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교복 공론화, 교육부 정책숙려 잇달아..'정부 교육청은 뭐하나'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교육계에선 이제 ‘전가의 보도’가 국가교육회의에서 공론화로 바뀌었다는 비아냥이 떠돈다. 서울교육청은 30일 ‘불편한 교복’을 ‘편안한 교복’으로 개선하겠다며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을 발족했다. 대입개편에 이어 교복까지 공론화 의제로 오른 모습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복 개선이 공론화가 필요할 정도로 갈등이 첨예하지 않는데도 첫 공론화 의제로 꼽혔다는 게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국가교육회의는 2주만의 대입개편 공론화 결과를 3일 발표한다. 지난달 10개항목이 넘는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 정책숙려를 마친 교육부는 벌써 하반기 정책숙려를 준비 중이다. 다음 정책숙려제 안건은 학교폭력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이다. 

원전 공론화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교육계도 공론화 붐이 일고 있지만 무분별한 공론화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교육전문가는 “공론화는 교육정책이 행정가들의 탁상공론을 피하고, 교수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결론 낸 정책에서 탈피해 일반 국민과 수요자의 의견을 직접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행태를 보면 공론화가 마치 만병통치약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전에는 국가교육회의에 책임을 떠넘기더니 이제는 불특정 다수인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전가의 보도’가 국가교육회의에서 공론화로 바뀌었다. 원전 공론화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교육계도 공론화 붐이 일고 있지만 무분별한 공론화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교육청 1호 공론화 의제.. ‘자사고 논란 제쳐두고 교복?’>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육청의 편안한 교복 공론화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코르셋 교복’ ‘슬림핏 교복’이라 불릴 정도로 꽉 끼는 교복을 활동성 좋은 형태로 바꾸는 데 대해선 갈등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편안한 교복’ 도입에 긍정적 반응이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서울의 한 학부모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반영하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교복을 바꾸는 게 공론화가 필요한 사인인지는 모르겠다”며 “학생들 옷에 라인을 넣고 허리를 조이는 교복업체에 제재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미 일선학교에서는 편안한 교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생활복을 채택한 학교가 증가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편안한 교복 관련 규정 변경을 위한 절차를 조언하는 등 자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공론화 의제 선정 기준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첨예하게 대립이 갈리는 의제인 외고 자사고 폐지 정책을 제치고 교복 개선이 1호 안건이 됐기 때문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코르셋 교복’ 등 매스컴을 통해 불편한 교복에 대한 보도가 잇달았고, 관련한 국민 청원이 7월초 기준 357건에 달하고 있다”며 “특히 국무회의에서까지 교복 문제가 언급되는 등 학교 복장개선에 대한 범시민적 관심이 고조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화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만큼 구체적이고 공정한 의제선정 기준을 밝혀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청원 수로 따지자면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은 셀 수 없이 많다.

공론화로 마련된 가이드라인이 ‘교복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 ‘학교규칙의 기재사항’ 항목 가운데 하나인 교복은 학교 자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장은 “교복은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결정할 내용인데, 교육청이 공론화까지 거쳐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면 학교는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교육청 관계자는 “교복 디자인과 학교복장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각 학교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단순히 교육청 권장 지침으로 처리하지 않고 숙의 민주주의 기반의 공론화로 확대해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2주짜리 대입개편’.. 공론화 창시자도 일침>
반면 교육부의 대입개편은 수요자의 관심이 가장 쏠린 사안인데도 뭇매를 맞고 있다. 원전이나 자사고 폐지처럼 찬반이 뚜렷한 의제들과 달리 대입개편은 주요 쟁점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가 전달한 이송안에서 일부를 추려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공론화에 부치기 과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생 학부모가 아닌 일반시민으로 참여한 A씨는 “토론회 이전에 자료가 미리 배포됐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일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데 밤에 다로 시간을 내 전문적인 내용을 학습하기는 어려웠다”고 전했다. 

공론화 창시자로 알려진 미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60) 교수도 시나리오 방식의 공론화에 일침을 가했다. 6월 방한한 피시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방식으로는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100회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시나리오 방식으로는 진행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피시킨 교수에 따르면 공론조사는 시민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한 뒤 입장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둔 여론수렴 기법이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단순 명료하게 물어 입장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시킨 교수는 시나리오 방식이 여러 변수를 조합한 포괄적인 선호도를 묻는 방식인 탓에 피해왔다고 설명했다.

