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교재 선행학습금지법 위배'..4차 대입정책 포럼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수능이 선발기능에만 몰두해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심하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교육적 의미의 타당도를 잃을 뿐만 아니라 공정성과도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23일 서울서부교육지원청에서 열린 4차 대입정책포럼에서 안성환 서울대진고 교사는 등급받기 유리한 과목에 몰리는 ‘아랍어 쏠림’ 현상을 예로 들며 교육과정과 수능과목 간 괴리현상을 지적했다. 응시인원 격차로 과목 간 표준점수 차이가 심화돼, 동일한 개수를 틀리고도 동일한 점수를 취득하지 못하는 문제도 꼬집었다. 안 교사는 “과목 선택을 잘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박윤근 양정고 교사는 “쉬운 시험에서 100점 받은 것과, 어려운 시험에서 100점 받은 것은 다르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반박해 팽팽히 맞섰다. 

이달 초 열린 3차포럼에서 ‘학종 공정성 강화방안’을 주제로 논의한 데 이어 4차 포럼에서는 ‘대입전형요소별 공정성’을 주제로 수능, 논술 전반을 아우른 논의가 진행됐다. 학종의 경우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합격 사례를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대두됐다. 정성적인 기록을 정량화하는 과정을 현장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의 경우 EBS연계로 인해 고3 수업이 ‘교과서’ 대신 'EBS교재‘로 이뤄지는 수업 파행을 지적한 목소리도 눈에 띄었다. 논술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대비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날 한 발제자는 대학이 학종의 계층 균형성을 주장하지만 “학종에서 저소득층 학생이 많다”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정성 왜곡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토론자로 참여한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학종이 저소득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통계는 존재한다”고 즉각 반박했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학생부전형의 성과와 고교 현장의 변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에 참여하는 50개 대학 중 46개대학의 입학생 18만7631명을 조사한 결과 기초생활수급자 비율과 국가장학금 1유형 학생 비율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김평원 인천대 교수, 안성환 서울대진고 교사, 진명선 한겨레21 기자가 발제자로, 임진택 경희대 책임사정관, 주재술 UNIST 리더십센터 팀장, 박윤근 양정고 교사, 권종진 서령고 교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날 좌장은 1~3차와 동일하게 김경범 서울대 교수가 참여했다. 김경범 교수는 현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입시제도혁신분과장을 맡고 있다. 

교육부는 그간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해 대입제도 개편안을 만들기 위해 4차에 걸쳐 포럼을 진행해왔다. 교육부는 정책자문위를 중심으로 그동안의 연구 결과와 1~4차 대입정책포럼에서의 의견을 종합 검토해 대입제도개편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개편안은 국가교육회의 주도로 논의를 거쳐 8월까지 확정된다. 

대입전형 공정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4차대입정책포럼'에서는 수능이 선발기능에만 몰두해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심하다는 문제가 지적된 반면 학종의 경우 정성적인 기록을 정량화하는 과정을 현장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수능, 선발기능에만 치중.. 선택과목간 쏠림현상 심각>
수능을 두고 공정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신뢰도’와 ‘타당도’ 중 신뢰도만을 강조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안성환 교사는 “신뢰도란, 양궁선수가 과녁에 화살 세발을 쐈다고 가정했을 때 세발 모두가 거의 동일 지점에 꽂혔다는 것”이라며 “만약 그 화살 세발이 과녁의 만점지역이 아닌 0점에 해당되는 지점에 들어간 것이라면 신뢰도는 높지만 타당도는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능은 타당도가 높은 시험은 아니라고 봤다. “수능에서 신뢰도를 높이려 노력해 선택과목 간 불균형을 제거하고 시험에서의 오차범위를 줄였다 치자. 그러나 수능에 응시한 한 학생이 높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수학능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보충해야 한다면, 혹은 학생 스스로 전공 관련 과목의 고교 과정을 학원에서 수강해야 한다면 타당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즉 ‘공정함’이라는 개념은 신뢰도와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타당도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다뤄 비판한 지점은 수능이 ‘선발기능’이라는 제한적인 역할에만 그쳤다는 점이다. 제2외국어 문제가 첫 손에 꼽힌다. 현재 제2외국어는 아랍어 쏠림 현상이 극심한 상황이다. 전국에 아랍어가 교육과정에 개설된 학교 수는 3개교에 불과하지만 몇 문제 맞히지 않고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일명 ‘로또 과목’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통상 수능최저가 상위권대학에서도 2등급 2~3개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제2외국어/한문은 2등급만 받아도 활용도가 크게 높아진다. 

