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수능 엇박자, 예견된 논란"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지난해 교육부의 개편 유예 결정으로 새 교육과정과 엇박자가 예견된 2021수능 출제범위를 두고 논란이 번지고 있다. 2021수능은 올해 고1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시험범위 조정이 불가피하다. 최근 공개된 출제범위 시안에 새 교육과정 도입 원칙 상 제외돼야 할 진로선택과목인 과탐Ⅱ가 포함된 반면, 수학에서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기하’가 포함되면서 일관성 없는 출제범위 설정이 도마에 올랐다. 

5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외부 연구용역을 통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바뀐 교과목과 내용을 현재 수능체제에 적용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하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고교교사, 학부모(대학교수 포함), 교육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1~2개의 출제범위 예시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이달 중 2021 수능 출제범위를 확정해 공개할 계획이다. 

새 교육과정은 1학년 때 공통과목을 배우고 2~3학년 때 진로와 적성에 맞게 다양한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선택과목(일반선택/진로선택)으로 구분하는 게 핵심이다. 당초 이 가운데 진로선택과목은 수능에서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진로선택과목이 입시와 연계될 경우 학생들의 과목선택에 제한이 생긴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은 이미 지난해 8월 수능개편을 1년 유예하면서 예견됐다는 게 교육계 의견이다. 교육과정이 달라지면서 교과목 편제는 바뀌지만 수능은 기존대로 치르겠다고 공표하면서 엇박자가 생겼다. 현행 수능 방식대로라면 진로선택과목을 수능과목으로 포함해야 하는 영역이 발생한다.  

지난해 교육부의 개편 유예 결정으로 새 교육과정과 엇박자가 예견된 2021수능 출제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2021수능은 올해 고1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시험범위 조정이 불가피하다. 최근 공개된 출제범위 시안에 새 교육과정 도입 원칙 상 제외돼야 할 진로선택과목인 과탐Ⅱ가 포함된 반면, 수학에서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기하’가 포함되면서 일관성 없는 출제범위 설정이 도마에 올랐다. /사진=세종교육청 제공

<‘진로선택과목’ 과탐Ⅱ.. 2021수능 출제가능성↑>
최대 논란은 과탐Ⅱ과목의 수능 출제범위 포함여부. 교육부 연구팀이 제시한 출제범위 예시안에서는 기존 수능 출제범위와 동일하게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명과학Ⅰ/Ⅱ 지구과학Ⅰ/Ⅱ 8과목이 모두 포함됐다. 두 개 안으로 제시한 국어, 수학과 달리 과탐 출제범위안은 단일안이었다. 

문제는 2015 교육과정에서 과탐Ⅱ 네 과목이 모두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수능개편안 유예가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수능 출제범위는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까지”라며 “과탐Ⅱ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돼있어 교육과정 내용에 부합하도록 수능출제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출제범위 설정원칙과 달리 과탐Ⅱ 과목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현행과 동일한 출제범위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겪을 혼란은 없겠지만 새 교육과정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과탐을 제외하면 공개된 모든 시안의 출제범위에서 빠졌다”며 “수능 출제범위 설정원칙에서 벗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과탐Ⅱ 응시인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매년 최저응시율을 기록하는 물리Ⅱ는 물론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모두 응시자 비율이 5%를 넘기지 못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자연계열 수험생들에게 수능에서 과탐Ⅱ 응시를 일관되게 권장해왔지만 현장에서 기피현상이 해마다 짙어져왔다. 대학에선 과탐Ⅱ를 배우지 않아 강의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공계 신입생이 해마다 늘어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탐Ⅱ 선택이 ‘의대광풍’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가 아니 타 대학 의대 진학을 목표하는 학생의 경우 굳이 학습량이 더 많고, 우수 수험생들이 많아 경쟁하기 쉽지 않은  과탐Ⅱ를 선택할만한 유인은 희박하다. 난도 조절 실패, 우수 수험생 집중으로 만점자가 상대평가 2등급 기준인 11%를 넘어갈 경우 단 1문제만 틀리더라도 성적이 3등급으로 급락하는 위험도 있다. 최근 응시인원이 줄어들면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인원도 함께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자연계열 수학(가) ‘기하’ 제외.. 대학 측 '필수 포함' 요구>
자연계열 학생이 주로 응시하는 수학 가형은 1안과 2안 모두에서 ‘기하’가 출제범위에서 빠졌다. 출제범위 조정원칙에 따르면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기하’를 제외하는 것이 맞지만 수학의 핵심분야라는 점에서 대학가에선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2009 교육과정에서 일반과목으로 분류된 ‘기하와벡터’는 2015 교육과정에서 진로선택과목에 포함되면서 출제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연구팀이 설문조사에서 예시안으로 제시한 1안과 2안에서 모두 ‘기하’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2021수능에선 출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 교육과정에 따르면 ‘기하’와 함께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과목은 실용수학 경제수학 수학과제탐구 등이다. 수학Ⅰ,Ⅱ와 미적분 확률과통계만 일반선택과목이다. 

