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불안 가중 ‘수능엇박자에 누더기 출제범위'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현재 고1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1수능 수학 가형에서 ‘기하’를 제외한 출제범위가 확정됐다. 수학 나형은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 등 기존 출제범위에 없던 내용이 추가됐다. 국어 영역 ‘언어와매체’는 한 과목을 두 개 영역으로 분리해 문법에 해당하는 언어만 출제하고 매체는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수능개편 유예 결정으로 교육과정과 수능 간 엇박자를 겪게 된 고1학생들은 수능도 ‘누더기’ 출제범위로 치러질 전망이다. 특히 문과학생의 함수 영역이 추가되면서 학습부담 가중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1수능 출제범위를 확정해 각 시도교육청과 일선 고등학교에 안내한다고 27일 밝혔다. 학습부담을 최소하하는 방향으로 출제범위를 조정했다고 밝혔으나 문과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나형에서 함수영역이 추가되면서 학습부담은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부 대입정책과 송근현 과장은 “2021수능 출제범위는 정책연구, 학부모 교사 장학사 대학교사 관련학회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17개 시도교육청 의견수렴, 출제범위 공청회 결과를 종합해 결정했다”며 “원칙적으로 현재 수능 출제범위와 동일하도록 하되, 교육과정 개정으로 조정이 블가피한 경우에는 수험생의 학습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고1 학생들이 치르는 2021수능 수학 가형에서 ‘기하’를 제외한 출제범위가 확정됐다. 수학 나형은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 등 기존 출제범위에 없던 내용이 추가됐다. 국어 영역 ‘언어와매체’는 한 과목을 두 개 영역으로 분리해 문법에 해당하는 언어만 출제하고 매체는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논란의 ‘기하’.. 결국 제외>
대한수학회를 비롯해 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 등 수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수학 가형 출제범위에서는 결국 '기하'가 빠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기하가 진로선택과목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출제범위 원칙상 일반선택이 아닌 기하는 제외돼야 한다. 정책연구팀은 기하를 출제범위로 포함할 경우 수학 수업시수가 기준 이상으로 늘어나 타 과목의 수업이 줄어드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능개편 유예를 발표할 당시 교육부가 2021수능을 현행수능과 동일한 과목으로 출제할 것을 공언한 데다 이공계 필수과목인 ‘기하’를 반드시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수학계의 반발로 논란이 됐다. 

교육부 측은 “기하를 출제하는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과 수험생 부담완화라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라며 “기하를 모든 이공계의 필수과목으로 보기는 곤란하며 대학이 모집단위별 특성에 따라 필요할 경우 학생부에서 기하 이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설문조사 결과 기하 출제 제외를 지지하는 의견이 다수였다는 점도 언급했다. 

수능에서 기하가 빠진 안이 확정되면서 수학과학 단체들의 반발이 심화됐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대학에서 배우는 기초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사물의 구조나 움직임을 다루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필수”라며 “2015 교육과정 중에서 공간에 대해 다루는 과목은 기하가 유일한데 이것을 빼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했다. 과학계도 앞서 21일 성명을 내고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경시하는 교육은 국가경쟁력을 낮추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2021 수능 출제범위에 기하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나), 함수 포함.. 문과 '학습부담 가중 불가피'>
수학 나형의 출제범위는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통계로 확정했다. 교육부 설문조사에서는 수학Ⅱ와 확률과통계를 공통으로 하고 1안에서는 공통수학을, 2안에서는 수학Ⅰ을 포함하는 안을 제시했다. 공통수학은 그 동안 수능 출제범위에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출제범위와 괴리가 크다. 하지만 2안을 선택한다고 해도 문과 학생들의 학습부담은 여전히 가중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미적분Ⅱ의 단원인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Ⅱ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삼각함수는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단원이기도 하다. 

