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전화통보’엔 질타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최근 당정청이 ‘정시 확대’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정부 청와대는 6일 비공개 회동에서 수시/정시 비율 등을 포함한 2022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회동은 최근 교육부의 정시확대 주문 논란을 두고 일어난 당정청 불협화음 지적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최근 교육부 차관이 몇몇 개별 대학에 연락을 취해 정시 확대를 주문한 것이 알려지면서 교육계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한 여당 의원은 “김상곤 부총리 취임 이후 교육 정책의 혼선에 여당 의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며 “당정 협의를 해도 교육부가 여당의 의견을 잘 수렴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시 확대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수능이 전면 절대평가화 될 경우 정시 확대는 힘든 상황이다. 수능의 절대평가 전면 도입 여부는 8월 가려질 예정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수능이 변별력을 잃으면, 수능 영향력이 지대한 정시는 폐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정시 확대를 주문하더라도 수능이 절대평가화될 경우 불가능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한편 진보성향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마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정시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사교육걱정은 “교육부 차관의 정시모집 일정 비율 확대 요구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온 그간 교육부의 대입제도 방향과 어긋날 뿐 아니라 수능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줘 수업/평가를 혁신하려는 학교 현장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 영역은 집권 1년 동안 뚜렷한 진전이 없고 오히려 정부 여당(당/정/청) 간 불협화음,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정책 혼란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대학들에 전화로 정시 확대를 주문한 이후 수시/정시 비중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불협화음' 논란을 의식한 듯 최근 당정청은 회동을 갖고 정시 확대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시 확대 추진을 비판했다.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당정청 불협화음’ 지적 의식했나.. 회동 통해 ‘정시확대’ 방향>
당정청은 6일 회동을 통해 ‘정시 확대’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대입에서 수능최저를 전면 폐지한다는 사실은 언론의 오보로 드러났지만 이를 기점으로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자는 요구가 힘을 얻자 여론 무마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일련의 정시 확대 흐름을 두고 비판도 제기됐다. 진보 성향의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수능 정시 확대 추진 난맥상을 바로잡으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수능 영향력의 강화는 그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교육을 통한 평가 결과를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것을 강화해왔던 10여 년 이상의 교육적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봤다. 사교육걱정은 “최근 더미래연구소와 교육부 박춘란 차관의 대입제도 관련 정책 제안/추진과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교육공약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국정과제와 정면 충돌하는 난맥상”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은 더미래연구소 보고서의 모순점에 대해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로 평가되는 ‘더미래연구소’는 지난달 28일 내신, 수능, 내신+수능을 1:1:1 비율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시 개편안을 주장했다. 사교육걱정은 “수능: 내신+수능: 내신을 같은 비율로 할 경우, 대입에서 수능 영향력이 현재보다 현저히 커져 수능 대비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풀이 학습/평가방식이 오히려 고착화될 것”이라고 봤다. 

더미래연구소의 보고서를 두고 수도권 소재 한 사립대 입학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대입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보고서”라고 꼬집기도 했다. “아무리 대학이 정부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어떤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는 어디까지나 대학의 권한”이라며 “전형비율을 강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대입과 대학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교육걱정은 최근 교육 부문의 혼란상에 대해 열거하며, 국민들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은 “교육 부문에서 집권 1년이 다 되도록 뚜렷한 진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 여당간 불협화음과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정책 혼란만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5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마땅히 개편됐어야 할 수능/대입제도가 1년 유예되는 초유의 사태 등에 더해 “작년 유예돼 올해 8월 확정할 수능/대입제도 개편안이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 민감한 상황에서 여당 교육상임위 의원들도 아닌 초재선 국회의원모임으로 불리는 더미래연구소에서 완결성도 떨어지는 엉성한 대입제도를 함부로 내놓는가 하면, 대입시 요강 발표를 코앞에 두고 대입 3년 예고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교육부 차관의 행보 등은 8월에 확정될 대입제도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수 없게 해 국민들을 더욱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날 보수성향의 교육 시민단체인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정시를 최소 50% 비율로 실시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내놨다. 수시 수능최저의 폐지도 반대했다. 공정모임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한 수능최저 폐지 권고를 철회하고, 유지할 것을 각 대학에 다시 권고하라”고 주장했다. 

