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초래한 교육부 해체하고 국가교육개혁위 설치해야’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교육계 원로들이 포퓰리즘과 단기처방에 급급해 교육전반에 대혼란을 초래한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대량생산 방식의 강의중심교육이 구시대적 모델이 된 상황에서 하향평준화 획일화된 교육으로 회귀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사교육 없애기’에 치중하다 보니 공교육의 역할이 줄고,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로들은 대혼란의 주범인 교육부를 해체하고 10년 임기의 국가교육개혁위원회 출범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이미 정치화한 교육감 직선제 보완, 대입의 자율성부여, 수요자중심의 다양한 중고교 체제 확대, 대학200개 축소 개혁 등을 교육개혁방안으로 제시했다.

바른사회운동연합(바사연) 교육개혁추진위원회(교개추)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이 교개추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김승유 전 하나학원 이사장(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이여성 전 현대로템 대표이사, 신영무 바사연 상임대표, 정일화 충남고 수학교사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교육계 경제계 원로를 비롯한 현직 교사까지 각계 인사들이 미래교육을 논하는 자리였다.

교육계 원로들이 평준화 교육으로 회귀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대량생산 방식의 강의중심교육이 구시대적 모델이 된 상황에서 획일화된 교육으로 회귀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사진=바른사회연합 제공

