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진 '일반선택과목 주장 묵살'..이공계 반발 예상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2021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돼 논란을 겪고 있는 '기하' 과목이 교육과정 개발 당시에도 수능에 출제될 수 있도록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2015년 당시 정책연구진은 물론 자문단도 진로선택과목이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해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과목 분류는 출제범위와 상관없다며 연구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2년 뒤인 지난해 수능개편에서는 진로선택과목을 수능에서 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출제범위를 설정, 기하가 제외돼 연구진들은 당혹스럽단 반응이다. 출제범위 공개 이후 수학계과 과학계가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표출한 가운데 정책 연구 당시에도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 출제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비난의 화살은 정책연구진의 의견을 묵살한 교육부로 향할 전망이다.

2021학년 수능은 수학 가형에서 기하가 제외되는 안이 확정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8월 확정될 2022학년 수능개편안에서도 논란은 남는다. 개편안 유예로 교육과정과 엇박자가 생긴 2021수능과 달리 2022수능은 교육과정에 맞게 출제범위를 새로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1일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로 넘긴 2022수능 개편안은 세 가지 안이 제시된 가운데 수학 가/나형을 단일형으로 통합 출제하는 안이 새롭게 등장했다. 수학이 단일형으로 출제될 경우 기하의 출제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한국수학교육학회 등 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와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5~6월 중에 국회 포럼을 실시, 기하의 중요성을 알려 2022학년 수능부터 출제범위에 포함될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2021학년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돼 논란을 겪고 있는 '기하' 과목이 교육과정 연구 당시에도 수능에 출제될 수 있도록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과정 연구진, 기하 일반선택 포함 주장.. 교육부 ‘묵살’> 
교육과정 개발 당시 정책연구진으로 참여했던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교육과정 개발을 하면서 수능 출제범위와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게 사실상 말이 안 된다”면서 “연구진들도 진로선택과목인 기하가 수능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우려해서 지속적으로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분류할 것을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능 출제범위는 별도 연구하는 팀이 따로 있고, 과목 분류와 수능 출제는 별도 문제라며 교육과정 개발에만 집중해 달라는 게 교육부의 답변이었다. 권 교수는 “연구진은 물론 수학자, 수학교육전문가들과 자문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기하를 일반선택에 포함할 것을 주장했지만 이제 와서 출제범위를 결정한 것을 보니 진로선택은 출제범위에서 제외하는 게 원칙처럼 돼 버렸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2021학년 수능 개편안 공개 당시 기하는 물론 과학Ⅱ도 진로선택과목이라는 이유로 출제범위에서 제외됐다. 개편 유예로 2월 확정한 2021수능 출제범위에서는 과학Ⅱ가 학계와 대학의 반발로 출제범위에 포함됐지만 기하는 진로선택과목이라는 근거로 출제범위에서 빠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수학교과 구성을 살펴보면 일반선택은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 확률과통계 등 4과목, 진로선택은 기하 실용수학 경제학 수학과탐구 등 4과목이다. 교육과정 개발 당시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로 연구 책임자를 맡았던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학과 정책 연구진도 일반 4과목, 진로 4과목으로 나눈 교육부 초안에서 기하를 일반선택으로 포함하자는 의견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면서 “연구진 의견과 다르게 교육부의 최종 결정안에서는 과목수 균형을 4대 4로 맞추기 위해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에서 뺐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교육부가 기하를 제외한 이유는 일반선택과 진로선택 과목수 비율을 4대 4로 맞추기 위한 것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권 교수는 “처음에 기하가 진로선택과목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기하를 포함해 일반 5과목, 진로 3과목으로 구성할 것을 요청했다. 교육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일반선택에서 확률과통계를 빼고 기하를 넣자는 의견까지도 제시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면서 “교육과정 구성은 과목 수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과목 특수성을 고려해 설계하는 것인데 교육부의 답변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수능 수학에서 기하는 변별력을 가르는 ‘킬러’ 문항이 자주 출제되는 영역이다. 정책연구진으로 참여했던 또 다른 교수는 “교육부의 의도를 좋게 해석하자면 학습부담 경감이라는 차원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기하를 굳이 제외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수학계 의견은 이와 다르다”면서 “난이도가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로봇 인공지능 3D프린팅 자율주행차 컴퓨터그래픽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신기술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핵심 분야로 학습 필요성이 매우 높은 과목”이라고 지적했다. 