아랍어 응시 비율은 2016학년 52.8%, 2017학년 71.1%, 2018학년 73.5%로 증가세가 매년 뚜렷하다. 대부분 학생들이 아랍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다 보니 운이 좋아 몇 문제를 맞히게 되는 경우 등급이 오르는 이점을 노릴 수 있다. 소위 ‘찍기’로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2017수능의 경우 아랍어 원점수 추정 2등급컷은 18점으로, 다른 제2외국어 과목 2등급컷이 대부분 40점대인 것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일본어/중국어의 경우 외고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며 해당 국가 유학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 높은 등급을 받기 쉽지 않다. 반면 아랍어는 경쟁 대상이 울산외고 아랍어과 학생 정도에 불과하고 유학경험자가 많지 않다는 점도 쏠림심화 요인 중 하나로 풀이된다. 

아랍어 이전에는 베트남어가 그런 경우였다. 안 교사는 “베트남어가 교육과정에 도입된 시기는 2009개정교육과정이었다. 이를 적용하는 시기는 2014년 입학생이어야 했고 이 학생들이 수능에 응시하는 시기는 2017수능이므로 이 시기에 적용하는 것이 교육과정을 고려한 평가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훨씬 이른 2014수능부터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제2외국어 교육과정 체제인 베트남어Ⅰ이 아닌, ‘기초베트남어’의 형식으로 수능에 도입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응시자는 급격하게 쏠렸다. 2014수능에서 기초베트남어에 응시한 학생은 2만2865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아랍어Ⅰ에 9969명이 응시한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다. 안 교사는 “이런 현상은 모두 수능이 이미 선발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학생들이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덜 공부하고 더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한” 것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계에서는 이처럼 ‘요행’을 바라는 응시행태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운에 따른 점수로 높은 등급을 받게 될 경우 반대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사탐의 경우 과목 선택에 따라 2점짜리를 실수로 틀리고도 3등급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아랍어에서 ‘잘 찍은’ 덕분에 2등급을 받은 학생의 경우 이를 탐구성적으로 수능최저에 반영할 수 있어서다. 제2외국어에서 다른 언어를 선택한 학생들은 아랍어 선택자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서는 셈이다. 지난해 6월 열린 ‘선진국 도약을 위한 외국어 교육 강화와 2021 수능 정책 토론회’에서 권오현 서울대 교수는 “특정 언어에 비정상적으로 쏠리는 왜곡 현상은 학생들이 성실한 학습노력을 기피하는 비교육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고를 갖게 한다”며 “제2외국어교육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응시 왜곡으로 인해 수능제도 운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같은 날 토론자로 나선 한국외대 최희재 교수 역시 “학습자 흥미와 관심에 따른 선택이나 고교 교육과정에서의 수학 경험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수능에 얼마나 유리한가에 따른 비교육적 동기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시인원 차이로 인한 표준점수 격차 심화>
과목 간 응시인원 차이가 커지면서 생긴 문제는 과목 간 표준점수/백분위 차이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안 교사는 “동일한 개수를 틀리고도 동일한 점수를 취득하지 못한다”며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정당한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운과 눈치게임에 의해서 학생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과목 선택을 잘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탐구과목 역시 마찬가지다. 2018수능에서 최대 응시자 과목인 생활과윤리(16만1653명)와 최소 응시자 과목인 경제(5423명)의 응시자 수 차이는 15만6230명에 달한다. 과탐의 경우 최대 응시자 과목인 지구과학Ⅰ(15만6206명)과 최소 응시자 과목인 물리Ⅱ(2839명)의 응시자 수 차이는 15만3367명이다. 안 교사는 “실제 대입 상담에서 학생들의 큰 고민은, 자신이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전공과목과 연계된 사회과목을 고교에서 이수했는데, 수능에서 인원이 너무 적어 선택과목으로 응시해야 할지의 문제”라며 “심지어 수능에서의 고득점을 위해 과탐Ⅱ과목을 피해 Ⅰ으로만 응시한 뒤, 대학에 입학한 후 쉽게 공부한 것을 후회하고 전공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다시 고교 과목을 공부하러 학원에 간다는 푸념을 한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영수 과목에서도 원점수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안 교사는 “원점수는 다르지만 동일한 백분위/등급을 받거나, 동일한 문항수를 틀렸지만 다른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8수능에서 원점수 100점 기준 표준점수는 국어 134점, 수학(가) 130점, 수학(나) 135점이다. 최고점을 받고도 각각 다른 표준점수를 받게 되는 구조다. 