론화결과를 토대로 봉합함으로써 교육현장은 심각한 혼돈과 후폭풍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17일 교육부의 대입개편안이 학종과 정시로 나뉘어진 현장여론을 짜깁기 하는 현상유지를 선택함으로써 교육현장에 주는 신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대입정책은 특성상 당사자인 대학 고교 학부모의 움직임은 물론 향후 교육현장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갈 것이라는 신호를 주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학종중심 수시 확대에 주력해온 대학은 정시유턴을 고민해야하고 고교현장은 의대를 중심으로 적은 비율에도 불구하고 위세를 떨쳐온  정시의 강화로 고교교육 정상화 역할을 해온 학종중심의 수시체제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학부모들 역시 학종의 비율이 떨어짐에 따라 서울 강북이나 지방 일반고 대신 특목 자사고 혹은 강남 8학군으로 옮겨가야겠다는 신호를 받게 됐다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서울 상위대학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고교교육정상화를 목표로 학종중심 수시를 확대해온 대학 입장에선 어이없는 일이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사교육유발요인이 있다는 논술과 특기자, 그리고 학교별 격차 때문에 확대가 어려운 교과 대신 사정관을 비롯한 인적 물적 시스템은 물론 시간과 비용까지 많이 소요되는 학종을 대대적으로 확대해온 대학이 갑자기 적폐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어느날 정시논술특기자 위주로 전형을 운영해온 '문제대학'이 2022체제의 우등생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해 보이는 것은 고교현장이다. 학종은 서울대 합격자가 전무하던 일반고의 분발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서울 강북이나 지방 벽지의 학교들까지 현장 분위기를 되살린 전형이었지만 정시확대의 신호는 힘들게 구축해온 고교의 수시체제를 무너뜨리고 학종을 버텨온 교사들의 열정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 전망했다. 

업계 한 교육전문가는 "대입개편안의 골자는 정시를 조금 늘리는 선에서 현상유지에 그쳤다. 문제는 어정쩡한 봉합을 통해 정책의 방향성이 실종됐다는 점에서 현장은 치열한 갈등과 혼돈속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수요자인 학부모들은 1년동안의 이번 개편안 확정과정을 어떤 신호로 받아들일까. 사교육중심으로 돌아가서 특목 자사고나 강남8학군 학교를 염두에 두고 로드맵을 짤 가능성이 높다.  학종중심 서울대와 맞은 편에서 정시를 지탱해온 의대입시를 중심으로 정시에 몰두하는 게 낫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시중심이라면 EBS 연계율도 떨어진 마당에 아예 사교육의 지원을 받을 수있는 교육특구 진입이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공론화의 학습효과다. 목소리를 키우면 언제든 판을 엎거나 짜깁기로 나마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경험은 앞으로 어떤 교육현안이든 이기심을 토대로 떼법에 호소해야한다고 볼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교육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정권마다 대입정책이 바뀌고 교육감마다 고입정책을 뒤흔드는 데다 공론화까지 가세하면 교육정책은 아예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1년을 끌어오던 대입개편이 현장을 양 극단으로 분열시킨데 이어 어정쩡한 봉합으로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정권마다 이뤄진 정책뒤집기를 비롯 정치성향으로 엇갈린 교육감들의 엇박자에 공론화의 학습효과까지 더해지면서 교육정책자체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는 평가다. 

 

수시확대를 줄곧 유도하던 교육부가 2022대입개편을 정시확대로 결론냈다. 특히 고교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수시체제를 안착시켜온 경우 다시 정시대비체제로 돌아서야하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정책브리핑 캡쳐