반면 교육부 관계자는 “새 교육과정에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학수 등의 내용이 추가됐지만 2015 수학과 교육과정은 학생 발달단계 등을 고려해 학습내용의 수준과 범위를 적정화한 것으로 예상보다 학습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교육청 의견수렴과 학부모 교사 설문조사에서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통계를 출제범위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설문조사 결과 수학Ⅰ이 포함된 2안을 지지하는 의견은 전체 응답자 2119명 가운데 1024명으로 48%로 나타났다. 공통수학이 다항식, 방정식과 부등식, 도형의 방정식, 집합과 명제, 함수와 그래프, 경우의 수 등 방대한 양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 고교 1학년 과정이 수능으로 출제되는 데 따른 부담도 큰 편이다. 출제범위 조정의 방향을 ‘학습부담 완화’로 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국어, 신설과목 ‘언어와매체’ 중 언어만 포함>
국어 출제범위는 화법과작문 문학 독서 언어로 정해졌다. 교육부가 제시한 출제범위 예시안에는 기존 수능 출제범위인 화법과작문 문학 독서와문법 가운데 독서는 출제범위에 포함됐지만 문법에 해당하는 과목인 언어와매체 과목의 출제범위 포함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당초 설문조사에서는 언어와매체를 분리한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공청회 교육부 정책연구팀의 출제범위 제안에서도 “한 과목인 언어와매체를 분리해 출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언어와매체를 포함한 4과목을 출제범위로 제시했다. 하지만 공청회 의견수렴 과정에서 언어와매체를 분리해 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면서 제자리걸음이 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언어만 출제하는 것이 현행 수능과 출제범위가 같다는 점”과 “공청회 등에서 언어와매체 중 언어만 포함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19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공청회에 토론자로 나섰던 구본관 서울대 교수는 “매채영역은 기존 수능국어에서 출제된 적이 없어 교육부의 기존 발표와 어긋나고, 출제기관인 평가원도 매체 출제경험이 없다”며 “과목 성격상 5지선다형 출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글학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관규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청중발언 시간에 언어와매체를 포함할 경우 사실상 언어 출제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언어와매체를 포함해 네 과목을 출제할 경우 기존과 동일한 출제범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국어 45문항 가운데 5문항이 문법이지만 언어와매체로 과목이 바뀌면 문법에 해당하는 언어 문항은 사실상 2.5문항으로 줄어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출제범위에서 문법 제외 소식이 알려지자 한글학회 국어국문학회 국어학회 등 우리말 대표 연구기관은 물론 각 대학 언어교육원, 한글문화연대 등 다수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서울정부총합청사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대한민국에서 교육부가 나서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교육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라며 “과연 어느 나라 교육부인지 묻고 싶다”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과탐Ⅱ 현행대로 출제>
과탐은 현행 수능과 동일하게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명과학Ⅰ/Ⅱ 지구과학Ⅰ/Ⅱ 8과목을 출제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리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등 과학Ⅱ 과목이 진로선택과목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있지만 수능 개편 유예 발표 당시 현재와 동일한 수능과목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으므로 과학Ⅱ 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수핚과 달리 과학Ⅱ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 계열별로 단독 선택이 가능하고 교육청 의견수렴과 설문조사 결과에서 과학Ⅱ 출제를 지지하는 의견이 다수인 점을 고려했다. 설문조사 결과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1개 시도가 현행과 동일하게 출제할 것을 찬성했으며, 학부모 고교교사 등 설문조사에서는 유효응답 1529명 가운데 1048명(69%)가 현행 동일 출제를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청회에서 과학 영역 토론자로 참석한 최임정 과학창의재단 과학교육개발실장은 “그동안 과학계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적용 수능 출제범위로 과학Ⅱ 과목을 제외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라며 “학습 부담을 높인다는 이유로 과학Ⅱ를 가르치지 않거나 배울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은 이공계를 진학하는 학생들이 고교 3학년 1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장 1년 후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탐Ⅱ 응시인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매년 최저응시율을 기록하는 물리Ⅱ는 물론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모두 응시자 비율이 5%를 넘기지 못했다. 지구과학Ⅱ의 응시자가 제일 많았지만 전체 응시인원 대비 4.3%에 불과했고 생명과학Ⅱ(3.7%) 화학Ⅱ(1.4%) 물리Ⅱ(1.2%)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과탐Ⅱ는 과탐Ⅰ에 비해 학습량이 더 많고, 응시인원이 적어 등급경쟁에서도 불리하다. 난도 조절 실패, 우수 수험생 집중으로 만점자가 상대평가 2등급 기준인 11%를 넘어갈 경우 단 1문제만 틀리더라도 성적이 3등급으로 급락하는 위험도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의대광풍’과도 연관이 있다. 과탐Ⅱ 응시를 요구하는 서울대 의대가 아닌 타 대학 의대 진학을 목표하는 학생의 경우 굳이 학습량이 더 많고, 우수 수험생들이 많아 경쟁하기 쉽지 않은 과탐Ⅱ를 선택할만한 유인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영어Ⅱ 사탐 등 그 외 과목.. 변화 없어>
영어와 사회탐구 직업탐구 등 3개 영역은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바뀌더라도 수능 출제범위에서 현행 수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탐에서 2009 교육과정상 ‘법과 정치’가 2015 교육과정에서 ‘정치와 법’으로 과목명이 바뀌는 게 전부다. 