안 교사는 “왜 한 과목에서 완벽하게 학습한 학생들이 다른 점수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점수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수능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점수가 해당 영역에서 100점임에도 예상 표준점수를 계산하고 유불리를 따지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경우 타당도뿐만 아니라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안 교사는 “해마다 응시자의 영역별 평균과 표준편차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수학적인 개념원리에 대한 설명은 교사로서 진부하게 들린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면 마땅히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교육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발에만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줄세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표준점수가 다른 것은 타당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윤근 양정고 교사는 “쉬운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과 어려운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을 다르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수능 EBS 연계.. 교과서 대체하는 현실>
EBS 연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안 교사는 수능이 가진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성격이 변질됐다고 봤다. EBS교재 자체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선행학습 금지법을 넘어서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안 교사는 “단지 연계교재라는 이유만으로 수능은 정규교육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문제를 학생 선발이라는 미명 아래 서슴없이 출제된다”며 “EBS영어 교재는 교육과정의 기준에 따른 교과서 체계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간접연계’의 맹점도 비판했다. 안 교사는 “연계율 70%라는 점을 들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실제 연계는 직접연계가 아닌 간접연계로 이뤄진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일반인들은 간접연계에 대해 모른다”고 지적했다. 간접연계란 해당 제시문의 주제나 소재만 일치하면 연계교재 수준의 문항 출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고3 교실에서 더 이상 교과서가 아닌 EBS교재만으로 진도가 나간다는 점도 꼬집었다. 안 교사는 “일선 학교에서는 평가계획을 세울 때 교과서 중심으로 진도표를 작성하지만, 실제로는 EBS교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상위권만을 변별하기 위한 장치인 수능을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서류와 실제가 다른 상황을 왜 만들어야 하냐”고 비판했다.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시행된 EBS연계 정책은 그간 ‘고교 수업 파행’, ‘기형적 사교육 유발’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공교육을 파괴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EBS만을 ‘달달 외우는’ 수업방식으로 변질됐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평가원이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EBS 연계의 부정적 효과로 응답자의 49.8%가 ‘기계적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 증가’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EBS 연계율 변경 가능성에 따라 사교육 주가가 출렁일 정도로 EBS의 연계율 축소는 사교육을 확대시킨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2015년에는 교육부 장관이 EBS 연계를 70%로 고정적으로 하지 않고 유연하게 검토하겠다는 발언 이후 모 사교육 업체 주식이 주당 5만1500원에서 6만8000원으로 오르기도 했다. EBS 연계율의 축소/폐지가 사교육시장에는 호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EBS 연계 정책 이후 사교육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사교육비 억제액은 70% 연계 이전인 2009년 3492억원에서 2014년 1조1374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면 2011년 5301억원에서 2014년 8925억원으로 올랐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지난해에는 수험생 2명, 교사 2명, 학부모 1명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EBS 연계 내용을 담은 ‘2018학년 수능 시행 기본계획’이 교육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다양한 교재로 창의적 학습을 할 기회를 박탈하고 교사의 자유로운 교재 선택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의 보장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EBS연계에 힘이 실린 상황이다. 헌재는 “고교 교육과정의 중요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EBS 교재를 별도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수능시험을 치르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분간 수능 EBS 연계율은 그대로 유지될 방침이다. 당초 2021학년부터 축소할 가능성이 컸지만 2021수능 역시 현행 유지하는 방안으로 굳어졌다. 2022학년 이후 수능 EBS 연계는 8월 발표될 대입제도 개편방안과 함께 확정될 계획이다. 