<교육부 ‘전화 통보’ 비판.. 정당한 절차 무시>
당정청 회동에서는 교육부의 ‘전화 통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최근 교육부 차관이 2020학년 대입 전형계획 제출 하루 전 대학에 정시 확대를 요청한 일 때문이다. 참석자는 “교육부가 무리하게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한 것은 문제가 있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박 차관의 행위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10년간 유지해온 수시확대 기조에 급제동을 건 메시지라는 점에 더해, 급박한 시점에 ‘전화’로 정책방향을 통보한 것을 두고 교육 현장이 들끓었다. 교육부 이진석 고등교육정책실장은 2일 기자 브리핑에서 “이대로 가면 수시와 정시 비율이 9대1까지 갈 수 있을 것을 우려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청와대도 교육부의 ‘무리수’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교육부와 논의가 끝난 사안인데 급작스럽게 왜 각 대학에 통보하는 식이 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교육부는 1월 2020학년 대입부터 수시 비중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쪽으로 협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발표하기로 한 2022학년 대입정책 개편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2020학년 대입전형은 교육부가 맡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한 여당 의원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부정여론이 높아 줄곧 정시확대 방향을 전달했는데도 교육부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는데 이렇게 황당한 방식으로 처리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비정상정인 방식으로 정시확대를 요청한 배경을 두고 여러 언론들의 추측이 이어졌다. 한 언론에서는 청와대의 지시를 놓고 교육부가 의견차를 보이다 어쩔 수 없이 따른 끝에 나온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전 정부가 지속적으로 수시확대를 추진해왔고, 재정지원 등을 활용해 수시를 늘리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줬다”면서 “교육부 역시 이런 역할을 해왔는데 갑자기 정책을 선회하자니 교육부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학의 반발을 예상한 교육부가 청와대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계속 미루다가 사달이 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청와대나 국회의원이 교육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전형비율은 청와대가 늘리라면 늘리고, 줄이라면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최근에 교육부로 온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몰라도 교육부에 수십 년간 몸담아 온 사람들은 대입을 급작스럽게 바꾸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를 담보하는 일인지 안다. 입학 자체가 원칙적으로는 각 대학에 달린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지시할 수도 없다. 그 동안 교육부의 정책도 대입전형을 사전에 확정하라는 사전예고제나 재정지원사업을 이용해 유도하는 선에서 그칠 뿐 직접적이거나 강제로 지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정시확대 추세, 일시적 조치에 그칠 가능성도>
대학가는 갑작스러운 정시 확대 기조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간 교육부가 학생부위주전형을 중심으로 한 ‘수시확대’를 권장해오다 갑작스럽게 방침을 선회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교육부 지침을 따라왔던 대학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이번 일은 교육부의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교육부 지침을 잘 따르지 않았던 대학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오히려 지침을 적극 따랐던 대학들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며 “재정지원사업 등으로 인해 조치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지침변경은 수요자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침’ 이후 2020학년 대입부터 정시 확대에 나선 상황이다. 고려대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가 참여하는 서울 9개대학 입학처장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오전 만남을 갖고 ‘2020학년 대입전형 시행계획(전형계획)’에 정시확대 내용을 담기로 합의했다. 

정시의 확대 양상에도 불구하고 2020학년 역시 ‘학종시대’임에는 변함이 없다. 연대 서강대 성대 한대 중대 외대 동대 숙대가 공개한 2020학년 전형계획에 따르면 여전히 학종의 비중이 37.6%로 가장 높다. 정시확대의 모양새는 갖췄으나 학종 역시 동반 확대 양상이다. 정시는 31.8%로 여전히 학종보다 비중이 낮다. 결국 상위대학 입시를 위해 가장 먼저 합격 가능성을 가늠해봐야 할 전형이 학종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한 대입 전문가는 “정시확대를 두고 말이 많지만 현 고2가 가장 중점적으로 대비해야 할 전형이 학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확보한 재수생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학생부가 다소 부실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교과전형과 달리 학종은 정성평가로 진행되기에 학업역량이 다소 뒤늦게 발현된 부분까지 고려할 수 있는 특징이다. 학종을 중심으로 대입전형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정시확대 추세가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현재는 재학생 우수자원들을 비롯해 재수생 중에서도 학생부 성적이 좋은 수험생들은 수시에서 합격, 정시까지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시에서 선발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라며 “상위대학에서 소폭 정시를 확대하면 본래 그보다 낮은 선호도의 대학에 합격했을 학생들이 이동하게 된다. 이는 중상위권 대학들에게는 합격선 하락이란 큰 타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당장 교육부 눈치 때문에 정시를 늘리겠지만, 입시결과를 보고 나면 정시확대에 주저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2022 대입 개편에서 수능 절대평가가 시행될 경우 역시 정시 확대가 불가능해진다. 수능 등급제 절대평가 도입과 정시 비중 쟁점은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사안이다. 절대평가로 변별력이 약화되느냐의 문제는 곧 정시 비중이 축소될지 확대될지를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수능 전면 9등급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정시 확대는커녕 정시 폐지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점수제 절대평가도 기존 표준점수제 상대평가 대비 대학 입장에선 꺼릴 수밖에 없는 제도다. 지난해 이규민 연세대 교수가 대학 입학처장 38명, 고교 교사 2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1%(220명)의 교사/입학처장이 절대평가 도입 시 수능비중이 축소될 것이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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