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진 이화여대 입학처장

# 미국 초등교실의 수학교육
지난 2013년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연구년을 다녀오면서 교육에 대한 매우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아이가 동부의 한 작은 공립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보냈는데, 두 번째 학기를 마칠 즈음 “Author’s tea time”에 초대를 받았다. 반에 있는 학생들 모두 1년 동안 각자 자신이 정한 주제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몇 권의 책들을 완성했다. 부모님을 “Author’s tea time”에 초대해 자신의 작품을 읽어 주는 시간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질문이 있으면 같은 table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묻기도 하며 자유롭게 자기주도적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자신의 창의적 역량과 자율성에 따라 한 권을 완성한 아이부터 다섯 권을 완성한 아이에 이르기까지 결과물은 다양했다. 평가 방식이 단순히 줄을 세운 상대적인 평가를 통해 엇갈리는 성취감이나 열패감 대신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상상력과 자율성을 존중받고 작품을 완성해 부모와 함께 성취감을 맛보는 축하 파티였다. 미국의 교사들은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구성해 자율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융복합적 사고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나라 수학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숫자와 수학기호 등이 없이도 수학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생활주제로 스며들고 있었다. 집 가까이에 있던 science museum에서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창작놀이를 즐겨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들이 쌓아올린 블록, 서로 다른 규격의 집기들이 만들어낸 공간, 높낮이가 다른 면에서 반복해 장난감을 이동시키는 아이들... 즐거운 놀이터처럼 보이는 곳이었지만 수학자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수학이론이 움직이는 실험실이었다. 수학은 문제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임을 아이들은 그렇게 체험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다인종 사회이면서 여러 계층 간의 복합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저력이 아닌가 생각됐다.

이윤진 이화여대 입학처장

#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수학교육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기술의 기반에 수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어느 시대보다도 수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일반인의 눈에는 잘 포착되지 않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수많은 제품들은 수학원리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생물체처럼 움직이는 로봇 청소기를 바라보면서 기계 속에 스며들어있는 수학이론을 추론하는 습관은 수학자로서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반복 훈련을 통해 습득 가능한 일자리는 로봇의 대체가 예상되고 따라서 인간의, 사고의 힘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빠르고, 정확히 문제를 풀 수 있는 인재의 시대는 지나가고, 문제해결능력 창의성 융/복합적 사고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인재가 절실한 시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문제해결의 핵심원리를 추론적으로 찾아내는 추론능력과 더불어 여러 개념이나 원리들을 결합해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는,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데 있어서 수학 교육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 교육의 전향적 변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현실은 여전히 입시위주,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학적 주제가 숫자 이상의 세계로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 창의적 상상력 또는 실험적인 시도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반면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예를 들면 선진국들이 많이 선택하는 교육 방식은 IB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라는 국제 공인 교육과정이다. 논술과 토론이 중심인 IB 교육과정은 1968년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가 스위스에서 시작한 국제공인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은 기존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이 주도적으로 토론과 토의를 통해 의사소통과 협업으로 학습을 해 나가는 수업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중심의 토론과 논술 등 과정평가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와 교육 체제가 유사한 일본은 이미 IB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4차 산업시대 교육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수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을 교육계의 화두로 던지고 있다. STEM은 국가의 미래 교육의 “줄기”를 세운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과학 기술 교육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공교육의 획일적인 교육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 전반의 교실 수업이 변화하기까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대학교육, 학생선발의 변화 필요성
대학은 각 분야의 전문적인 학문탐구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함은 물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를 전망해 대학 교육과정으로 용해시켜야 할 당위가 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 중등교육에서도 문/이과 장벽을 허무는 통합의 시도가 시작됐다. 학생참여 수업 등의 수업혁신을 통해 미래핵심역량을 키우려는 노력도 있다. 체험과 실험 중심의 참여 수업, 협력과 토론을 통한 융합교육을 실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국가교육과정 개정의 목표가 단위학교 수업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인내심과 추진동력이 수반되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대학은 다양한 실험의 場이어야 한다. 많은 주제가 논의될 수 있겠지만 입학업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학생선발에서 고려할 수 있는 주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유전공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을 입학할 당시에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 후 일정 시점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로,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적성탐색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대부분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 교수로 있을 당시 자유전공시스템을 통해 본인이 몰랐던 잠재능력을 찾아내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낸 학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전에는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인지 잘 모르고 있다가, 대학의 자유로운 전공탐색 기회를 통해 수학이 주는 성취감을 제대로 맛본 학생 사례는 인상적이었다. 이 학생은 수학 이외에도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며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던 역사, 음악 등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발견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할 시점에는 2개의 복수전공, 1개의 부전공을 이수해 우수한 복합인재로 성장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미래는 문과, 이과, A전공, B전공 등으로 나눠 해석할 수 없는, 융합 그 자체가 본질인 세상이다. 선진국 어디에도 문과, 이과 등의 계열구분을 통해 전공을 선택하는 사례는 없다. 대학 입학 시점에 선택한 전공분야에만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는 생각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018정시모집에서 이화여대가 학과별 선발이 아닌, 통합선발을 시도한 것은 이러한 맥락의 선도적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올해로 8년차 졸업생을 배출하는 본교의 스크랜튼 자유전공학부는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할 전문인력 양성의 교육목적을 가지고 아너스프로그램으로 운영돼 왔다. 이러한 성공적인 경험을 토대로 정시모집의 통합선발로 확대하게 됐다. 통합선발 방식으로 합격한 신입생은 1학년 동안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개별학생 중심의 전공탐색 프로그램을 통해 1학년 말, 본인에게 적합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학점기준이나 학과별 인원, 계열 구분 등의 제한을 두지 않으므로 학생들은 불필요한 경쟁부담에서 벗어나 학문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를 깨닫고 그것을 위한 준비 작업에서 대학교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우리 대학, 우리 학과에서 어떤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수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세부방법을 고민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우수학생을 미래형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가 대학 곳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화여대의 도전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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