<‘과목수 줄인다고 학습 부담 줄어들지 않아’>
학습부담 경감을 이유로 수능에서 선택과목 수가 줄어들어 왔지만 정작 학생들의 부담이 줄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선 영어 절대평가 도입으로 상대평가영역이 줄어든 2018수능을 전년과 비교했다. 안 교사는 “2017수능과 2018수능 응시자의 누적비를 기준으로 국수탐 평균 등급을 비교한 결과 2018수능에서 성적이 더 좋아졌다”며 “이는 학업 역량이 향상됐다기보다 영어에 대한 상대평가 경쟁요소를 제거함으로 인해 나머지 영역에 대해 반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더 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수능은 동일한 학습량을 반복하게 되면 성적이 올라가는 특징을 띠기 때문이다. 탐구과목의 경우 당초 4개영역을 응시하도록 했지만 현재는 2개영역으로 줄었다. 안 교수는 “탐구영역이 4개였을 때와 2개였을 때 전체영역 1등급 비율을 비교해보면 2개로 줄였을 때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오히려 상위권에서는 더 치열한 ‘실수 덜하기’ 경쟁이 벌어진다고 봤다. 안 교사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 학업역량은 ‘반복에 의한 실수를 줄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식에게 1개만 배워서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1개를 배워서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지 다양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항공기도 못 뜨게 하는 국가고시는 학생들에게 무한 반복을 통해 실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기 위해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적용, 창의, 융합을 요구받는다면 교육이 왜 필요한 것인가”라며 역설했다. 