다만 공청회에서는 영어과목에서 EBS 연계 출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영어 토론자로 참석한 황종배 건국대 교수는 “영어과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과정과 EBS 연계 교재 간 괴리”라면서 “EBS 교재는 교육과정과 달리 시험용으로 만들어진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룬 지문이 많다. 물론 교육과정 범위 내에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지만 영어Ⅰ, 영어Ⅱ 과목과는 확실한 수준차이가 있다”며 “수능영어의 출제범위를 논한다면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도 EBS 연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BS 연계비율은 2021학년 수능에서도 모든 영역에서 현재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한다. 

<‘교육과정 엇박자’ ‘누더기 출제범위’.. 수능개편 '낀 세대' 된 예비 고1>
2021학년을 수능을 치르게 될 중3은 교육과정과 수능 엇박자에 누더기가 된 출제범위까지 겹치면서 수능개편이 낳은 '과도기 세대' '낀 세대'가 됐다. 고교학점제 도입도 시작돼 상당한 변화가 예고된 상황이다.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에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가중되고 가중된 혼란은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첫 세대이긴 하지만 지난해 8월 수능개편 유예가 결정되면서 교육과정은 새 교육과정으로, 수능은 기존과 동일하게 치르는 엇박자가 발생했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고교 1학년이 배우는 통합사회, 통합과목이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되면서 고교현장에서 소홀히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수능에 포함된 과목을 중시하는 교육현장의 분위기상 교육과정의 순차적 운영이 아닌 파행운영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수능 출제범위는 일반선택과목을 위주로 정해져야 하지만 수능개편이 유예되면서 출제범위는 원칙 없이 누더기처럼 정해진 셈이다. 수학에서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기하가 제외됐지만 과학에서는 마찬가지로 진로선택과목인 과학Ⅱ 4과목이 모두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됐다. 심지어 국어는 일반선택과목인 언어와매체를 두 개 영역으로 분리돼 언어는 출제범위에 포함되고 매체는 제외되는 기형적인 출제범위가 됐다. 지난해 8월 수능개편 유예 당시에도 예고된 문제들이긴 하나 졸속개편이 몰고 온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한 교육 전문가는 “올해 8월 2022학년 수능개편안이 정해지면 중3 학생들은 교육과정과 수능 간 괴리를 좁힐 가능성이 높지만, 수능개편 논란으로 ‘낀 세대’가 된 고1 학생들이 짊어질 혼란은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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