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절감” vs “EBS 교재 수업, 교육과정 파행”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수능 문제의 70% 이상을 EBS 수능교재와 강의에서 연계 출제하도록 한 교육부 정책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을 내렸다. 연계출제가 교육 수요자의 기본권인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교육과정의 중요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EBS 교재를 별도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수능을 치르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EBS 연계출제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헌재 판결에도 EBS 연계 출제를 둘러싼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2011학년 수능 이후 EBS 연계율이 70%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고교 교실에서 EBS 교재가 '교과서화'되는 고교 수업의 파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3일 열린 교육부 제4차 대입정책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안성환 서울대진고 교사는 “일선 학교에서 평가계획을 세울 때 교과서 중심으로 계획을 작성하지만, 실제로는 EBS 교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고3 교실에서 더 이상 교과서가 아닌 EBS 교재만으로 수업을 운영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안 교사는 연계 교재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들이 수능에서 출제되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교육부는 일단 2021학년 수능까지는 현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8월 중에 2022학년부터 적용되는 대입제도 종합 개편안이 나오는 만큼 수능 대책과 함께 EBS 연계율 조정 방침도 함께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수능 문제의 70% 이상을 EBS 수능교재와 강의에서 연계 출제하도록 한 교육부 정책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을 내렸다. 연계출제가 교육 수요자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헌재는 EBS 교재를 학습하는 부담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고 볼 수 없으며,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헌재 “EBS 연계, 기본권 침해라고 볼 수 없어”>
헌재는 ‘2018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이 자유로운 인격 발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권씨 등 교사 수험생 학부모들이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헌재는 이 정책을 통해 수험생들이 EBS 교재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심판대상 계획은 수능시험을 EBS 교재와 연계하겠다는 것일 뿐 다른 학습방법이나 사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며 “수능시험의 30%는 연계되지 않아 다른 방법을 통한 시험 준비가 필요하고, 학생들은 스스로 원하는 다양한 학습방법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EBS 교재에 나온 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문과 도표 등 자료를 활용하고 핵심 제재나 논지를 활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계된다”며 “교육과정의 중요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EBS 교재를 별도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수능을 치르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BS 강의 시청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사실과 사교육비 절감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헌재는 “EBS는 지상파 방송국으로 TV를 보유한 가정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시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시청이 가능하다”면서 “사교육 과열을 어느 정도 진정하는 효과가 있고, 학교교육의 정상화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능 시행 기본계획이 추구하는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공익은 매우 중요한 반면 기본계획에 따라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안게 되는 EBS 교재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가볍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교육받을 권리를 덜 침해하는 다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 단계에서 기본계획보다 수험생의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방법으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다른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수험생들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한 고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청구에 대해서는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며 각하를 결정했다. 헌재는 “교사에게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내용의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녀가 성년에 이르면 학부모가 자녀교육권 침해를 다툴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6월 수험생 2명, 교사 2명, 학부모 1명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은 ‘2018학년 수능 시행 기본계획’이 교육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단은 “다양한 교재로 창의적 학습을 할 기회를 박탈하고 교사의 자유로운 교재 선택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다”면서 “(교육부 수능 시행계획은)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의 보장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교육부와 EBS가 맺은 양해각서에 불과한 EBS-수능 연계가 정부 정책처럼 변해 매년 수능에 과도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헌재 판결 불구, 수능-EBS 연계 둘러싼 공방 여전>
헌재 결정에도 수능과 EBS 연계를 둘러싼 공방은 여전하다. 사교육 영향을 줄였다는 평가와 함께 기형적 수업양식을 양산했다는 지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공교육을 파괴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EBS만 달달 외우는 수업방식으로 변질됐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고교 교실에서 EBS 교재가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는 우려다. 평가원 조사 결과 EBS 연계의 부정적 효과로 응답자의 49.8%가 ‘기계적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 증가’를 꼽았다. 24.4%는 ‘창의력, 사고력 저하’를 문제로 꼽기도 했다. 응답자 가운데 97.1%는 정규수업과 방과후수업 등에서 EBS 교재를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지난달 23일 열린 교육부 제4차 대입정책포럼에서도 EBS 연계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지적한 의견이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안성환 서울대진고 교사는 EBS 교재 내용 자체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선행학습 금지법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안 교사는 “단지 연계 교재에 있는 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가 서슴없이 수능에 출제된다”면서 “EBS 영어 교재는 교육과정 기준에 따른 교과서 체계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간접연계’의 맹점도 비판했다. 안 교사는 “연계율 70%라는 점을 들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며 “실제 연계는 직접연계가 아닌 간접연계로 이뤄진다고 발표했지만 일반인들은 간접연계에 대해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간접연계란 해당 제시문의 주제나 소재만 일치하면 연계 교재 수준의 문항 출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3 교실에서 더 이상 교과서가 아닌 EBS 교재만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문제도 거론했다. 안 교사는 “일선 학교에서 평가계획을 세울 때 교과서 중심으로 진도표를 작성하지만, 실제로는 EBS 교재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상위권만을 변별하기 위한 장치인 수능을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서류와 실제가 다른 상황을 왜 만들어야 하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달 19일 열린 2021수능 공청회에서도 동일한 맥락의 비판이 제기됐다. 영어 영역 토론자로 참석한 황종배 건국대 교수는 “영어과의 가장 큰 문제는 EBS 연계 교재 간 괴리”라면서 “EBS 교재는 교육과정과 달리 시험용으로 만들어진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룬 지문이 많다. 물론 교육과정 범위 내에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지만 영어Ⅰ,Ⅱ 과목과는 확실한 수준 차이가 있다”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EBS 연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계출제를 둘러싼 반론도 만만치 않다. EBS 연계율이 달라질 때마다 사교육 주가가 출렁일 정도로 EBS 연계율 축소는 사교육을 확대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지난 2015년에는 EBS 연계를 70%로 고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검토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 이후 모 사교육 업체 주식이 주당 5만1500원에서 6만8000원으로 오르기도 했다. EBS 연계율의 축소/폐지가 사교육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이는 사례다. 

