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 첼로협주곡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클래식음악과 꽤나 친숙한 사람에게도 영국의 작곡가는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메시아 작곡가 헨델을 영국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일찍이 귀화해서 영국에서 활동했고 다른 위대한 영국인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국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헨델을 독일 작곡가로 분류한다. 영국의 바흐로 불리는 17세기 작곡가 헨리 퍼셀을 바로크음악의 대가라고 부르긴 하지만 요즘 그의 곡들은 잘 연주되지 않는다. 그 외에 그나마 알려진 작곡가를 열거해 봐도 몇 안 된다. 존 필드, 에드워드 엘가, 본 윌리암스, 벤자민 브리튼, 구스타브 홀스트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도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즐겨 듣는다고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요즘엔 결혼식 진행 방식이 많이 다양해졌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틀에 박힌 순서대로 식이 진행됐다. 신부입장 시에는 바그너 ‘로엔그린’ 3막의 ‘결혼행진곡’을 연주했고, 신랑 신부 퇴장 시에는 어김없이 멘델스죤 ‘한 여름 밤의 꿈’의 결혼행진곡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신랑 입장 곡은 그나마 다양한 편이었지만 제일 많이 선호했던 곡은 ‘위풍당당한 행진곡’이었다. 아주 친숙한 선율이고, 어린이들도 따라 읊조릴 수 있는 이 곡의 작곡가가 바로 영국의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다. 비교적 장수한 편이었고 교향곡, 실내악곡, 성악곡 등 다양한 곡들을 작곡했지만 영국 밖에서 연주되는 작품들은 드물다. 피아노를 위한 소품 ‘사랑의 인사’, 관현악곡 ‘수수께끼 변주곡’ 등 그의 대표작들도 음악사적으로 엘가의 위치를 높여줄 만큼 수작이라 보기 어렵다. 62세 때인 1919년 작곡한 만년의 걸작 첼로협주곡 역시 잘 연주되지 못한 채 잊혀 질 뻔했다.

1962년 17세의 한 영국 소녀가 런던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BBC 교향악단과 협주곡 데뷔연주를 했다. 곡명은 엘가의 첼로협주곡. 작곡된 지 40여 년이 지났고 카잘스나 토르틀리에 등 첼로의 거장들이 음반으로 남겼으나, 여전히 영국내의 소수 매니아들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던 협주곡이었다. 여성 첼리스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기도 하고 천재로 소문이 돌던 소녀였기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연주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연주가 끝나자 엄청난 환호를 했다고 전해진다. 가녀린 소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저음과 서정적인 멜로디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명 연주였고, 엘가의 첼로협주곡의 진가를 확인하고 재탄생시킨 사건이 되었다. 1965년 20세 성인이 된 그 소녀,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é, 1945~1987)는 당대 영국 최고의 거장 존 바비롤리 경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와 엘가의 협주곡을 협연하여 음반으로 남겼고, 이 음반은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첼로협주곡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명반으로 손꼽힌다. 영국은 드디어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통해 세계적인 작곡가 엘가를 동시에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변변치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엘가는 피아노 레슨으로 만난 8살 연상의 귀족 집안 여인과 결혼한 이후 점차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알려지게 됐다. 아내 앨리스는 엘가의 비평가이자 매니저였고 그런 아내를 엘가는 평생 사랑했다. 1920년 앨리스가 세상을 떠나자 엘가의 창작력은 급속도로 저하됐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14년 간을 뚜렷한 창작활동 없이 고향에서 조용히 취미생활을 하다가 1934년 77세로 생을 마감했다. 결국 사랑하는 아내가 죽기 몇 개월 전에 완성한 첼로협주곡이 그의 마지막 걸작이 된 셈이다.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자클린 뒤 프레를 얘기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정도다. 자클린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협주곡이고, 그녀 역시 엘가의 곡으로 인해 최고의 첼리스트로 인정받았다. 14세에 청중에 데뷔한 자클린은 이후 14년 동안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유명한 첼로 곡들은 거의 다 녹음해 음반으로 남겼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불치병 판정을 받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 이후 14년간 연주를 중단한 채 육체적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지내다 198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잃고 14년 간 조용히 고향에서 지내다 세상을 등진 엘가의 생애와도 어딘지 닮아 보인다.

느리고 묵직한 첼로의 선율로 시작하는 엘가의 협주곡은 자클린 뒤 프레의 음반 한 장으로 족하다. 그녀의 연주는 엘가의 정신과 혼연일체가 된 듯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삶의 고독과 탄식, 그리고 그것을 헤쳐 나가 밝은 빛에 도달하는 과정들을 서정적으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잘 그려낸다. 1965년 존 바비롤리 경과 함께한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길이 남을 명반이고, 유튜브에 남겨진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과 협연한 1967년의 흑백영상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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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PhkZW_jwc0&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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