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시와 학종사이 걸친 미봉책 "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수능 EBS연계율을 50%로 축소한다고 고3 교실에서 EBS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는 수업파행이 해결될까. 교육부는 13일 실시한 대입정책포럼을 통해 수능 EBS연계율을 현행 70%에서 50%로 줄이고, 간접연계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0%로 축소한 연계율이 EBS문제풀이 식 수업파행을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간접연계 방식으로 인해 변형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수험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어중간한 연계율을 두고 교육부가 비판여론을 피하기 위해 애매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연계율이 50%라는 것은 연계를 하지도 안 하지도 않겠다는 의미”라며 “EBS연계 폐지라는 과감한 정책으로 인한 비난도 피하면서 현장교사들의 수업파행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어 50%라는 숫자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날 함께 공개한 자소서 분량축소 방안 역시 자소서로 인한 대필이나 표절, 허위기재 등 부작용을 비판하는 여론을 감안했지만, 자소서를 아예 폐지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고려하다보니 '사실중심 개조식 자소서'라는 기이한 대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입에서 이미 특목고와 자사고를 중심으로 자소서가 전형자료로 활용되는 마당에 대입에서만 사실기록 중심 개조식 자소서를 작성한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미봉식 개편안에 수험생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수능 EBS연계율을 50%로 축소한다고 고3 교실에서 EBS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는 수업파행이 해결될까. 교육부는 13일 실시한 대입정책포럼을 통해 수능 EBS연계율을 현행 70%에서 50%로 줄이고, 간접연계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연계율 축소하면 수험파행 해결될까.. ‘근본적 해결 필요’>
교육부는 13일 실시한 대입정책포럼을 통해 2022학년 대입부터 EBS연계율을 50%로 축소하고 과목 특성에 맞춰 간접연계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고교 수업이 EBS문제풀이 시간으로 변질되는 등 파행적 수업운영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2월 열린 교육부 대입정책포럼에 참가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일선 학교에서 평가계획을 짤 때, 교과서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지만 실제로는 EBS교재를 활용하는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EBS연계율을 현행 70%에서 50%로 축소한다고 해서 우려하는 고교 수업파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발제를 맡은 동아대 강기수 교수는 “EBS연계정책을 폐지하더라도 다른 문제집으로 문제풀이 수업이 우려되기 때문에 전면폐지의 실익이 적다”고 말했다. “간접연계 전환을 통해 EBS교재에 나온 영어지문을 그대로 암기하거나 단순 암기식 학습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럼에도 연계율 축소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비판이 대두된다. 토론자로 참석한 계명대 박찬호 교수는 “EBS연계로 인해 학교 교육이 EBS교재 문제풀이로 전락하는 상황은 꾸준히 지적된 문제”라며 “연계율을 낮추고 간접연계 방식으로 전환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EBS교재 연계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EBS연계를 유지하는 한 수업파행은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이 앞선다. 대성학력개발연구소 이영덕 소장은 “연계율이 줄었다고 해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에서 EBS교재를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없을 것”이라며 “연계율이 50%이고 간접연계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연계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학습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EBS연계율이 축소되더라도 수험생 입장에서는 여전히 EBS교재, 학교 내신교재를 병행해 공부해야 한다”며 “여기에 간접연계 방식으로 변형 문제까지 대비하려면 학습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의 선택과 참여를 중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교수는 “EBS연계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학생 참여형 수업, 과정 중심 평가의 안착에 큰 걸림돌”이라며 “중등교육이 끝나는 시점에 실시하는 수능이 EBS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출제되면서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교수-학습이 먼저 이뤄지고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가 실현되기 위해선 EBS교재에 묶인 수능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난 피하기 위한 미봉책 대입개편안’.. ‘수험생 이중고’>
연계율 축소의 근거인 수업파행 방지에 기여하는 효과가 미미함에도 교육부가 연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부정 여론을 피하기 위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연계율이 50%라는 것은 연계를 하지도 안 하지도 않겠다는 의미”라며 “EBS연계 폐지라는 과감한 정책으로 인한 비판을 경계하면서도 현장교사들의 수업파행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어 애매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EBS연계가 유지되는 한 학종이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전국의 학생들이 동일한 교재로 공부하는 획일적 문제풀이 수업이 유지된다면 학종 평가의 발전은 더뎌진다는 지적이다. 학종은 지역별 학교별 교육환경을 고려해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을 정성 평가하는 전형이다. 학교마다 과목마다 다양한 교육활동이나 참여형 수업을 통해 학습할 것을 요구하지만 EBS문제풀이식 수업에서는 이 같은 평가방식이 발전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EBS연계율 축소는 교육부가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교육부가 학종 공정성 시비에 떠밀려 정시확대라는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유도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전체 대학도 아닌 상위권대학을 중심으로 본격 학종시대가 열렸다고 한 게 바로 지난해인데 갑자기 정시확대로 정책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비난 피하기’는 같은 날 공개한 자소서 분량축소 방안과도 일맥상통한다. 