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첫 IB 졸업생 배출 목표'.. '실현가능성 여전히 의문'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제주교육청이 올해 하반기부터 공교육 최초로 국제 공인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공교육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한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공립학교에 IB과정을 도입하기 위해선 IB과정을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부터 선행돼야 한다. 국내 교육과정과의 일치, 관련 대입전형 마련 등 교육청이 다양한 선결과제들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교육당국과 대학 측에서 조응이 없다면 '무용지물'로 전락해 학생들의 국내대학 진학 기회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학교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IB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경기외고에 IB를 들여온 장본인인 충남삼성고 박하식 교장은 IB도입은 긴 안목을 두고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구성원들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장은 경기외고에서 IB도입 당시 IB본부에 인증을 신청하고 받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학교의 주요 구성원인 법인,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많은 부담과 불편한 과정의 연속이었다”며 “인증을 신청하고 인증을 받기까지는 2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 것을 감수하고라도 할 만한 교육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IB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대학 교사 학생 학부모를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와 설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제주에서 장기간에 걸쳐 초중고교에 IB를 도입하더라도 대학과 교육당국 차원에서 IB를 받아들일 의지가 없다면 제주차원에서 '반짝' 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통상의 고교에서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식 입학사정관제에서 출발한 학종이 수년만에 수시 주요전형으로 안착된 배경에는 수시전형에 학종을 전면 도입한 서울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여기에 학생부위주전형의 확대를 유도한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등 공교육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교육당국의 뒷받침이 더해졌다.

경기외고가 IB를 도입할 수 있었던 데는 외고 학생이라는 점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기본적인 영어능력을 갖췄으며, 당초 해외대학 진학을 염두에 뒀다는 특수성이 있다. 전부 영어로 진행되는 IB과정이 실현될만한 여건이 이미 갖춰졌던 셈이다. 한국어로 전 과정을 번역해 공교육에 도입한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제주의 경우 특별법에 따라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된 지자체로서 국제학교 설립 등 예외적 정책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여타 시/도와는 차이가 있다. 적극적으로 IB도입을 추진하는 제주와 달리 서울교육청에서는 IB도입 가능성에 대해 일축한 이유다. 설령 제주 공교육 전반에 IB가 도입되더라도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에서 IB과정 졸업생을 위한 대입전형을 별도 마련하지 않거나 있어도 특기자전형 등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전형에 그친다면 공교육에서 명맥을 이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경기외고 백영옥 교사는 경기외고 학생들의 국내대학 진학에 대해 "IB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수능 대비를 위한 학습을 하지 않는다. 수능시험일이 IB졸업시험 기간과 겹쳐 수능을 볼 수가 없는 구조"라며 "IB반 학생들도 절반 정도는 국내대학에 진학하긴 하지만 국제학부나 특기자전형을 통한다"고 설명했다. IB과정을 선택하게 되면 국내대학 진학 통로에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상당한 셈이다. 

제주교육청이 올해 하반기부터 공교육 최초로 국제 공인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공교육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한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공립학교에 IB과정을 도입하기 위해선 먼저 IB과정을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IB 공교육 적용, 교사 학생 학부모 공감부터 얻어야>
제주교육청은 13일 대회의실에서 ‘IB 교육과정 및 평가제도의 제주교육 적용방안 - IB 인증학교 도입, 현실적 문제와 해결방안’을 주제로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지난달 도내 읍면 지역 초등학교부터 IB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날 보고회에는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 서울삼성고 하화주 교사, 충남삼성고 박하식 교장, 이범 교육평론가 등이 발표자로 참여해 연구 경과에 대해 중간보고를 했다. 이 소장은 저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로 이름을 알린 뒤 그동안 대입시험과 초·중고교에 IB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각각 ▲IB의 공교육 도입의 의의와 추진 일정(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 ▲IB의 특징 및 IB 학교 인증 절차(서울 삼성고 하화주 교사) ▲IB의 공교육 적용을 위한 과제(충남삼성고 박하식 교장) ▲IB 도입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검토(교육평론가 이범) 등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중간보고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내달 중 최종보고서를 확정한다. 교육청은 이를 토대로 IB 교육과정 도입방안과 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다. 