<수시확대하랄땐 언제고.. 정시확대>
교육부가 발표한 2022대입개편안에 정시비율이 30%이상으로 명시되면서 대학가와 고교현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교육부 스스로 꾸준히 견지해온 ‘수시확대’ 방침을 일거에 뒤바꾼 셈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정책변화에 대해 ‘국민의 선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교육부는 “국민들이 학종의 문제점에 대해 우려했고, 2022수험생들을 위해 학생부위주전형의 지속적인 확대에 대해 제동을 걸고 수능위주전형의 일정한 확대를 요구했다. 교육부는 이런 공론결과를 받아들여 학생들의 재도전기회를 위해 대학들의 수능위주전형을 확대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의 급작스러운 정책변화가 교육현장에 미친 파장은 만만치 않다. 당장 고교에서는 수시체제를 안착시켜온 학교가 울상을 짓게 됐다. 교육부의 수시확대 기조에 발맞춰, 전통적으로 정시강세였던 고교들도 수시대비를 위해 내부프로그램을 손보는 등 체질개선을 이어온 상황이다. 한 고교관계자는 “이제 겨우 수시체제가 안정되는 참인데 다시 정시확대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정시대비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가 높아질수록 수시체제 안착을 위해 체질개선 중인 고교에서 내부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한 고교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학생/학부모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시를 확대한다고 하면, 정시위주로 운영중인 학교에서는 ‘수시대비는 왜 소홀하냐’며 민원이 들어올 정도다. 수시확대에 발맞춰 다양한 교내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해 겨우 수시체제를 안착시킨 고교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반고 살린다더니.. 특목/자사고 유리해지나>
일반고를 살린다던 정부기조가 무색하게, 이번 결정이 일반고에는 도리어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특목/자사고의 선호도가 높아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특목자사고는 수시모집의 학생부교과전형은 불리하지만 비교과 관리를 잘 해 수시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위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을 통한 진학기회가 늘어나면서 지금보다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시에 강한 교육특구 일반고로 쏠릴 우려도 있다. 2018학년 서울대 정시 최초합격자 현황에서 서울지역 실적의 확대폭이 상당해 교육특구 강세를 짐작하게 했다. 서울지역 서울대 정시 최초합격자 비율은 2017학년 38.3%에서 2018학년 42%로 뛰어올랐다. 

정시에 강한 재수생이 교육특구에 대거 포진해있다는 점도 교육특구 강세를 점치게 한다.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전국 1793개 특목/자사/일반고의 ‘졸업생 진로현황’을 기준으로 졸업생 중 재수생의 비율을 집계한 결과 톱10 전부 교육특구 소재 학교로 채워졌다. 톱11부터 톱50까지 40개교 가운데 교육특구 고교는 모두 22개로 작년 대비 2개교 늘었다. 

<‘학종확대’ 장려하던 기여대학사업.. 방향 180도 전환>
대학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방침에 맞춰온 대학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됐다. 한 대학관계자는 “정부방침에 맞춰 학종을 대폭 확대한 대학이 열등생이 되고, 오히려 학종확대에 소극적이던 대학이 우등생이 되는 아이러니”라며 “이래서야 정부방침을 믿고 안정적으로 뒤따를 수 있겠는가”라며 비판했다. 

학종을 중심으로 수시확대를 장려한 대표적 정책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이다. 그간 기여대학사업은 학생부위주전형의 모집규모 확대와 특기자 논술 등의 모집인원 축소를 제시해왔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학종 등 학생부위주전형을 확대하고 반대로 특기자 논술 정시비중을 축소해왔다.