EBS 연계 정책 이후 사교육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교육비 억제액은 EBS 70% 연계 이전인 2009년 3492억원에서 2014년 1조1374억원의 3배 이상 증가했다.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면 2011년 5301억원에서 2014년 8925억원으로 올랐다는 조사결과도 제시됐다. 

<지난해 수능, 연계 교재 87권.. 교재 오류 '상당수'>
평가원이 지난해 3월 공개한 2018학년 수능 시행 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수능연계로 활용한 교재는 모두 87권이었다. 국어 수학(가/나) 영어 한국사 등 주요 4개과목의 연계 교재는 총 15권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국어 4권, 수학(가) 4권, 수학(나) 3권, 영어 4권으로 합산하면 16권이지만, '수능특강 확률과 통계'의 경우 수학(가)와 수학(나)에서 같은 교재가 활용되기 때문에 주요 4개 과목의 연계 교재는 15권이 된다. 그 밖에 사탐(9과목) 과탐(8과목) 직탐(10과목) 제2외국어/한문(9과목)까지 포함한 모든 연계 교재과목은 총 87권이다.

2016학년 수능에서는 수능특강, 수능완성, 인터넷수능, 고교영어듣기 등 4가지 유형이었던 데 반해 2017학년 수능부터 수능특강, 수능완성 2가지 유형으로 줄였다. 연계대상은 교재뿐만 아니라 강의도 포함된다. 당시 평가원은 “영역별로 차이가 있으나 중요 개념이나 원리의 활용, 지문이나그림 도표 등의 자료 활용, 핵심 제재나 논지의 활용, 문항의 변형 또는 재구성 등을 통해 연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능의 EBS 연계정책은 2004년 사교육 절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30% 수준에 불과했던 연계율은 20111학년 70%까지 확대된 후 현재까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과목별로 보면 국어와 수학의 반영비율은 2014학년부터 지난해 수능까지 각각 71.1%와 70%를 그대로 유지했다. 영어의 경우 2011학년부터 2013학년까지는 70%를 유지하다가 2014학년 71.1%(A,B로 나눠 시행), 2015학년 75.6%으로 점점 높아지다가 다시 2016학년과 2017학년 73.3%의 연계율을 보였다. 탐구과목의 경우 사탐/과탐/직탐 모두 2011학년부터 70%와 72%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연계율에도 불구하고 EBS 수능 연계 교재의 오류는 상당한 수준으로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강효상(자유한국) 의원이 EBS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EBS 연계 교재 오류는 총 882건이었다. 2017년에는 6월까지 133건의 오류가 발생, 5년6개월 동안 1000건이 넘는 오류가 발생한 셈이다. 

오류 발생 유형을 분석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졌다. 2013년에는 단순 오탈자나 맞춤법이 위배된 ‘단순오류’가 77건으로 가장 많았고, 2014년에도 단순오류가 88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2016년에는 단순오류가 69건에 그친 데 반해 ‘내용오류’가 102건으로 크게 늘었다. 한 해 전인 2015년 내용오류 52건과 비교해보면 거의 2배 가까이 내용오류가 늘어난 셈이었다. 내용오류는 연계 교재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수험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어 파급력이 크다

이처럼 연계 교재 오류가 다량 발생하는 이유로는 검증시스템의 부실함이 거론된다. 강 의원은 “EBS는 현재 출간된 교재 오류에 대한 별도의 검증시스템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오직 수험생 교사 등 외부에서의 신고로만 오류를 정정한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오류 신고는 1만14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수능은 매우 중요한 시험인 만큼 EBS 교재가 정확해야 한다. 철저한 검수과정을 거쳐 교재 오류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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