IB인증을 받기 전 인증후보학교여도 IB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한 초등학교 중학교와 달리 고교는 IB인증을 받아야만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인증까지는 최소 2년에서 3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연구용역팀 책임자인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올해 하반기 초등학교, 내년 상반기 중학교에서 인증 신청과 동시에 IB형 교육을 시범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시했다. 고교의 경우 2022년 고1에서 IB 교육을 시작해 2025년쯤에는 고교에서 IB과정으로 공부한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중학교와 고교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할 경우 각각 고입 대입 등 입시제도와 연관이 큰 탓에 관련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국내 최고로 정규 고교인 경기외고에 IB교육과정을 도입한 박하식 삼성고 교장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IB를 직접 경험한 IB전문가로 현장에 참석한 교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내 학교로서는 유일하게 IB교육을 도입한 박 교장은 IB도입 초기 단계가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학교의 주요 구성원인 법인,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많은 부담과 불편한 과정의 연속이었다”며 “인증을 신청하고 인증을 받기까지 2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감수하고라도 할 만한 교육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장은 IB 교육과정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전면 도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개별 학교 차원에서 IB교육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오랫동안 지속돼왔다”며 “IBO(IB본부)와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일본의 학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안내자료를 번역, 출간, 홍보를 통해 IB 교육 시행 희망학교와 교육받을 학생이 많아질 수 있는 국가적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교육에 IB를 적용하고 실행하기 위해 추진해야 과제들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IB도입과 실행을 위한 교육부와 교육지방자치단체, 대교협 등 국제교육 담당자로 구성된 실무추진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IBO(IB본부)의 우호적 협력 관계를 쌓아 국내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IB교육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과정인 IBDP는 16세에서 19세까지 학생 가운데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상당한 수준의 학업수행능력이 요구된다. 교과와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 본인과 학부모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참여가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교육청에서 정책으로 추진하거나 학교 방침으로 무조건 참여한다든가 하는 방식은 IB교육에서 지양돼야 한다”며 “초등학교 과정인 PYP의 경우 국내 교육과정과 병행이 아니라 온전히 IB의 PYP 교육만 하도록 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에 IB교육을 하는 학교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와 홍보를 강조한 배경이다. 

IB의 과목과 우리나라 교육과정상 교과군 과목과의 비교연구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IBDP(IB고교과정)의 경우 과목 수가 많지 않으며 한 과목을 2년간 지도하게 돼있어 운영방식이 단순한 편”이라며 “우리나라 교과군을 기준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해당 교과의 교과교육연구회를 통해 현행 우리나라 과목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 과목명과 단위수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며 평가방식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전문가들의 연구과정을 통해 제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교에 IB를 도입할 경우 IB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인정하고 전환하는 것부터 단위수 조정, 교과서 채택과 관련된 규정, 평가방식 전환 등 구체적인 실행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교장은 IB를 안정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지만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의 특수성을 활용해 IB도입을 추진하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행 교육과정상의 적합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제주도 특별법’을 잘 활용하면 현 상황에서도 추진 가능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제주에서 IB교육을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 자율학교 또는 국제고등학교로 지정해 선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IB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을 위한 대입전형 정책이 교육부와 대교협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IBDP의 경우 한 고교에서 도입을 결정하고 인증 신청을 한 후부터 후보학교가 되는데, 그때부터 시작해 정식 IB 인증학교가 되기까지는 2년 이상이 걸린다. 학교 인증 후에도 2년 간의 IB교육을 마쳐야 정식 IB 고교교육 이수자가 배출되는 셈”이라며 “지금부터 IB 인증신청을 하고 공식 IB 학교 졸업자를 배출해 그들이 대학을 진학하게 되는 때는 결국 4년 또는 5년 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각 대학 입학 관계자와 대교협 관계자들이 2022년 또는 2023년 입학생부터 어떻게 IB교육과정과 결과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가 당장 지금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 올해 하반기 읍/면 초등학교 시범 도입.. 2025년 졸업생 배출 목표>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공교육에서 IB교육과정을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비춰 1,2,3단계 공교육 도입 추진 계획안을 제시했다. 이 소장은 1,2,3단계로 구분하되 이 세 가지 단계를 동시에 병행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 소장은 “IB 도입전략은 ‘점진적’일 수 있지만 반드시 ‘한꺼번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모든 학교의 개념으로 보면 몇몇 학교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시범학교로 지정된 개별 학교 내에서는 ‘한꺼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한 교육과정 내에서 혹은 한 수업 내에서 부분적으로 점진적으로 바뀌면 아이들은 더 혼란스러워 한다”며 “한꺼번에 바뀌고 IB인증학교가 된 경기외고의 사례를 봐도 아이들은 바로 IB교육에 적응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도입전략으로 ▲1단계 IB 번역 ▲2단계 IB 시범학교 ▲3단계 KBO(가칭) 등을 제시했다. 1단계에 대해 설명하며 “일본이 IBO와 제휴를 맺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전 교육과정의 번역”이라며 “의지와 열정이 있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수업과 평가에 활용해볼 수 있도록 IB교육과정 관련 자료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온라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단계는 IB교육과정 전체를 한국어로 번역해 각 권역별로 몇 개 시범 인증학교를 도입, 공교육에 퍼질 수 있는 본보기를 세울 것을 제시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선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직접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O 역할을 하는 KBO(가칭) 같은 기관을 설립해 채점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구체적 도입일정은 10월 초등학교에서 먼저 시작해 내년 중학교, 2022년 고등학교로 구성했다. 고교과정 IB인 DP는 IB인증을 받아야만 수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과정인 PYP와 중학교 과정인 MYP는 인증 후보학교도 인증학교와 동일하게 IB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인증을 받는 데는 약 2년(1년 반에서 2년 반 가량)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2018년 하반기에 PYP를 신청하고, 2019년 상반기에 MYP와 DP를 인증 신청한다. 인증 후에만 교육이 가능한 DP는 2022년이 돼서야 고1 IB교육을 시작, 2025년에는 IB 첫 졸업생을 배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학종 대체재로서 IB 주장.. ‘IB는 만병통치약?’>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이범 교육평론가도 발표에 참여했다. 이 평론가는 ‘대입/고교 제도 변화의 맥락에서 IB 도입’을 주제로 발표했다. 내신 절대평가 도입에 찬성하는 이 평론가는 IB 교육과정이 2022년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 ‘교사별 평가’와도 조응한다는 주장이다. ‘교사별 평가’는 ‘과목별 평가’ 또는 ‘학년별 평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평가방식과 문항을 교사 각자 자율성에 맡기는 제도다. 현재는 교육부 규칙에 따라 중학교와 고교에 모두 동일한 방식과 문항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씨는 IB를 ‘학종의 대안’이라고 소개했다. “학종은 각종 교내경시대회 소논문 동아리 학생회 등 학생자율활동과 봉사 독서 자소서 추천서 면접 등 매우 다양한 전형요소를 반영하는 전형”이라며 “다양한 요소들이 정성평가로 종합 반영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고 사교육과 불공정 시비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IB는 학종의 전형요소들 가운데 합리적 핵심을 끌어들여 체계화해 학종보다 훨씬 간소화하면서도 공정“하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소논문을 예시로 학종과 IB를 비교하기도 했다. ”한국 학종에서는 소논문이 대체로 ‘작성 과정’에 대한 지도, 관리 없이 결과물만 논문경시대회 혹은 교과 세부특기사항의 내용으로서 반영되는 반면, IB는 소논문 작성 과정을 교사가 직접 지도하고 관리하는 등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했다. 