문제는 수시확대를 장려해온 기여대학사업이 도리어 정시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쓰이게 됐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정시확대권고를 위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을 재설계한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사업의 방향성이 정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한 대학관계자는 “학종을 확대하라고 해서 꾸준히 확대해왔더니, 이제 도리어 정시를 늘리라니 말이 되나. 학종확대를 위해 사정관 숫자를 대폭 늘린 대학들은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종확대에 소극적이었던 대학이 오히려 긍정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여대학사업으로 지원받는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인건비로 대부분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목적과 모순되는 운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종을 지원한다는 사업이 오히려 정시확대를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관계자는 “대학이 입학사정관 인건비로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용처에 자율성이 있다”고 해명했다. “수능비중을 30%이상으로 했다고 해서 학종을 폐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시가 30%가 되든 35%가 되든 나머지 부분은 학생부전형이나 기타 다른 전형으로 하기 때문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활용할 유도책은 수능위주전형비율이 30%이상인 대학에 참여자격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정시비율이 30%미만인 대학은 아예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단 교과전형을 30%이상 운영하는 대학은 자율에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관계자는 “2022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은 2020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의 평가대상이므로, 구체적인 사업계획/내용은 2020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권고’가 아닌 ‘강제’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교육혁신연대는 “교육부가 대학 자율성을 존중해 문자 그대로 권고만을 한다면, 교육부는 대학이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대학에 불이익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교육부 방침을 관철시키고자 ‘재정지원’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진 정부비관으로서 낯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한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업과 연계하더라도 권고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도 남아있다.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대학은 국내 전체대학에 비하면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관계자는 “기여대학사업에 68개대학이 선정돼 560억원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사업에 지원하는 대학은 100개 가까이 된다.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재정지원사업을 개편하면서 예산규모나 대학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실적쏠림 현상 심화 우려>
서울대 합격자의 실적쏠림 현상도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 한명의 서울대 합격자도 배출하지 못하던 고교에서 수시를 통해 합격자를 배출하는 경우가 늘어난 상황에서, 수시를 축소할 경우 다시 특정고교에 합격자가 몰리던 때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2018학년 최초합격자 기준, 수시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이라도 배출한 고교는 작년보다 무려 31개교나 늘어난 831개교다. 특히 경남 고성군, 경남 하동군, 경북 예천군, 전남 고흥군, 전남 완도군, 전북 무주군, 전북 임실군 등 최근 3년간 서울대 합격실적이 단 1명도 없던 7개 군지역에서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3년간 합격자 배출에 실패했지만 작년 합격자를 배출한 일반고는 전국에서 91개교나 됐다. 

반면 정시에서는 정시합격자 배출고교수가 2년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작년 1명이라도 서울대 정시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수는 총 296개교로 2016학년 318개교, 2017학년 311개교에 이어 꾸준히 하락세다. 한 고교 교사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교육과정과 여건을 고루 살펴 평가하기 때문에 도서 읍/면 등 상대적인 취약지역에서도 합격자를 배출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정시는 오로지 수능성적으로만 합격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교육특구 쏠림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의대 향한 발길 가속화 가능성>
수시확대기조에 발맞춰 수시비중을 점진확대하던 의학계열 역시 다시 정시중심 전형구조로 회귀할 가능성도 높다. 그간 정부기조에 맞춰 상위17개대학에서 수시가 대폭 확대돼온 것과 달리 의학계열은 정량평가 중심의 정시를 포기하지 않고 수시확대에 소극적인 상황이었다. 

의학계열이 정시중심의 전형구조를 유지해온 반대편에는 서울대가 수시비중을 대폭 확대하며 고교의 수시체제 안착을 견인해왔다. 한 고교관계자는 “자연계열 상위권의 경우 서울대 진학과 의대 진학으로 양분되는 상황에서 그간 상위17개대의 수시비중이 높다보니 수시를 중심으로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막판 의대에 지원할 확률이 떨어졌던 셈이다. 하지만 정시가 확대방침으로 돌아섬에 따라서 정시에 비중을 두고 공부해, 결과적으로는 의대 진학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교육부 말 못믿어”.. 믿고 따른 대학/고교만 손해>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이상 교육부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가 직접 추진해온 정책도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교육현장에 내보냈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부의 수시확대방침을 믿고 뒤따른 고교와 대학만 ‘배신’을 당한 셈이다. 이제 교육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나중에 또 바뀌겠지’하며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몇 년만 더 있으면 또 정책기조가 뒤바뀔 것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고 말했다. 

여론수렴이라는 명목으로 여론전만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야 유리하다’고 학습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교육전문가는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한 대로 주장을 펼치고, 또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적 가치를 고려한 결정이 아닌, 각종 이해단체의 요구에 굴복한 면피용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공론화절차를 도입해 모든 결정의 책임은 국민에게 떠넘기고,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