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교육제도, 신중히 시행돼야”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대법원은 서울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의 사전 동의 없이 관내 자율형사립고 6곳의 지정취소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014년 자사고 재지정평가 당시 자사고 지정 취소가 교육감 권한으로 적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교육부의 직권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법정공방 끝에 3년7개월 만에 패소로 결론이 난 셈이다. 

대법원 3부는 12일 서울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행정처분 직권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새로운 교육제도는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시행돼야 하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시행되는 교육제도를 다시 변경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며 “옛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자사고 지정취소를 할 때 교육부장관과 사전 협의하도록 한 것은 사전 동의를 받으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서울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의 사전 동의 없이 관내 자율형사립고 6곳의 지정취소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앞서 조 교육감은 2014년 10월 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운영평가를 실시한 뒤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신일고 숭문고 등 8개 자사고를 지정취소 대상 학교로 지목했다. 이중 신일고와 숭문고는 자사고 지정취소를 2016년까지 2년간 유예한다고 밝히고 나머지 6개교에 대해서는 지정취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교육부는 서울청의 자사고 지정취소가 교육감의 재량권을 넘어선 처분이라며 지정취소 처분을 교육부 직권으로 다시 취소했다. 이에 반발한 조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자사고 행정처분 직권취소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교육부는 시도교육감의 독단을 우려, 특목고 자사고 등의 지정 또는 지정취소 시 교육부 장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을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조 교육감은 이번 판결이 행정기관간 권한에 대한 것일 뿐 자사고 폐지를 대법원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 교육감은 “대법원이 오늘 판결한 것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교육청의 자사고 설립 운영에 관한 권한의 재량의 폭을 둘러싼 행정기관 간의 갈등에 대해 판결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번 판결이 자사고 폐지를 대법원이 반대하는 것으로 과잉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 교육감과 뜻을 같이 하는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자사고 지정취소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지정하거나 지정을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동의권을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 부총리는 교육부의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와는 완전히 반대의 태도를 보인 셈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교육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은 고교체제가 교육감 손에 달린 것이냐며 반발했다. 교육감의 의지나 성향에 따라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더 늘어나거나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침은 고교교육의 지역별 불균형을 심화하고 자사고가 없는 지역의 위장전입 문제 등 부작용을 예견했다. 거주지에 따라 교육기회가 다르게 제공되는 불평등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당시 한 교육시민단체 대표는 “교육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정/취소 권한을 넘겨주면 대체로 진보교육감이 수장인 지역에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사라질 것이고 보수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유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교육감의 의지나 성향에 따라 고교교육의 지역별 불균형이 발생하는 꼴이 될 텐데 교육부가 이런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정/취소 권한 이양이 실현될 경우 많은 학생들이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존재하는 지역으로 이탈할 수 있다”면서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자사고 폐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사법부가 잇따라 자사고 폐지정책에 제동을 건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와 일반고의 고입 동시실시 정책의 일환인 자사고와 일반고의 중복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올해 고입전형 계획을 수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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