2015 교육과정에 따라 출제범위를 조정한다면 진로선택과목인 ‘기하’는 제외되는 게 맞지만 대학 측 의견은 다르다. 서울의 한 대학 수학과 교수는 “자연계열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려면 기하나 미적분은 반드시 익혀야 하는 분야”라며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기하만 제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차곡선, 평면벡터, 공간도형과 공간좌표를 다루는 ‘기하’는 그동안 수학 가형의 핵심분야로 꼽혔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수(가)에서 30문항 가운데 9문항이 기하와벡터에서 출제됐다. 배점은 원점수 기준 29점이었다. 

반면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대전의 한 고교 교사는 “새 교육과정에서 예고한대로 진로선택과목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고 본다”며 “기하와벡터는 이과 학생들이 기존 교육과정에서도 가장 어려워했던 과목인 만큼 학생들의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하’가 수학 가형에서 제외된다면 교차지원을 노려 수(가) 대신 수(나)를 응시하는 자연계 수험생들의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응시하는 수학 나형의 경우 공통과목인 ‘수학’이 1안에는 출제범위로 포함된 반면 2안에서는 제외됐다. 다항식, 방정식과 부등식, 도형의 방정식, 집합과 명제, 함수와 그래프, 경우의 수 등을 학습하는 공통수학이 포함된다면 인문계열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은 다소 늘어나게 된다. 

<국어, 문법 다룬 ‘언어와매체’ 제외.. 학계 반발>
국어는 문법을 다루는 일반선택과목인 ‘언어와매체’의 포함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연구팀은 언어와매체 화법과작문 독서 문학의 과목을 포함한 1안과 여기에서 '언어와매체'만 제외한 2안으로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언어와매체가 포함된 1안은 현행 수능의 하위 출제영역인 화법 작문 문법 독서 문학을 모두 포함해 기존과 동일한 출제범위를 유지하게 된다. 현행 평가 체제를 유지해 안정적인 운영은 가능하지만 일반선택 4과목을 모두 출제범위에 포함해 학생들의 과목선택의 폭을 축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2안에서는 문법을 다루는 언어와매체가 제외되면서 학계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글학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문법을 제외한 안이 선택된다면 국어 과목에서는 더 이상 한글의 우수성도, 맞춤법도, 우리말 언어예절도 가르칠 수 없게 된다”며 “우리말 교육을 소홀히 하는 교육부는 과연 어느 나라 교육부인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안의 경우 현행 수능의 출제과목 수와 동일하게 3과목을 출제해 부담은 없지만 문법이 빠지면서 평가 체제 변화는 불가피하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국어 45문항 중 5문항(11점)이 출제됐다. 일각에서는 수능 출제범위에서는 제외되지만 1학년 공통과목으로 문법을 배우고 2,3학년 때 선택과목으로 문법을 더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새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어와 사회탐구 직업탐구의 경우 기존 수능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이 설문조사에서 제시한 출제범위는 3개 영역 모두 단일안으로 제시됐다. 시안에서 제외된 제2외국어/한문영역은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만큼 별다른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2021수능 출제범위, 예고된 논란.. ‘졸속’ 개편 탓>
올해 고1이 치르게 될 2021수능의 출제범위 논란은 예고된 논란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8월 교육부가 ‘졸속’이란 평가를 받았던 수능개편안 확정을 결국 유예하기로 결정한 당시 이미 다수의 부작용이 예견됐기 때문이다. 

당초 교육부는 두 개의 수능개편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계획이었다. 새 정부가 추진 중인 3년6개월 사전예고제에 따르면 2021수능 개편내용의 확정시점은 8월말을 넘길 수가 없는 탓이다. 1안과 2안 모두 과목구성은 동일하지만, 1안은 통합사회/통합과학과 제2외국어/한문까지 절대평가를 확장하는 데 비해 2안은 전 영역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방안이었다. 

절대평가 확대를 놓고 교육계 의견대립이 극심해지면서 교육부는 결국 개편 유예를 결정했다. 대입 변별력 문제로 인해 1안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측과 새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2안이 더 옳은 방향이라는 주장이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교육부가 개편을 최종 유예하면서 교육과정 변화에 따라 새롭게 도입되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됐다. 수능개편은 미뤄졋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예정대로 올해부터 도입하기로 하면서 교육과정과 수능체제 사이에 엇박자가 발생하게 된 셈이다. 

논란이 불거진 수학(가)의 기하, 과탐Ⅱ과목이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되지만 기존 수능체제에선 출제범위에 포함되면서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수능에 포함된 과목을 중시하는 현 교육현장의 분위기상 교육과정의 순차적 운영이 아닌 파행운영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공통과목임에도 수능에서 출제범위에서 제외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특히 높다. 융합형 인재 양성이란 교육과정 취지에 맞춰 1학년 때 배우는 공통과목으로 지정됐지만 정작 수능에선 제외되면서 고교현장에서 소홀히 다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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