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담 최소화? 부담미루기일 뿐'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수학 과학계를 중심으로 2022수능에서 ‘기하’와 ‘과학Ⅱ’ 과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을 포함한 13개 과학기술 관련 단체 대표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교육부의 ‘2022수능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안’은 문/이과 융합인재 양성을 고사하고 어느 분야의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인력을 배출할 것”이라며 “과학기술계는 더 이상 수/과학 교육과정과 수능 출제범위 축소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27일에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과학계는 국가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기하와 과학Ⅱ는 반드시 수능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고교에서 기하와 과학Ⅱ를 학습하지 않고 이공계열로 대학에 진학할 경우 오히려 수험생들의 학습부담이 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과학Ⅱ를 출제범위에 포함하더라도 이미 특정과목 쏠림현상이 뚜렷하다는 문제가 남는다. 현재 과학Ⅱ는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돼있지만 응시율이 현저하게 낮을 뿐 아니라 이 중에서도 특정 과목 응시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전북대 물리학과 김진승 교수는 2018수능에서 과학Ⅱ 응시율은 5%가 안 되며, 물리Ⅱ 화학Ⅱ는 각 1%도 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수능에서 과학Ⅱ 과목의 낮은 응시율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다.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상대적으로 응시자가 많고 난도가 낮은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대학에서 공부할 전공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과목을 응시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꼬집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학 과학계를 중심으로 2022수능에서 ‘기하’와 ‘과학Ⅱ’ 과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2022수능, 기하 과학Ⅱ 제외.. ‘학습부담 최소화? 부담미루기일 뿐’>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2022수능 과목구조와 출제범위를 논의하기 위해 5차 대입정책포럼을 열었다. 이날 공개된 개편안에 의하면 2022수능 출제범위는 국어와 수학의 경우 공통형+선택형 구조로 실시하고, 탐구는 계열 구분 없이 사회 9과목 중 1과목, 과학 4과목 중 1과목을 교차 선택한다. 

수학은 가/나형을 분리하지 않고 단일형으로 출제한다. 수Ⅰ,Ⅱ는 공통 출제하고 확률과통계 미적분 가운데 하나를 필수 선택해 응시한다. 2021수능 출제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기하는 2022수능에서도 빠지게 되는 셈이다. 

과학Ⅱ 4개 과목도 출제범위에서 제외된다. 2021수능에서 논란 끝에 포함됐던 과학Ⅱ 4개 과목이 2022수능에서는 출제되지 않는다. 교육부가 과학Ⅱ를 출제범위에서 제외한 가장 큰 이유는 2015개정교육과정이다.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과학Ⅱ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다.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수능 출제범위는 진로선택과목을 출제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수학에서 제외된 기하 역시 진로선택과목이다. 