교육부는 자소서 분량을 문항당 최대 800자 분량으로 축소하고, 사실중심 개조식 구성으로 양식을 변경해 학종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사실중심 개조식 자소서’라는 기이한 대안에 이날 포럼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연세대 박정선 책임입학사정관은 “학교생활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활동은 이미 학생부에 기록하고 있다”며 “학종 평가에서 자소서가 갖는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학생부에 기재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성취과정이나 동기, 이로 인한 발전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자소서도 사실중심 개조식으로 작성한다면 학생부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자소서를 사실위주로 작성하고, 분량을 축소한다고 해서 대필이나 표절, 허위기재 등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고입에서 이미 특목고와 자사고를 중심을 자소서가 전형자료로 활용되는 마당에 대입에서만 사실기록 중심 개조식 자소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학생 선발권이 있는 영재학교 과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목/자사고는 이미 자기주도학습전형을 통해 학생들의 자소서를 받아 자기주도학습능력과 인성을 평가하고 있다.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교육부의 미봉책으로 학생들이 희생양이 될 전망이다. 애매한 정책으로 학생들이 이중고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고교생들 사이에선 정시파, 수시파라는 얘기가 있다. 처음부터 수시 대비 없이 수능만 바라보고 학원에서 수능공부만 학생이 있는 반면, 수시 특히 학종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포트폴리오를 만들 듯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라며 “물론 N수생들에게 대학 입학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정시 수능전형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시비율을 다시 늘릴 경우 달라진 교육과정에서 수능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학생들의 대입부담만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BS연계.. ‘합헌’ 결정에도 공방 여전> 
고교 수업 정상화를 위해 EBS연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EBS연계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EBS연계로 농어촌과 도서벽지 등 취약지역에서도 수능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EBS연계를 폐지한다면 EBS교재 외 다른 문제집까지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의견도 있었다. 

EBS연계정책은 2004년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2011학년 수능부터 연계율을 70%로 확대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간접연계는 2016학년 수능 영어영역부터 도입됐다. 간접연계란 EBS연계교재의 지문과 주제 소재 요지가 유사한 지문을 다른 책에서 발췌해 출제에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높은 연계율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수험생 교사 학부모 등 5인은 헌재에 ‘2018학년 수능 시행 기본계획’이 교육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단은 “다양한 교재를 이용한 창의적 학습 기회를 박탈하고 교사의 자유로운 교재선택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교육부 수능 시행계획은)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보장 등을 침해한다”고 헌법 소원의 이유를 밝혔다. “2010년 교육부와 EBS가 맺은 양해각서에 불과한 수능 EBS연계가 정부 정책처럼 변해 매년 수능에 과도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헌재는 EBS연계로 인한 사교육비 절감의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3월 헌재는 “EBS교재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며 재판권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다. “청구인단이 위헌 소지를 제기한 수능 시행계획은 수능을 EBS교재와 연계하겠다는 것일 뿐 다른 학습방법이나 사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며 “수능시험의 30%는 연계되지 않아 다른 방법을 통해 시험 준비가 필요하고,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헌재는 “EBS는 지상파 방송국으로 TV를 보유한 가정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시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시청이 가능하다”면서 “사교육 과열을 어느 정도 진정하는 효과가 있고, 학교교육의 정상화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계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고교 교육과정 파행 외에도 출제오류 문제가 꾸준히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강효상(자유한국) 의원이 EBS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EBS 연계 교재 오류는 총 882건이었다. 2017년에는 6월까지 133건의 오류가 발생, 5년6개월 동안 1000건이 넘는 오류가 발생한 셈이다. 

2월 실시한 4차 대입정책포럼에서도 EBS연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됐다. 발제자로 나선 안성환 서울대진고 교사는 EBS 교재 내용 자체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선행학습 금지법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안 교사는 “단지 연계 교재에 있는 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가 서슴없이 수능에 출제된다”면서 “EBS 영어 교재는 교육과정 기준에 따른 교과서 체계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비슷한 시기 열린 2021수능 공청회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제기됐다. 영어 영역 토론자로 참석한 황종배 건국대 교수는 “영어과의 가장 큰 문제는 EBS 연계 교재 간 괴리”라면서 “EBS 교재는 교육과정과 달리 시험용으로 만들어진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룬 지문이 많다. 물론 교육과정 범위 내에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지만 영어Ⅰ,Ⅱ 과목과는 확실한 수준 차이가 있다”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EBS 연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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