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5번 (Symphony No.5, Op.47)

대학생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동으로 출퇴근했다. 고등학생 때는 종로의 ‘르네쌍스’를 주로 다녔지만 대학생이 된 후엔 아지트를 명동의 ‘전원 음악감상실’로 옮겼다. 75년 8월 중순 어느 날 감상실 칠판에 처음 접하는 작곡가의 이름이 쓰여졌고, 이내 들려온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익숙지 않은 화성이나 멜로디로 봐서는 현대음악이었지만 그렇게 난해하게 들리지 않았다. 지루하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 듣기를 포기했던 다른 현대음악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50분 가까운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이 흘러나왔을 때 친하게 지냈던 30대 초반의 여성 디스크자키를 찾아가 곡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책 한 권을 빌려왔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1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6,70년대 예술과 문학을 사랑한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여인 전혜린의 사후 발간된 수필집이었다. 그녀가 번역하고 좋아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의 동명의 소설을 수필집 제명으로 사용했다.

“...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틀어놓는 판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다. ... 특히 무언지 웅장하고 엄숙한 시작과 도중의 수많은 군화의 행진 같은 장조가 맘에 든다. 개인적인 사소한 것 인상적인 것을 넘어서서 더 큰길로 눈을 돌리라고 이 음악은 말해주는 것만 같다. ... 이럴 때처럼 음악이 감각적인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때는 없다. ...”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쇼스타코비치라는 작곡가를 국내에 널리 알린 사람이 전혜린 일지도 모른다. 스탈린을 싫어했지만 살기 위해 그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혁명적인 음악을 작곡해야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6,70년대 한국인들이 감상하고 즐기기엔 위험이 따랐다. 공공장소에서는 금기시된 음악이었다. 그런데도 75년 8월 중순 어느 날 ‘전원 음악감상실’에서 들려주었다. 책을 빌려주면서 여성 디스크자키가 내게 살짝 알려줬다. “며칠 전 쇼스타코비치가 죽었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9.25.~1975.8.9)는 예술이 철저히 정치에 속박 당했던 스탈린의 공포정치 속에서 작곡을 해야 했다. 언제 숙청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결국 1936년 현실로 다가왔다. 2년 전 작곡해 엄청난 찬사로 이어졌던 오페라 ‘멕베드 부인’을 관람한 스탈린이 “음악이 아니라 엉망진창이다”라는 경고와 함께 쇼스타코비치를 ‘형식주의자’로 몰았다. 정치용어가 돼버린 이 ‘형식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은 예술가들은 상당수가 체포되거나 처형을 당하던 시절이었기에 인기 절정의 젊은 작곡가의 충격은 컸을 것 같다. 이듬해 1937년 11월 21일은 쇼스타코비치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로 기록된다. ‘형식주의자’로 몰린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창조적 답변’이라는 설명과 함께 ‘교향곡 5번’을 발표했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홀에서 공연된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소련당국은 ‘교화되고 개선된’ 작곡가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정신을 고취하고 승리를 쟁취한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칭송했다. ‘형식주의자’라는 비난에서도 벗어났고 3년 후에는 스탈린상을 받기도 했다. 숙청 위기의 예술가에서 영웅으로 바뀐 것이다. 반대로 서방세계에서는 쇼스타코비치를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한 음악가로 분류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웅장하고 엄숙하게 시작하는 1악장, 경쾌하고 흥겨운 느낌의 2악장, 서정적인 아름다운 선율의 3악장,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의 기쁨에 찬 행진곡 풍의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5번’은 한 개의 악장만을 골라 감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4개의 악장이 유기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한다. 그 스토리가 소련당국에서 임의로 해석한 ‘사회주의의 승리’일 수도 있고, 반대로 억압 받는 민중들이 품고 있었던 감정과 희망을 대변한 것일 수도 있다. 쇼스타코비치 생전에 비밀리에 그의 구술들을 기록했던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는 그가 죽은 다음 해에 미국으로 망명해 그 기록물을 책으로 발간한다.

“... 쇼스타코비치는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인물이다. ... 만일 그가 말이나 글로 이를 표현했더라면 당장에 숙청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추상적인 예술이다. 당시 소련 당국은 완전한 바보들이었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

(‘증언,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솔로몬 볼코프 지음, 김도연 옮김)

글을 쓰면서 전 곡을 서너 차례 반복해서 들었지만 내겐 ‘공산주의 사상‘도 ’반체제 사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음들의 향연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 최고의 교향곡으로 꼽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곡이라 발매된 음반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는 연주는 초연을 맡았던 구소련의 거장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관현악단 음반이지만 구하기 어렵다. 항상 정열적인 몸동작으로 지휘하는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모니 음반은 들을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뉴욕 필하모니 관현악단. 영상보기 클릭 =>
https://www.youtube.com/watch?v=0FF4HyB77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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