공론조사 결론을 그대로 정부정책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피시킨 교수는 “신고리 원전과 달리 대입은 정부가 전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안이 아니다.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공론화로 결정된 신고리 원전보다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공론화는 정책결정 단계 이전에 국민의 지지나 요구를 수렴하는 문제제기 단계”라며 “특히 학종 수능간 전형비율 문제는 교육정책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교육과정의 질 관리 등을 통해 평소에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과정이다. 대학과 고교 현장 관계자들을 필두로 전문가 집단의 연구와 토론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에도 공론화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다. 교육부는 하반기 정책숙려 과제로 ‘학교폭력’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를 제시하고 현재 공론 절차를 준비 중이다. 3월 교육부가 정책숙려제 1호 안건으로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예고한 것으로 9월부터 본격화한다. 지난달 학생부 개편 공론화가 끝나자마자 숨 가쁘게 다음 과제로 넘어간 모습이다. 

<책임회피 수단 전락한 공론화.. ‘국가교육회의 데자뷔’>
민감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면피수단으로 전락한 국가교육회의의 자리를 공론화가 대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정권적 정책결정기구인 국가교육위의 징검다리로 기대를 모았던 교육회의는 당초 의도와 달리 교육부의 책임회피 수단이 돼왔다. 자사고 폐지정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진보교육감들이 폐지를 공언하면서 전국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자사고는 물론 외고 국제고 교장들이 잇따라 반대성명을 냈다. 학생 학부모는 물론 동문들까지 동참하며 반대여론이 전국으로 번졌다. 이에 당시 임명 전이었던 김상곤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고교체제 개편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기겠다고 답변했다. 장기과제로 넘어가는 듯했지만 작년말 시행령 개정으로 고입 동시실시를 단행한 상태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고교학점제도 현장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교육회의 의제로 넘어갔다. 2015개정교육과정 도입을 명분으로 각 교육청은 TF를 결성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반면 고교 현장에서는 교원 수급문제, 시설확보 등 선행과제들이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교조까지 기본 개념에 대한 합의나 안정된 재정수급 없이 전면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비판에 나섰다. 교육부는 비판여론에도 2022학년 고교학점제 도입을 공언했다. 

초중등교육 권한을 교육부에서 교육청으로 이양하는 문제도 교육회의가 다뤄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진보교육감들이 강하게 요구한 사안이지만 단위학교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교육감의 권한 독점 문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역시 중장기 논의가 필요한 의제지만 이미 교육부가 밀어붙인 상황이다. 김 부총리는 작년 열린 교육자치정책협의회에서 교육자치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교육자치 정책 로드맵’을 심의 의결했다. 

논란이 일 때마다 교육회의를 방패삼았던 의제 대부분이 교육부의 독단으로 처리됐다. ‘속 빈 강정’이라는 교육회의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과제로 꼽힌 대입개편이 진행 중이지만 정작 교육회의는 보이지 않는다. 대입개편특위를 출범한 데 이어 연달아 공론화위를 출범하며 ‘연쇄하청’으로 ‘폭탄돌리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육부가 여러 쟁점을 늘어놓으며 교육회의에 공을 넘긴 데 이어 교육회의도 산하기구 결정 뒤에 숨어버린 꼴이다. 당시 한 사립대 교수는 “이제까지 교육회의가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최선의 안을 내놓을 것처럼 홍보해놓고 사실상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7명의 공론화 위원에게 떠넘긴 꼴”이라고 꼬집었다. 

공론화위로 넘어간 대입개편안이 시민참여단의 손으로 또다시 넘어갔다. 문제는 3일 발표하는 개편안이 그대로 최종 개편안이 된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 결론을 놓고 최종 권고안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8월말까지 최종안을 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민참여단의 권고안이 최종 권고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설령 국가교육회의가 다른 의견을 낸다 해도 공론화를 하겠다며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일을 벌려놨는데 충분한 명분 없이 변경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입개편 권고안을 만들어 교육부에 넘기면, 교육부는 이달말까지 최종 확정해 발표한다. 김 부총리는 그동안 수차례 “공론화위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문제는 교육회의와 달리 공론화는 책임자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게 공론화의 장점이지만 함정이기도 한 셈이다. 한 대학관계자는 “공론화를 거친다는 건 시민의 의견이라는 명분을 얻겠다는 뜻”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와도 책임이 분산되는 만큼 민감 사안을 처리하는 책임회피 수단이 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정책숙려제와 교육회의의 대입개편은 물론 각 교육청에서도 민감 현안을 공론화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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