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방식 회의 확산'..'책임 떠넘긴 교육부 성토'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대입개편 공론화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공론화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교육현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교육 현안을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한 것부터 갈등을 이미 예고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성 시비를 차치하더라도 네 가지로 압축된 공론화 시나리오를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역시 시나리오 간 균형성이 부족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내놨다. 

공론화 방식이 장기적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기 어려운데다 책임을 여론에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정치적 선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진보 교육운동단체 44개가 연대한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교육위원회’는 “모든 결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입개편 공론화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 가지로 압축된 공론화 시나리오를 두고 균형성 논란이 있는 데다, 의제 마련에 참여한 교육단체들이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론화 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실정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공론화 운영 과정 불공정” “위원회 관리부실”>
18일 공론화 의제2 참여단체는 좋은교사운동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입 공론화 위원회 운영 과정에서 묵과할 수 없는 불공정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발단은 시민참여단에게 제공되는 숙의자료 제작과정이다. 상호 검증회의를 실시한 이후 최종 인쇄본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의제2팀은 “의제4팀의 수정 내용은 의제2 내용에 대한 반론적 보완 부분이 몇 군데 있다”며 “공론화위는 이를 제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사실을 의제2팀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검증회의를 통해 상대방 자료를 다 본 상태에서 이를 반영해 보완하는 것은 마치 상대방의 답지를 보고 자신의 답지를 고치는 부정행위와 같다”고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공론화위원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론화위는 설명 보도자료를 통해 “협의회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공정하게 운영했다”며 “의제2팀이 기자회견문에서 밝힌 ‘원칙’은 공론화의제협의회에서 합의되지 않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의제2팀은 공론화위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론화위의 책임 있는 태도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공론화위가 숙의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를 부실하게 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합의된 원칙 아님’이라는 입장과 유감을 표명한 것은 엄중한 대입공론화 과정을 관리하는 공론화위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수/진보 막론 공론화 과정 불만.. 결과 받아들여질까> 
공정성 시비를 떠나 공론화 시나리오를 두고 교원단체의 불만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불거져 나오는 실정이다. 하윤수 교총회장은 17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대입제도 공론화 시나리오는 수시/정시비율, 수능 평가방법, 수능최저학력기준에 대한 입장을 조합해 4개안 중에서 선택을 강제하고 있다”며 “논의 주제의 복잡성으로 인해 시나리오를 만들었지만 어느 시나리오에도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개 안 중 하나로 합의하더라도 합의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교조는 시나리오 간 균형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론화위의 4개 시나리오 중 절대평가는 1개뿐이고, 나머지 3개 모두 상대평가를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이미 균형성은 상실되고 있다. 이는 현장교사들의 전반적인 의견과 충돌하는 시나리오 구성”이라고 비판했다. “첨예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입시제도를 일반시민 공론화로 접근했던 애초의 발상에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학교교육정상화와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를 공약과 국정과제로 세웠던 점에 비춰볼 때 일반시민 공론화라는 구상은 무책임한 것이었다. 올해 상반기 진행되고 있는 학생부와 대입제도를 주제로 한 공론화 절차에 대해 냉정하게 성찰/평가해 공론화 및 정책숙려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원단체도 외면하는 탓에 공론화 결과가 현장에서 반발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하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개편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크다. 한 교육 전문가는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도리어 여론을 외면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며 “공론화위원회가 수렴하겠다는 ‘여론’의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결정 책임 국민에 떠넘겨”.. “정치적 계산의 산물”>
공론화 방식을 선택한 것이 장기적인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기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약화시키기 위한 선택 아니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다. 진보 교육운동단체 44개가 연대한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교육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언뜻 민주적 절차로 보이는 이와 같은 공론화 절차는 모든 결정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다.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박근혜 정권과 교육을 오로지 정치적 계산으로 접근하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6일에는 전교조가 공론화 과정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6월16일부터 17일까지 있었던 공론화 의제 마련을 위한 시나리오 워크숍에 참석한 결과, 공론화 의제 선정 과정(시나리오 작업)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며 “방향 없이 흔들리는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에 더 이상 참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잠정 불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찬반을 가르기 힘든 교육 사안을 공론화 과정으로 결정하기로 했을 때부터 이미 잡음이 예견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 현안을 두고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치기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우리나라 교육열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맹점이다. 개인에 선택을 맡길 경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짙은데, 교육 사안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휘되면 교육적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눈앞의 갈등을 봉합하자고 장기적인 교육 가치를 훼손할 우려도 있다”며 “공론화 방식보다는 현장 교육전문가들의 장기간 치열한 토론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극명한 대립만 재확인.. 합의 가능성 의문>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 차가 크다보니 애초에 공론화를 통해 국민합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수시/정시 비율 문제가 대표적이다. 32개 교육단체가 속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는 “수시/정시 비율을 정하자는 주장은 애초 일부의 정시확대 요구 때문에 대두된 것으로, 학부모간에도 계층별/지역별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설명했다. 

