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100명 세부안..'선거 앞둔 시간끌기냐'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정책숙려제 1호인 ‘학생부 기재방안’ 마련을 위한 세부운영 계획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국민 100명 내외를 무작위로 추출한 시민정책참여단이 권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 때문이다. 정작 교육 현장과는 괴리된 권고안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인 일방통행식 비판에 몰린 교육부가 정책숙려제 마저 불통 지적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였다는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6월선거를 앞두고 결정을 미루기 위한 시간끌기 작전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교육부가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 마련을 1호 안건으로 선정한 이유는 학생부 일부 항목 요소가 사교육을 부추기거나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국민이 직접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제안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시민정책참여단은 국민 중 100명 내외를 무작위로 추출해 구성된다. 학생(중3~고2), 초중등 학부모/교원, 대학 관계자,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국민 각각 20명 정도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시민정책참여단의 심도있는 논의를 지원하기 위해 교육정책 모니터링단 조사와 온교육 사이트를 통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병행할 예정이다. 

교육정책 모니터링단 조사는 교육부가 모집한 모니터링단 중에서 고등학생, 초중등 학부모/교원, 대학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 정책 학습에 따른 모니터링단의 선호와 경향 변화를 살피기 위해 1차 설문조사, 학습자료 송부/학습, 2차 설문조사 순으로 진행한다. 온교육 설문조사는 학생부 기록에 대한 전반적인 정비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질문할 계획이다.모니터링단 조사 결과와 온교육 설문조사 결과는 시민정책참여단에게 제공돼 학습/토론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교육부는 “결과 수용성을 높이고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3의 기관으로 시민정책참여단 운영의 전 과정을 위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운영 절차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과 점검도 국민참여 정책숙려제 선정위원회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시민정책참여단과 교육정책 모니터링단에게 제공되는 자료는 모두 공개하고, 추진 일정도 실시간으로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숙려제를 통해 학생부 기재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무작위로 추출한 국민 100명이 권고안을 낸다는 계획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보여주기 식의 요식행위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1호 안건 ‘학생부 개선’.. 시간끌기 꼼수 의혹>
1호 안건으로 선정된 ‘학생부 개선’은 그간 교육부가 기재사항 간소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다. 김상곤 부총리는 지난해 “내년부터 고교 학생부 기재항목 등을 간소화하고 정량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정책숙려제를 도입하는 데는 그간 현장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책을 내놓는다는 지적을 탈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최근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 나온 직후 비판은 절정에 이르렀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청원이 쏟아지는 등 거세진 반대여론에 더해 여당까지 제동을 걸면서 불통 지적이 컸다. 이를 두고 한 교육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공개하기 전에 의견 수렴이 기본이고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현장에서 어떤 반발이 있을지, 그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책 수립의 기본이다. 아마추어가 아이디어 나오는 대로 질러보는 듯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불통 논란 해소를 목적으로 내놓은 정책 숙려제를 두고도 시선은 곱지 않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육감 선거를 포함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입정책 이슈들을 시간끌기를 통해 물타기를 하면서 결국 선거 이후 애초 의도대로 끌고 가려는 ‘답정너’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전체의 틀에서 논의되어야할 대입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수능은 교육회의, 학생부개선은 정책숙려제로 넘긴 것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틀에서 얘기될 이슈의 논의주체가 다른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 의구심이 드는 것은 대입 추천서는 없애도록 고교정상화기여사업에서 압박을 하면서 학종개선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접근해야할 학생부기재는 별도로 논의한다는 것이 입시정책 입장에서 가능한 얘기인지 되묻고 싶다. 여기에 상위대학마다 불러 따로 정시확대를 주문하는 행태까지 감안하면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논란이 되는 것만 다양하게 쪼개서 여론 수렴의 제스쳐를 취할 뿐 결국 선거가 끝나면 애초 의중대로 밀어붙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작위 국민 100명.. 실효성 의문>
무작위로 추출된 국민 100명의 권고안이 교육 현장의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요식행위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무작위 추출이라고 해서 인사의 균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이들의 권고안이 실제 교육현장의 여론을 얼마만큼 폭넓게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여론이 반대한다고 해서 실제로 정책 철회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교육부 역시 여론과 정책의 불일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교육부는 “정책 숙려제 결과와 최종 정책 결정에 다른 경우에 최종 정책 결정의 배경과 사유를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짧게는 30일부터 길게는 180일까지 논의를 거치고도 정작 여론과 정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논란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교총 역시 정책숙려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간 정책 결정의 문제점은 여론 수렴 부족이기보다는 여론을 균형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사전에 정해진 결정사항을 밀어붙인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책 