<현 정부, 평준화 회귀 정책.. ‘인기영합’ ‘책임회피’>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토론 발제를 밭은 이주호 위원장은 “교육의 대전환 시기에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대혼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교육을 정치적 목적 혹은 이념의 수단으로 삼거나, 교육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려는 단기처방과 인기영합에 급급하다 보니, 교육정책이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정책이 평준화와 획일화의 과거로 역주행하는 대표적 사례로 고교정책을 꼽았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평준화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화를 추진했으나, 다양화가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간의 수직적 차별화를 초래한다는 반발에 직면하면서 다시 평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며 교육정책의 대안으로 ‘개별화 교육(personalized learning)’을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자사고 혹은 특목고를 없애기 보다는 모든 학교에서 그리고 모든 교실에서 대량 맞춤학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평준화와 다양화를 넘어서 개별화‘로 교육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수월성교육과 평등교육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닌, 개별화 교육 혹은 대량 맞춤학습을 통해 수월성교육과 평등교육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유 전 하나학원 이사장도 의견을 보탰다. 김 전 이사장은 “요즘 상당히 낙담을 하고 있다”며 “자사고를 다 없앤다는데 자사고는 다 똑같지 않다. 다 다르게 자기교육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자사고가 대입준비학원으로 변질됐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거창고처럼 교육철학을 가지고 ‘전인교육’을 꿋꿋이 이어가는 학교도 있는데 무조건 자사고를 없앤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학교들은 오히려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사고가 귀족학교라는 오해도 불식시켰다. “하나고에서도 정원의 20%를 경제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로 선발한다. 그 친구들이 하나고에 와서 악기 하나, 운동 하나를 각자 배우니 1년이 지나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증현 전 장관도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짚었다. 윤 전 장관은 “평준화 교육은 경쟁을 무시하고 경쟁을 터부시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최근 추세를 보면 다시 평준화로 돌아가고 있다. 평준화 대안으로 자사고를 없애자는 얘기인데 경쟁하기 싫으니까 없애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교육부가 대학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장은 “급감하는 학생 수로 대학재정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교육부는 대학평가에 연계한 대학 재정지원을 통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며 “대학평가에 정성적 항목을 추가하면서 교육부가 대학의 재정지원을 좌지우지하고, 더 나아가 만약 현재 추진하는 것처럼 사립대학에도 정부가 경상비를 지원한다면 사립대학이 마치 사립 중고등학교처럼 더욱 더 강한 정부통제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정책결정 방식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이 위원장은 “한 때 정부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정부의 역할이 우려스럽다”며 “현 정부의 모습은 인기영합주의이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더 이상 톱다운(Top-Down/위로부터 지시) 방식으로 가선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보텀업(Bottom-Up/아래로부터 의견 전달) 방식, 즉 모든 주체들이 함께 교육을 디자인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은 “제일 큰 문제는 대학의 자유회복”이라며 “없는 재정을 여러 대학에 나눠줄 게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은 국공립대에 몰아주고, 사립대에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획일교육 대안은?.. ‘교사 재교육과 학교 자율성’>
참석자들은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대안으로 교사 재교육과 학교 자율성을 제안했다. 앞으로 교사는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학습 기회를 주는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까워지면서 인공지능(AI)를 비롯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디지털 기술이 교실에 들어오면 학생들에게 맞춤형교육을 할 수 있는데, 막상 교사가 아이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읽지 못하고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을 하면 아무리 입시제도를 바꿔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교사를 변화시키지 않고 대입제도 몇 가지만 고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일반고 교사가 미래지향적 방식으로 수업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춘다면, 모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네들이 필요한 학습의 경험이 가능하다. 대량맞춤형 교육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소수의 아이들에게만 개별화가 가능했지만 많은 나라들이 재정이나 교사역량이 안됐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교사역량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참석자들도 미래 교육을 위해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김승유 전 이사장은 “교사들이 40대 초반까지는 의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주하며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도 “교육의 핵심은 교사”라며 “국내 교사들의 수준은 해외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로 높다. 지금이라도 이들이 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 에듀테크(edutech, 교육과 기술의 결합)를 학교에 도입하고, 교사가 학습 디자이너가 되도록 지원하며, 대학의 자율과 책무를 강화하고, 교육부가 주도하던 교육변화 방식을 탈피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이 주장하는 ‘대량맞춤학습’이란 인공지능(AI) 등 미래기술을 활용해 모든 학생에게 학생별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위원장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2016년부터 신입생의 수학과 생물학 등 기초과목 학습에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 ‘알렉스(ALEKS)’를 도입했다. AI가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평가한 뒤 개인의 장점과 약점, 소질에 맞춤 문제와 학습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시스템 도입 뒤 학생들의 수학 성적은 이전보다 평균 28% 향상됐고, 생물학 시험에서 C학점 미만 학생 비율이 22% 줄었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근본 철학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 전 장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런 철학과 이념이 없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무얼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인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방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가정부터 학교까지 일관되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미국은 ‘거짓말하지 않는 것과 법질서를 지키는 것’, 영국은 ‘명예를 잃지 않는 것’처럼 교육 철학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그런 뿌리가 없기 때문에 교육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바사연 교개추는 7대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임기 10년 이상의 국가교육개혁위 설치, 교육부 해체 ▲수능 폐지 또는 자격고사화, 대입 자율화 부여 ▲초중고에 프로젝트 수업 도입, 컴퓨팅 사고력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혁 ▲교대 사대 폐지, 교원전문대학원 통한 교사 양성 ▲학생 선발, 교육과정 자율성 가진 다양한 중고교 체제 확대 ▲학생 수 감소에 맞춰 대학 수 400개에서 200개로 줄이는 구조개혁 추진 ▲교육감 직선제 보완 또는 임명제/간선제 도입 등이다.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원회는?>
이날 간담회에는 신영무 에스앤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 이기수 전 고려대 청장, 정창연 전 연세대 총장, 윤증현 전 장관, 이여성 에스앤엘파트너스 고문, 김승유 전 하나학원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정 전 총장, 이 고문, 김 전 이사장은 교육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이다. 김 전 이사장은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의 법인 이사장을 지냈다. 하나고는 하나금융그룹이 세운 학교로 설립 당시 김 전 이사장은 하나은행장이었다.

발제를 맡은 이주호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거쳐 2010~2013년 교과부 장관을 지냈다.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교육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오세정 국회의원/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우동기 전 대구교육감/영남대 총장,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이종감 네오플럭스 부회장, 정일화 충남고 수석교사/대전교총 부회장, 정재영 성균관대 전 부총장 등이 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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