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드디어 날이 밝았다. 한 해 미루었던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지난해 수능 개선안 1안과 2안이 제시된 후 우리 사회는 이해관계에 따라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양상을 노출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교육을 수단화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1년이 유예된 대입 정책이 올해 발표되면 작년 상황과 달라질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내 아이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아이가 더 뛰어나다는, 입증되지 않은 우월감, 나에게 유리하지 않으면 공정한 대입 전형이 아니라는 이기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올라감으로써 권력이나 경제적인 부를 보장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정부에서 그 어떤 대입 정책을 내놓아도 현재의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서열적 구조, 부의 대물림에 따른 문제점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보다 당장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문제 풀이 스킬만 공허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사회 통합도 없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구현할 수도 없다.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대입 제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요구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해온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수시-정시 통합 전형을 실시하자.

그동안 우리는 대학 입학이라는 대명제 앞에 고교 교육의 파행을 눈 감아 왔다. 특히 수시모집을 전후로 한 고3 수업의 파행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수시모집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학생들은 정규 수업을 비롯한 다른 학교 활동들을 제쳐 둔 채 자기소개서를 쓰기에 바쁘고, 내신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 3학년 2학기부터는 학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는다. 학교 또한 이러한 학생들을 방관한다. 학생부종합(이하 학종)전형을 통해 토론 토의 발표식 수업의 전환, 동아리 활성화, 학교 특성화 프로그램 개발 등의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이는 고1, 고2에 국한된 이야기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폐단을 묵인하고 있어야만 할까? 수능 전에 치러지는 수많은 전형들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이제 모든 전형은 수능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 물론 수시-정시 통합전형을 실시하기 위한 전형 일정이나 구체적인 전형 안은 가능한 대학의 자율권에 맡겨야 한다. 다만 학교 현장의 정상적인 학사 일정 운영을 위해서는 대입 전형 및 수능 일정을 3학년 2학기 정기고사가 종료된 이후로 미룰 필요가 있겠다.

둘째, 지역 쿼터를 적용하자.

2018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생을 보면 특정 고교의 합격생 수가 행정구역상 하나의 도(道) 전체 합격생 수보다도 많다. 이를 정상으로 보아야 할까?

만약 지역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면, 한시적으로라도 대입 정책에 지역 쿼터를 적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서울의 경우도 서울 25개 자치구의 합격생 수를 각 자치구의 학생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해 볼 수 있다. 그래야 특정 학교, 특정 지역 학생을 우대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그 성취 기준을 달성하는 과정은 고교 간에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처럼 기형적으로 대학 합격생 수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과감히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는 없을까?

모든 전형에 이를 적용하기 불가능하다면 학종전형에서만이라도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대학의 학과 모집을 광역단위로 묶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셋째, 입학사정관에 의해서만 학종전형이 이루어지게 하자.

학종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을 활용해 학생의 학업 역량, 전공 적합성, 발전 가능성,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을 선발한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입학사정관이 아니라면 이러한 평가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오해의 여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 이슈화된 한국교통대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전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성차별 학교차별 인권 침해 등의 문제점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입학사정관의 독립적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 결국 전문적인 연수와 경험을 쌓은 입학사정관들에 의해서만 학종전형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당장 올해부터 입학사정관이 전적으로 학종전형을 운용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시적으로 퇴직교원과 같은 외부 인사들을 서류평가와 면접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모색해볼 법 하다. 이는 학종전형의 신뢰성 및 공정성을 높이는 데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정치적인 논리, 대학 서열화에 따른 왜곡된 사회 구조 등 교육 외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교육이 수단화됨에 따라 파생된 병폐들은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교육이 본연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한다.

지난 연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한 사건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7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부칙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법시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7년 7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법조인 양성교육 제도개선 연구’의 결과가 국회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만 10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다. 헌재는 가치에 주목했다.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법조 환경을 다양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를 인정한 것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현재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타협안을 선택할 것인지, 가치적 우선권을 두고 선택할 것인지.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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