첨예한 대립은 지난해 연말부터 네 차례 실시된 대입개편포럼과 국민제안 열린마당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논의가 합의점에 다다르기보다는, 학종-수능 적정비율을 둘러싼 극명한 대립만 확인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공청회에서는 여전히 줄세우기 식 수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이미 학교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대입을 바꾸려는 것 아니냐”며 “개편할 제도가 적용될 학생들은 현재 중2학년 이하 학생들이다. 자유학기제 등을 통해 학교 수업과 평가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수능을 확대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능 문제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한 고등학생은 “수능수학에서 29~31번 문제는 변별력 문항이라고 한다”며 “나머지 문제는 모두 쉬운 문제로 출제해 쉬운 문제 중 하나라도 실수하면 무조건 재수를 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두가 풀 수 있는 문제와 모두가 풀기 힘든 3문제를 두는 것이 정당한지 모르겠다”며 “수능 난이도 조정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수능의 공정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 성남에서 온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교육제도를 도입해도 학종처럼 좋은 취지가 왜곡될 것”이라며 “수능이 완벽한 체제는 아니지만 지금 현실에선 상당기간 유지돼야 하고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또 다른 학부모는 “학종은 내신성적이 최상위권인 학생에게 유리한 선발제도”라며 “아무리 성실한 학생도 결코 합격을 담보할 수 없다. 고액 컨설팅까지 받아 지원한다고 해서 선발될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높은 교육열’.. 장기적 교육가치 고려하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차지한 위상을 고려하더라도 공론화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우려가 많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OECD 최상위에 속한다. 여타 OECD회원국 대비 일찍 교육에 참여하고 대학교육 이수율도 높아 상당한 기간을 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2015년 기준 OECD평균 취학률은 △5세이상 14세이하 97% △15세이상 19세이하 85% △20세이상 24세이하 42%인데 반해 한국은 △5세이상 14세이하 98% △15세이상 19세이하 86% △20세이상 24세이하 51%였다. 특히 20~24세의 경우 한국이 OECD 평균보다 9%p 더 높았다. 대학교육에 대한 한국의 교육열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다. 유아교육단계의 연령별 취학률은 △만3세 92% △만4세 91% △만5세 92%로 OECD평균(만3세 73%, 만4세 86%, 만5세 82%)을 훨씬 상회했다. 

교육열이 강한 한국에서 공론화 방식으로 교육정책을 결정할 경우 장기적인 교육적 가치를 고려한 선택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인에게 선택을 맡길 경우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정시에 유리한 학생을 둔 부모라면 정시를 지지할 것이고, 정시에 자신이 없는 아이 학부모라면 수시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렇다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은 교육정책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입개편을 둘러싼 논의에서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는 드러난다. ‘공정성’ ‘신뢰성’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교육 지향점에 대한 논의 없이는 결국 지난 정권에서 되풀이 된 입시 뜯어고치기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미래 인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풀이로는 기를 수 없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종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초 학종 도입 시 논의됐던 ‘미래 교육’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단순히 전형 비율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논의가 치환됐다”고 지적했다. 

<정치 벗어난 교육.. ‘교육위’ 필요성 대두>
공론화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권초월’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해관계, 정치논리와 관계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휘둘리는 교육정책으로 극에 달한 수요자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주요 교육정책을 중장기적 안목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교육문제만을 전담할 독립기구의 설립은 교육계의 오랜 숙원이다. 2013년 서울대 김경범 교수, 인천하늘고 주석훈 교감(현 미림여고 교장), 영동일고 진동섭 교사(현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 등이 ‘입학사정관제 안정화를 위한 대입 3년 사전 예고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밝힌 ‘대입위원회’ 설립 주장이다. 보고서에서는 그간 대입정책이 중구난방으로 바뀌어 온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의 지향점은 대입안정성 확보에 맞춰졌다. 수능 관련 방침이 채 3년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학부모/수험생 등 교육수요자들이 대입을 미리 예측할 수 없어 사교육에 의존,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인 것이다. 결국 오락가락하는 대입정책을 안정화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양산과 공교육 무력화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됐다. 

작년 치러진 대선에서 국가교육위 설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대다수 후보들은 교육부를 폐지하고 교육위를 설치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교육위를 설치하되 집권 초기에는 교육위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국가교육회의를 운영하겠단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공약집에선 ‘집권 초기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설치’ ‘장기적으로 중장기 국가교육정책 논의를 위한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추진’ ‘초중등교육은 시도교육청과 단위학교로 권한을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평생/직업교육 중심으로 기능 재편’하는 등 교육거버넌스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선 이후 공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2019년에는 중장기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로 나아갈 징검다리로 기대를 모은 국가교육회의가 출범하기도 전에 고교체제 단순화 등 주요 현안을 교육부가 밀어붙이면서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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