<학종 공정성.. 합격사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성적인 기록을 정량화하는 과정을 현장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등장했다. ‘성장’기반 평가의 우수 합격 사례를 현장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고도 했다. 수능에 비해 학종을 대비하는 교사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학은 입시와 관련해 많은 정보를 현장과 공유하고, 현장교사와 함께 인재를 선발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평원 교수는 “2015개정교육과정은 핵심 역량 중심으로 각 교과 성취 기준이 선정됐기 때문에 학생부에 나타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의 역량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역량의 기록은 정성적이지만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기 위해서는 결국 정량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합격 사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간 여러 차례 포럼을 통해 제기된 논의다. 앞서 열린 3차 대입정책포럼에서는 “현재 대학들이 발표하고 있는 이례적인 합격자의 정보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합격사례도 공개하면 현재 학종에 대해 불만과 의구심을 품는 것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며 “학교별, 학과별로 어떤 영역에 초점을 맞춰 선발했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제시된다면 혼선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합불예측이 너무 어려운 점이 개선돼야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과도 맥락을 공유한다. 또 다른 토론자는 “대학이 공개한 학종 서류평가 기준은 너무 추상적이고, 구체적 평가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공개되지 않아 학생들은 평가기준을 알기 어렵다”며 “공개되지 않은 심사과정 때문에 왜 뽑혔는지,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전형이라고 불리듯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받기도 했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김 교수는 학생 활동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교사의 ‘평가에 대한 평가’, 즉 메타평가의 개념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학생의 실제 역량에 비해 과장 평가된 학생부를 감점하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장평가된 학생의 역량은 적절하게 줄여서 보정하고, 과소평가된 학생의 역량은 적절하게 확장시켜 보정할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이라며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공정성 논의도 중요하지만 각 전형 요소가 학교 현장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입시는 인재를 선발하는 평가도구지만 실제로 현장의 교육 내용과 방법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기능, 즉 ‘평가의 사회적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수능만으로 선발하면 고교 현장은 수능 문제풀이식 수업으로, 논술/면접을 강조하면 각 교과의 수업 방식이 토론과 글쓰기 수업 중심으로 바뀌게 되며, 학종을 강조하면 교사들의 학생 평가가 대입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 자체가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학종이 성장 기반 평가임을 강조하면서 “학종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경우는 학생의 역량이 성장하는 과정을 잘 관찰하고 기록했을 때”라고 말했다. 교사는 꾸준한 정기 상담으로 학생이 스스로 모르고 있던 잠재력을 ‘객관적 사실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학생과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종 개선을 위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의 내실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입학사정관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수 다단계’ 절차가 더욱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반면 학종이 가진 맹점도 지적됐다. 박윤근 교사는 “한 교실 내에서 외향적인 학생도 있고 내향적인 학생도 있다”며 “내가 기억해서 기록할 수 있는 학생은 10%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학종의 취지에 맞게 일부 학생을 선발하되 수시와 정시의 비율을 극단적으로 둘 것이 아니라 50대50의 비율로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논술 ‘학교 공부만으로 대비 힘들어’>
논술의 경우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서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안 교사는 “논술은 대학 차원에서 출제하고 성적을 산출하는 전형으로, 현직교사인 나도 논술 준비를 하려는 학생들에게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라’는 조언보다는 ‘지원 대학의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많이 풀어봐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어떤 교육과정을 선택해 준비해야할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안 교사는 “수능의 경우 상대평가의 부담으로 인해 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논술은 제한적인 선택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대학별 논술 출제영역을 살펴보면, 인문계열 학과의 경우 대부분 언어논술이거나 언어+통계논술이고 탐구에 관한 내용은 전형요강상 확인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학들은 논술 대비를 위해 선행학습 영향평가, 논술 가이드북, 모의논술 등을 제공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사교육 유발 요소가 지금보다 강했지만 공교육정상화법에 근거해 논술고사의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판정하면서 대학별 논술 난이도가 크게 낮아지는 등의 변화를 겪어왔다. 하지만 수시 타 전형과 비교하면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편이며 ‘학교 공부’만으로 대비하기 힘들다는 점은 한계로 남아 있다.  

<대학 '전형별 소득 비율 등 공시 의지 있어'.. 깜깜이 논란 정면돌파 의지>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대학들이 공정성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판의 근거 중 하나로 “학종 입학생 중 저소득층이 많다는 통계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부위주전형의 저소득층 비율이 타 전형 대비 높다는 통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즉각 반박됐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학생부전형의 성과와 고교 현장의 변화’ 심포지엄에서 관련 자료를 공개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참여 54개대학 중 46개대학의 2015~2016학년 입학생 18만7631명을 전수조사해 발표한 결과 정시나 논술 대비 학종이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가장 적게 영향받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형별 소득분위와 국가장학금(1유형) 학생 비율을 분석한 결과 학종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4.3%로 가장 높았다.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2.6%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어 교과 3.3%, 정시 1.7%, 실기 1.5%, 논술 0.4% 순이었다. 반면 월 소득 인정액이 580만원 이상인 소득분위 5분위 이상 학생은 논술/정시가 가장 높았다. 논술 79.8%, 정시 77%, 실기 74.5%인 반면 학종은 68.7%, 교과는 66%였다. 

국가장학금(1유형) 수혜를 받은 전체 7만6740명 가운데 수혜비율이 가장 높은 전형은 교과 학종 순이었다. 교과와 학종 입학생의 국가장학금(1유형) 수혜비율은 교과가 48.8%, 학종이 45.3%였다. 그 밖에 실기 37%, 정시 35.2%, 논술 34.2%였다. 국가장학금 1유형은 소득분위에 따라 저소득층일수록 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 같은 결과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취약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학종을 비롯한 학생부위주전형을 통해 입학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관련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음에도 반복되는 깜깜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보공시 형식을 바꾸자는 제안도 있었다.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현재 대학의 기초생활수급자 학생비율 등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전형별로 나뉘지 않은 점이 문제”라며 “전형별로 나눠 공시하도록 규정한다면 대학들은 공개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