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유예 거부한 대교협 '원인제공'.. 사전예고제 '취지 무색'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전북대가 의대 치대 수의대를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의 지원자격 요건을 갑작스레 변경해 파장이 일고 있다. 지역 내 최고 명문고인 상산고 출신 학생들이 지역인재전형을 휩쓸 것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고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생/부모가 모두 전북지역에 거주하거나 전북 소재 중학교와 고교에 재학한 자 가운데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는 요건이 삭제됨에 따라 타 지역에서 상산고로 진학한 ‘무늬만 지역인재’인 학생들이 전북대 지역인재에 대거 합격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017학년 기준 상산고 입학생의 80%가 전북 외 타 시/도 출신이라는 점은 이같은 우려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전북대는 기존 지역인재 자격요건을 활용할 수 없다고 대교협이 지적해 요건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교협의 설명도 전북대의 해명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북대가 5월만 하더라도 추가 요건이 존재하던 것을 7월에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일각에선 상산고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혹'을 제시해 상산고에 '불똥'이 튀고 있는 형국이다. 

엇갈린 의견과 시선들 속에서 전북대의 해명 쪽에 무게가 실린다. 대교협의 지적 사항을 무시한다는 것은 대학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실제 전국 의대 가운데 수시 지역인재 자격요건에 중학교 재학이나 부모/학생의 지역거주 등을 넣은 사례는 전북대가 유일하다. 1년 유예 요청을 했지만, 대교협이 이를 거부했다는 점도 전북대가 수요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원서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요강 변경으로 인해 수요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전북대 입장에서 보면 지원자격 변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수시 원서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 7월에서야 자격요건을 변경하는 것은 결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사전 예고제가 마련돼있는 것과도 상충되는 지점”이라며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위반한 건이기에 즉시 시정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사전예고제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왜 규정돼 있는지 취지를 돌이켜 생각해봐야 한다. 갑작스러운 변경은 예측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년 유예 방안을 받아들였더라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교협이나 대학 모두 원리원칙에 매몰되기 보다는 수요자들을 위한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북대가 수시 원서접수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치대 수의대 등을 선발하는 지역인재 자격요건을 갑작스레 변경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잘못 적용돼온 자격요건을 대교협이 지적해 절차에 따라 요건을 수정한 것이지만, 괜한 불똥은 상산고로 튄 모양새다. /사진=전북대 제공

<전북대 지역인재 자격요건 변경.. 고교 입학~졸업만 남아>
전북대는 지난달 수정 발표한 2019학년 수시 모집요강을 통해 지역인재 전형의 지원자격 요건 변경을 알렸다. 기존에는 ▲전북 소재 고교에서 전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했거나 졸업예정인 자 라는 공통 지원자격을 충족하고 △고교 입학일부터 졸업일까지 부모/학생 모두가 전북 지역에서 거주 △전북 소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입학일부터 졸업일까지 재학한 자 라는 2개의 추가요건 가운데 하나를 더 충족해야 지원자격이 부여됐다. 바뀐 자격요건에서는 추가요건이 모두 빠졌다. 이번 수시부터는 전북 소재 고교에서 전 교육과정을 이수했거나 이수를 앞두고 있기만 하면 전북대 지역인재에 지원할 수 있다.

전북대가 5월에 발표된 수시 모집요강을 7월 들어 갑작스레 수정한 것은 대교협이 ‘대입전형 기본사항’ 위반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현재 몇몇 특수대학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교협이 내놓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토대로 삼아 전형계획으로 불리는 대입전형 기본계획과 모집요강을 만들고, 대교협의 승인을 받는 절차도 수행한다. 

대입전형 기본사항에는 지역인재에 대한 규정이 존재한다. 권역과 지역 등을 정확히 명시하고, 고교유형에 따른 지원자격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며, 재학 기준은 ‘입학부터 졸업까지’라는 등의 내용이다. 전북대처럼 중학교 졸업이나 지역 내 거주 등의 요건을 두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전국 의대 가운데 전북대는 독특한 사례였다. 2019수시요강 기준 대학마다 ‘전 교육과정 이수’ ‘입학부터 졸업까지 재학’ 등 표현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중학교 재학이나 지역 거주 등의 추가조건을 요구하는 곳은 전북대가 유일했다. 여타 의대들은 수능최저를 적용하는 경우 ‘수능에 응시할 것’ 정도의 단서를 달거나 ‘학생부 성적 산출이 가능할 것’ 또는 ‘학생부가 있을 것’ 등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교협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해당 내용을 수정하도록 했다는 입장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기존에는 지역인재 관련 자격요건을 대학이 임의로 정하는 사례들이 존재했다. 입학전형위원회에서 해당 문제를 지적함에 따라 모집요강을 변경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상산고에 튄 '불똥'.. 의혹은 사실일까?>
대교협의 수정지시와 전북대의 요강 변경은 ‘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일부 비판여론이 이는 모양새다. 특정고교를 유치하기 위한 요강변경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사전 예고제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특정고교 유치를 위해 모집요강을 변경했다는 불똥은 ‘상산고’를 향해 튀었다. 전북대의 요강 변경이 지역 내 최고 명문고라 할 수 있는 상산고 학생들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상산고의 진학실적이 지역 내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현재 전국 10개교 체제인 전국단위 자사고의 일원으로 통상 광역단위로 치러지는 고입에서 영재학교 등과 더불어 전국단위 입시를 실시하는 몇안되는 학교 중 하나다. 

뛰어난 교육프로그램에 선발효과까지 더해진 상산고는 전북지역 진학실적을 선도하는 존재다. 현재 전북지역에는 110여 개의 고교가 있고, 이 중 대입실적과 큰 연관이 없는 특성화고, 방송통신고 등을 제외하면 남는 고교 수는 90여 개 남짓이다. 2018학년 대입 서울대 등록실적을 기준으로 보면 전북에서는 34개교가 88명의 실적을 냈다. 상산고는 30명의 실적으로 지역 내 ‘절대 강자’의 면모를 뽐냈다. 