숙려제 도입으로 정책결정 과정만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교총은 "국가교육회의가 설치된 상황에서 시간과 프로세스가 더 길고 복잡한 정책숙려제까지 도입될 경우, 제도나 기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복 운영이나 행/재정적 낭비 등도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정위원회 인사 구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총은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현장 교원과 교원을 대표한 교원단체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며 "선정위원회 면면을 보면 현장 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교원단체는 아예 배제돼있으며, 학부모단체도 중립적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립적/객관적인 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하지 못할 경우 '무늬만 정책 숙려제'에 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부 간소화 의지.. 학종 무력화 우려>
교육계에서는 과도한 기재사항 축소는 학생부의 하향 평준화를 낳는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학생부 기재 수준을 끌어올리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기재간극을 줄이겠다는데 목적을 뒀기 때문이다. 과도한 제한은 오히려 고교 현장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학종의 선발도구로서 학생부를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오히려 글자수를 제한하면, 학생부가 실적위주의 나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활동의 과정을 설명할 수 없어, 결과를 내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과 학생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겠다는 학종의 취지와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2월 열린 3차 대입정책포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박재현 진해고 교사는 학생부에 제약사항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 간 학생부 기재사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적지 말라’는 내용이 추가되고 항목별 글자 수 제한도 일부 항목에서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는 “항목 자체가 사라지면 해당 활동이 교육적 의미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현재 조건에서 학생 역량에 대한 정성 평가결과가 내신성적에 어느 정도까지 편차를 벌려줄 수 있을지, 정성평가를 가장한 내신평가가 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글자 수 제한은 역량 차이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박 교사는 “학생마다 역량이 발휘되는 활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항목별 기재방식과 글자 수 제한은 이러한 역량발휘 분야의 차이에 대해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주게 된다”며 “유사항목의 통합을 통해 전체 글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을 통합하는 방안을 예로 들었다. 박 교사는 “독서활동은 다른 모든 항목과 연관되는데 굳이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해야하는지 의문”이라며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역시, 학생마다 교과목별 역량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최근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시점에서 굳이 교과목별 글자 수를 제한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학생부에 대한 과도한 기재제한 논란은 2016년 서울대가 주최한 ‘샤교육포럼’에서도 논의됐던 사안이다. 당시 안성환 대진고(서울) 교사는 학생부를 평가도구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교사는 “학종의 취지가 충실한 학교생활인 만큼 학교생활을 기록한다는 교육적인 활용을 위해 학생부를 어떻게 기록하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글자수를 제한하는 것은 평가도구로서의 역할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적위주의 나열이 될 수밖에 없고, 학생부 동질화로 이끈다는 지적이다. 

<학생부 기재사항 지적 왜 반복되나>
학생부 기재사항 간소화의 근거로 꾸준히 제기되는 기재사항 부풀리기 문제는 학종 평가에 대한 고교의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대학들은 그간 수상 실적, 동아리 실적 등이 학종의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닐뿐 아니라 개수에 따른 가산점도 없다고 끊임없이 밝혀왔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교내상은 학생의 관심이나 학업능력을 뒷받침하는 정도로 활용된다. 학교마다 상의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별 상의 종류와 개수를 전부 비교하고, 개수에 따른 정량평가는 진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선방안에 사전 등록된 교내상만을 기재하도록 한 것은 강남권 고교에서 학종 때문에 교내상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해 교내상 수를 조절하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모든 학생들이 많은 상을 받는다면 교내대회와 수상 실적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조승래(더불어민주) 의원이 서울대 수시 합격자 5명 이상 배출한 102개 고교의 교내대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교내대회 입상과 학종 간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전국에서 서울대 수시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하나고(53명 이상)의 경우 1인당 교내대회 개최 수는 102개 학교 가운데 33위를 기록했고, 1인당 입상 수의 경우 72위를 기록했다. 하나고의 뒤를 이은 경기과고(52명 이상) 역시 대회 개최 수 20위, 입상 수 39위를 기록했다. 반대로, 교내대회 개최 수 3위, 입상 수 3위를 기록한 대전동신과고는 서울대 수시 합격자 5명을 배출하는데 그쳤다. 교내상이 평가 지표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동아리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학종은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동아리 개수가 많다고 해서 평가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4월 토크콘서트로 진행된 고려대 입시설명회에선 입학사정관들이 동아리활동에 대한 오해를 푸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동아리활동 개수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어떤 학교는 한 학기에 1개의 동아리에만 참여하도록 제한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곳은 4~5개까지 가능한 경우도 있다”며 “각 고교로부터 학교특성소개서를 받아 특성을 파악해 평가과정에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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