한 언론이 공개한 교육과정 개발 회의록에서도 “기하를 진로선택으로 구분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수차례 확인됐다. “세계적인 동향은 쉬운 수학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와 반대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으며, 어려운 수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기술돼 있었다. 교육부의 해명은 연구진의 입장과 상반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5 교육과정 개발 당시 일반선택과목은 수능과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개발 방향으로 내포했다”면서도 “이러한 방향이 연구진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수학교육학회를 비롯한 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와 과학기술총연합회 등 수학/과학계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8월 확정되는 2022학년 수능 수학 출제범위에 기하를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의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내달 2일은 서울프레스센터에서, 29일은 국회에서 기하의 중요성을 알리는 포럼을 계획했다. 6월14일에도 한 차례 더 포럼을 구상하고 있다. 권 교수는 “기하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 뿐 아니라 경제 경영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데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며 “이공계 교육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1수능, 과학Ⅱ는 출제하고 기하는 제외?.. ‘누더기 출제범위’>
교육부는 2월말 현 고1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1수능 출제범위는 수학 가형에서 ‘기하’를 제외한 범위를 확정 발표했다. 수학 나형은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 등 기존 출제범위에 없던 내용이 추가됐으며, 국어 과목 중 하나인 ‘언어와매체’는 한 과목을 두 개 영역으로 분리해 문법에 해당하는 언어만 출제하고 매체는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8월 교육부가 수능 개편을 유예하면서 교육과정과 수능 간 엇박자를 겪게 된 고1학생들은 수능도 ‘누더기’ 출제범위로 치러질 예정이다. 교육부는 출제범위 설정 근거로 ‘학습부담 최소화’를 꾸준히 거론하고 있지만 문과학생들의 경우 함수 영역이 추가돼 학습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2021수능에서 기하가 빠진 안이 확정되면서 수학과학 단체들의 반발은 더 커졌다. 당시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대학에서 배우는 기초과학이나 공학은 사물의 구조나 움직임을 다루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필수”라며 “2015 수학 교육과정 중 공간에 대해 다루는 과목은 기하가 유일한데 제외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과학계 역시 성명을 내고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경시하는 교육은 국가경쟁력을 낮추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출제범위에 기하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제범위 공청회에서는 설문조사 과정에서 절차상 왜곡이 의심된다며 공정성과 투명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한수학회 관계자는 “우리 학회는 수학분야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설문조사 협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수학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학 출제범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1안과 2안 모두 ‘기하’를 제외한 문항을 설정해놓고 마치 기하를 제외하는 것인 냥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교수 교사 학부모 응답자의 85%가 기하를 출제범위에서 빼는 것에 동의했다고 발표한 것은 여론 호도”라고 비판했다. 대한수학회는 4147명의 수학계 인사가 회원으로 참여하는 학회로 회원 중에는 수능 수학과목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와 교사가 다수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수학 나형은 학습부담을 최소화했다는 교육부의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 확정된 수학 나형 출제범위는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통계 등으로 문과 학생들의 학습부담은 이전보다 가중되기 때문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미적분Ⅱ의 단원인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Ⅱ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2009 교육과정 체제 수능에서 미적분Ⅱ는 그간 수학 가형에서만 출제됐다. 삼각함수는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단원이기도 하다. 

교육부 설문조사에서는 수학Ⅱ와 확률과통계를 공통으로 하고 1안에서는 공통수학을, 2안에서는 수학Ⅰ을 포함하는 안을 제시했다. 둘 중에 어느 안을 선택하더라도 출제범위는 기존보다 늘어난다. 공통수학이 그 동안 수능 출제범위에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출제범위와는 괴리가 크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공통수학이 다항식, 방정식과 부등식, 도형의 방정식, 집합과 명제, 함수와 그래프, 경우의 수 등 방대한 양이자 고교 1학년 과정인 공통수학이 포함된 1안보다는 2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면 과학은 진로선택과목으로 뷴류된 과학Ⅱ도 2021수능에서 출제된다. 과탐은 현행 수능과 동일하게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명과학Ⅰ/Ⅱ 지구과학Ⅰ/Ⅱ 8과목을 출제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리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등 과학Ⅱ 과목이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돼지만 지난해 수능 개편 유예 발표 당시 현재와 동일한 수능과목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으므로 과학Ⅱ 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행과 동일한 과목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원칙이 과학에는 적용됐지만 수학에는 적용되지 않은 셈이다. 과목별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 교육부의 정책 결과는 의문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산 넘어 산’ 2022수능 출제범위, 수학 가/나형 통합?>
누더기 출제범위로 2021수능은 범위가 확정됐지만 출제범위 논란은 8월 공개될 2022학년 수능에서 또 다시 격돌할 전망이다. 11일 교육부가 공개한 대입개편 시안에서는 2022수능에서 수학 가형과 나형을 통합 출제하는 방안이 담겼다. 문이과 융합을 강조하고 학생의 수업선택권을 존중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가/나형 통합출제는 교육계 새로운 우려를 몰고 왔다. 대학 모집단위별로 요구하는 수학 학습수준 격차가 뚜렷한데 수학을 단일형으로 출제할 경우 변별력이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연계열 학생들이 응시하는 가형과 인문계열 학생들이 응시하는 나형을 통합해 하나로 출제할 경우 난이도는 가형과 나형 사이에서 맞춰질 수밖에 없다. 나형에서도 수학을 포기했던 ‘수포자’들이 대거 양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한 셈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육부가 제시한 두 번째 가/나형 통합안이 실현될 경우 의예과에 진학하려는 학생과 국문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동일한 수학시험을 치르게 될 텐데 출제자 입장에서만 고민되는 게 아니라 수능점수를 보고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대학의 고민도 상당할 것”이라며 “특히 자연계열 모집단위에서는 점수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해 대학별고사 등 다른 변별수단을 만들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수학이 통합 출제되는 2안은 채택될 가능성이 낮다. 반면 1안은 통합사회/통합과학이라는 새로운 출제영역이 신설되는 대신 과학에서 과학Ⅱ가 제외된다. 3안은 현행을 유지하는 안이다. 다소 급진적이 내용이 포함된 2안과 현행 수준의 3안을 제외하면 2009 교육과정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라도 1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안에서는 과학Ⅱ가 출제범위에서 제외돼 과학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과학Ⅱ는 현행 수능에서도 응시인원이 심각하게 저조해 논란을 사고 있는 과목이다. 

지난해 서울대에서는 공학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서울대 교육,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세미나에선 서울대 학부교육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왔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유재준 교수는 수능에서 대학 공학교육에 필수 교과목인 물리Ⅱ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전국에서 4000여 명으로 4년제대학 전체 공대 정원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공계열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를 우려했다.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이 고교 때 물리Ⅱ를 배우지 못한 학생이나 수학과학 수준이 뒤처지는 학생을 위해 예비과정이나 기초과목을 개설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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