의혹의 요지는 이처럼 실적이 우수한 상산고를 겨냥해 전북대가 추가요건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상산고는 전국단위 모집을 실시하기에 입학생들이 다양한 시/도 출신으로 채워진다. 2017학년 상산고가 밝힌 합격자들의 지역별 현황에 의하면, 정원내/외 포함 383명의 합격자 가운데 전북 출신은 20.9%(80명)에 불과했다. 전북 소재 고교지만 전국적인 명성으로 인해 수도권 출신들만으로 57.2%(219명)의 인원이 채워질 정도였다. 기존대로 전북지역 중학교를 나와야 한다거나 고교재학기간 동안 부모/학생이 전북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적용하면, 타 지역에서 상산고로 입학한 학생들이 지역인재에서 제외되지만, 입학부터 졸업이란 요건만 남기면 상산고 재학생이 전부 지역인재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의치한 등 의학계열에서 뛰어난 실적을 보여온 상산고가 지역인재에 대거 지원할 시 전북대 의대 치대 수의대 실적을 휩쓸게 될 것이란 추정은 개연성이 있다. 상산고에 다니기 위해 전북지역에 잠시 머무르는 수험생들이 지역인재를 통해 의대 치대 등에 진학하면, 졸업 후 본래 ‘고향’으로 되돌아가 지역의료인력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전북대는 특정 고교를 겨냥해 요강을 바꾼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갑작스런 요강변경을 피하려 했지만, 대교협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북대 관계자는 “최초 대교협으로부터 요강 수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후 1년간은 해당 조치를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갑작스럽게 요강이 변경되면 혼란이 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교협이 유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와 올해 요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괜시리 ‘불똥’을 맞은 상산고를 비판하는 것도 당연히 적절치 못하다. 대학의 입학전형에 고교가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전북지역에서 압도적인 진학실적을 내고 있는 상산고가 괜시리 비판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그간 지역인재 관련 규정을 잘못 해석해 온 대학에 대교협이 수정을 지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사전 예고제.. ‘원칙’ 지켰지만 ‘취지’ 아쉬워>
대교협이 요구하고 전북대가 수용한 이번 지역인재 자격요건 수정은 규정이나 절차에 비춰봤을 때 정당한 조치다.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학들이 전형계획을 만들 때 철저히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기본사항이 수정되는 경우에는 전형계획 수정도 허용된다. 기본사항에 규정된 지역인재 규정을 그간 잘못 지켜온 대학들에 수정을 요구하고, 대학이 따른 것은 규정을 준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원칙’은 지켰지만 사전예고제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통상적인 수험생들의 학년 기준 고2 4월말에 전형계획을 내놓고, 고1 5월말에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하는 것. 이에 앞서 대교협이 고1 8월말에 기본사항을 공지함으로써 대학들이 전형계획과 요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마련된 장치들이다. 미리 대입전형을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대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에 규정된 절차를 지켰다고 하지만, ‘예측 가능성’이란 취지의 관점에서 보면 갑작스런 요강 변경은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 특히 9월에 수시 원서접수가 시행되는 배경을 볼 때 7월에 와서야 요강을 변경한 것은 아무리 규정에 따른 것이라지만, 비판의 소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 

대교협이 ‘융통성’을 발휘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북대가 요구한 1년 유예를 받아들여 현 고2가 치를 2020대입부터 지역인재 자격요건을 변경했더라면 일정 수준의 예측 가능성은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사전예고제의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당장 잘못된 부분을 뜯어 고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수요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 여유를 주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역인재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는 시각도 있다. 현행 대입의 지역인재는 고교 소재지를 기준으로 하기에 향후 지역 내에서 생활을 영위할 인재들이 아닌 ‘무늬만 지역인재’인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번 전북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수도권에서 중학교까지 거주하다 지방 소재 고교에 진학한 학생은 생활기반이 전부 수도권에 있더라도 지역인재로 인정되는 반면, 지방에 기반이 있는 학생이 고교만 수도권으로 진학한 경우에는 지역인재로 일체 인정받을 수 없다. 이는 대입을 넘어 취업 등에서도 단계만 달라질 뿐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다. 때문에 향후 지역 내 인재풀을 형성할 진짜 지역인재들은 정작 지역인재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한다. 한 대학관계자는 “현재 지역인재 제도에는 허점이 많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이번 전북대 사례처럼 입학부터 졸업까지로 자격요건을 가볍게 만들것이 아니라 변경 전 전북대의 자격요건처럼 중학교 재학이나 실제 지역거주를 기본사항에 추가하는 것이 진짜 지역인재를 뽑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2019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보면 지역인재는 '입학부터 졸업까지'로 요건을 명시해야 한다. 전북대처럼 해당 지역 중학교 교육과정 이수, 부모/학생의 지역 거주 등의 요건을 넣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사진=2019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 캡처
모집요강을 수정하기 전 전북대의 2019학년 수시 지역인재 지원자격은 다소 복잡한 양상이었다. 사진은 올해 5월 발표된 전북대 수시 모집요강 중 지역인재 지원자격. /사진=2019학년 전북대 수시 모집요강 캡처
모집요강 수정 이후 전북대의 지역인재 자격요건은 단촐한 모습이 됐다. 입학부터 졸업까지만 전북 소재 고교를 거치면 지원자격을 획득한다. 사진은 올해 7월 수정발표된 전북대 수시 모집요강 중 지역인재 지원자격. /사진=2019학년 전북대 수시 모집요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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