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카니 :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가을 햇살이 따사로워 보이는 오후,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중절모를 쓰고 넥타이를 맨 노인이 홀로 의자에 앉아 있다. 햇살에 눈이 부신지 힘에 겨운 동작으로 선글라스를 쓴다. 이어서 나타나는 정지된 듯한 화면. 고풍스런 저택의 앞마당이 화면에 펼쳐진다. 그 노인은 왼쪽 한 구석으로 멀어져있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십자가로 치장을 한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노인 주위를 맴돈다. 노인의 팔이 늘어지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놀란 강아지가 다가간다. 음악도 끝난다.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이다.

1972년에 만들어진 영화 ‘대부(The Godfather)’. 마피아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미국 영화 중 가장 잘 만들어진 명작 중 하나인 것만은 확실하다. ‘속편은 실패한다’라는 속설이 무색할 정도로 ‘대부 2’ 역시 수작이며, 1990년 제작된 완결편 ‘대부 3’는 다소 평가가 엇갈리긴 했지만 ‘알 파치노’의 뛰어난 연기와 영화 후반부 시칠리아 팔레르모 오페라극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암살 장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 라스트 씬 만으로도 명작 대열에 합류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우리말로 옮기면 ‘시골의 기사’라는 뜻이 되겠지만 우리말로 번역해서 제목을 거론하는 경우는 없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기사’가 우리들 머릿속에 각인돼있는 ‘중세시대의 멋진 기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치정에 얽혀 연적에 의해 칼에 맞아 죽는 평범한 시골 청년인 까닭도 있을 것 같다. 오페라는 19세기 말 시칠리아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부활절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투리두’는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청년이다. 군에 가기 전 연인이었던 ‘롤라’는 이미 다른 남자 ‘알피오’의 아내가 돼있었기에 ‘투리두’는 어쩔 수 없이 마을 처녀 ‘산투짜’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질투의 여인 ‘롤라’가 다시 ‘투리두’에게 접근하면서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롤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주인공 ‘투리두’는 시칠리아 풍습에 따라 결투를 신청하고 ‘알피오’의 칼에 맞아 숨진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기획한 ‘단막 오페라 현상 공모전’에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이다. 무명의 음악교사였던 27세의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는 이 한 편의 오페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유명한 작곡가 대열에 합류했다. 1시간여의 ‘단막오페라’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잘 짜인 구성, 극적인 재미를 더하는 대사와 효과음, 아름다운 아리아와 합창 등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잘 만들어진 오페라로, 발표되자마자 전 유럽에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전의 오페라 내용이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귀족 또는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반면, 이 작품은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서민들의 사랑과 치졸한 질투,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줄거리로 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오페라였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음악계에는 ‘사실주의(Verismo) 오페라’라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으며, 영웅주의, 신비주의와 대비되는 현실적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줄거리로 서민들이 함께 웃고 울면서 즐길 수 있는 오페라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줄거리가 간단하고 연주시간도 짧아 음반으로 전곡을 감상하더라도 지루할 틈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개의 아리아와 합창곡 그리고 후반부에 삽입된 간주곡은 특히 아름답고 처절하다.

합창곡 ‘오렌지 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부활절 아침, 교회로 향하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다. 전주곡이 끝난 후 경쾌한 교회의 종소리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연인들의 사랑을 찬미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내용으로 비극적 줄거리와는 무관하게 부활절을 찬양하는 경건하고 평화로운 곡이다.

산투짜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변심한 연인 투리두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애절하게 호소하는 소프라노 아리아로 가슴이 찢어질 듯 처절한 심정을 노래하는 격정적인 곡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표적인 아리아다.

간주곡 Intermezzo. 오페라 후반부.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결투를 앞두고 마을은 잠시 조용해지며 관현악은 경건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선율을 뿜어낸다.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아련한 옛 추억들을 연상시켜 주는 듯한 매혹적인 이 멜로디는 이 오페라의 백미다. 부활절의 경건함, 사랑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이 지닌 질투와 그로 인한 비극 등이 이 짧은 간주곡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투리두 아리아 ‘어머니, 이 술은 독하군요’. 결투에 져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투리두가 어머니에게 술에 취한 척하며 이별을 고하는 비극적 아리아다. “만약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불쌍한 산투짜의 어머니가 되어주세요”라는 이별의 말을 남기고는 결국 결투장으로 향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1953년에 마리아 칼라스와 쥬제페 디 스테파노가 함께한 녹음은 전성기 시절의 명콤비 연주로 단연코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다. 산투짜 역 소프라노 칼라스의 음성으로 듣고 나면 다른 소프라노들의 음색은 밋밋하게 들린다. 시칠리아 태생의 스테파노는 정열이 넘치며 시칠리아 청년 투리두와 혼연일체가 느껴진다. 모노시대의 음반이지만 음질도 아주 좋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The Godfather III, ending scene 영상보기 클릭 => 
https://www.youtube.com/watch?v=t50QSG-XKNA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H. V. Karajan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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