과학기술단체 대표는 “‘학습부담 완화’를 이유로 미래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정책은 중단돼야 한다”며 “2022수능에서 이공계열 지원자 대상 과목에서 기하와 과학Ⅱ를 포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고교에서 배워야 할 기초 소양인 기하, 과학Ⅱ 과목을 학습하지 않고 진학할 경우 결손을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하에서 다루는 ‘타원’ ‘쌍곡선’ ‘벡터’ 개념은 이공계 대학과정에서 ‘알파벳’에 해당하는 ‘기초’라며, 기하를 모르면 대학에서 전공분야 학업을 이어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입정책포럼 당시 토론자로 참석한 KAIST 수리과학과 진교택 교수는 개정교육과정에서도 무리 없이 기하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봤다. 진 교수는 “2021수능에 기하를 포함하지 않은 첫째 이유가 2015개정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과 수험생 부담 완화라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하가 수능 수학 가형에 포함돼도 일선 학교의 전체 교과목 운영에 영향을 주지 않게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전체적으로 2009개정교과서에 비해 2015개정교과서 분량이 20%이상 감소돼 선택과목 모두 5단위가 아닌 3~4단위로 운영할 수 있다. 교육과정 총론에 따라 시수 증감(일반선택±2, 진로선택±3)이 가능하다. 선택과목을 모두 4단위로 편성하면 수학 기준시수 28단위 범위에서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 물리학과 김진승 교수는 과학Ⅱ를 제외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출제범위를 정하는 데 ‘수능준비 부담 최소화’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공부가 오직 수능 준비용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최선의 단기 대책은 수능에서 과학 과목을 모두 치르게 하고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기형적인 수능 응시현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2018수능 전체 응시자 가운데 과탐 응시자 비율은 반도 안 되고, 고급 수준의 과학 과목인 Ⅱ과목 응시자는 4.85%밖에 안 된다”며 “첨단산업의 바탕이 되는 물리Ⅱ 화학Ⅱ는 겨우 각 0.53%, 0.6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2017년 전북대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개설한 과학 강좌를 보면 물리학이 117개(38.5%)로 가장 많고, 화학이 123개(40.1%), 생물이 48개(15.8%), 지구과학이 16개(5.3%)로 가장 적다. 다른 주요대학에서도 이러한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에 들어와서 정작 필요하다고 판단해 선택하는 과목은 압도적으로 화학과 물리학인데, 수능에서 선택하는 과목은 압도적으로 생명과학과 지구과학이 많은 실태”를 지적했다. 고교생들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생명과학과 지구과학 공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전공 분야와는 거의 상관이 없어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수학계, 교육과정 연구 당시부터 ‘기하’ 포함 주장>
기하가 수능 출제과목인 ‘일반선택과목’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2015년 당시 교육과정 정책연구진과 자문단은 진로선택이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될 가능성 때문에 기하가 ‘진로선택’이 아닌 ‘일반선택’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과목 분류는 출제범위와 관련이 없다며 연구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교육과정 개발 당시 정책연구자로 참여했던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면서 수능 출제범위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연구진들도 진로선택과목인 기하가 수능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지속적으로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권 교수는 교육부가 수능 출제범위를 연구하는 팀이 별도로 있고, 과목 분류와 수능 출제는 다른 문제라며 교육과정 개발에만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연구진은 물론 수학자, 수학교육전문가들과 자문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기하를 일반선택에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교육부가 내놓은 출제범위를 보니 진로선택은 출제범위에서 제외하는 게 원칙처럼 돼버렸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해명은 연구진의 입장과 상반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5 교육과정 개발 당시 일반선택과목은 수능과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개발 방향으로 내포했다”면서도 “이러한 방향이 연구진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능에서 기하는 변별력을 가르는 ‘킬러’문항이 자주 출제되는 영역이다. 정책연구진으로 참여했던 또다른 교수는 “교육부의 의도를 좋게 해석하자면 학습부담 경감이라는 차원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기하를 굳이 제외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 수학계 의견은 이와 다르다”며 “난이도가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기하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로봇 인공지능 3D프린팅 자율주행차 컴퓨터그래픽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신기술 개발의 핵심 분야로 학습 필요성이 매우 높은 과목”이라고 주장했다. 

<공학교육 위기 ‘심각’.. 서울대, 물리 기초강의 ‘의무수강’ 규정>
과학Ⅱ 학습 필요성을 대변하듯 서울대 공대는 내년부터 고교 과정에서 물리Ⅱ를 배우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기초강의를 의무 수강하도록 할 방침이다. 서울대 공대는 6월초 교과과정위원회를 열고 고교에서 물리Ⅱ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물리학’ 대신 ‘물리의 기본’이라는 과목을 이수하도록 규정했다. ‘물리의 기본’은 물리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난도를 낮춰 개설한 강의다. 내년 신입생 가운데 물리학이 필요한 전공분야 학생들은 의무 수강해야 한다.

고교 때 물리Ⅱ를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중도포기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공대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물리Ⅱ를 배우고 들어오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 격차가 발생해 중도에 수강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물리의 기본’과목은 보충수업보다는 배경지식이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개설된 물리학 강의 중 학생들의 수강 중도취소율이 15%를 넘는 강의 비율은 24%로 수학(7%)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중도취소율이 25%를 넘는 강의는 물리학과 수학이 각 8%와 1%로 격차가 더욱 컸다. 

최근 3년간 이공계열 학과에 입학한 서울대 신입생 가운데 고교에서 물리Ⅱ를 이수하지 않은 학생은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시 입학생을 중심으로 물리Ⅱ를 배우지 않은 학생이 두드러졌다. 수시 입학생의 57.2%인 801명이 물리Ⅱ를 이수했지만, 정시 입학생 중 물리Ⅱ 이수자는 49.1%(270명)로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물리Ⅱ 이수자가 그나마 절반을 넘을 수 있었던 건 수시 입학생들 때문인 셈이다. 공대 신입생 1966명 중에서 물리Ⅱ를 이수한 학생은 1080명(54.9%)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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