과목이 정해져있지 않은 한국의 논술고사와 달리 IB는 과목별 평가로서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 높고, 그만큼 사교육이 작용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논술의 대안’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대학별로 출제돼 출제수준, 경향, 채점방식 등에 대학별 편차가 존재하는 한국 논술과 달리 IB는 IB본부에 의해 일관성 있게 관리된다는 장점을 꼽기도 했다. 대입실적 경쟁으로 ‘성적 부풀리기’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내신 절대평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 씨의 주장에 대해선 다소 급진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씨는 IB를 ‘학종의 대안’ ‘논술의 대안’ ‘대입내신 절대평가의 대안’이라고 제시했지만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학종을 뒤흔들고 또 다시 교육현장의 혼란을 예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학종은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지만 국내 교육여건에 맞게 변형, 최근에는 ‘한국형 입시브랜드’로 키울만한 대입전형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지난달 12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제1차 대입정책포럼’에 참여한 서울대 권오현 교수는 “학종 도입 후 학교 차원에서는 학교교육 중심의 대입전형이 자리 잡아가고 교실수업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학생 차원에서는 교실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바뀌고 학생의 자기주도적 교내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서울대 입학본부장으로 지내면서 학종 중심의 서울대 입시 틀을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나홀로 IB 도입의지’>
최근 조희연 서울 교육감도 초중고교에 IB도입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IB 도입을 둘러싼 조 교육감과 실무진 사이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조 교육감은 학교현장에 IB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교육청 산하 평가혁신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이번 정책연구는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수많은 연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도입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조 교육감이 다소 앞서가는 정책을 추진하자 실무부서가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해석이다.  

그동안 조 교육감은 평가혁신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지난 1년간 평가혁신 TF를 구성해 평가방식 변화를 추진했다. 평가혁신TF는 IB와 오픈북테스트(시험을 치를 때 교과서나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게 허용되는 시험) 도입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최근 공개한 2018년 업무계획에는 관내 중학교 22곳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객관식 시험을 없애고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과정중심 평가’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조 교육감은  “초중고 평가에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을 포함한 평가혁신 방안 추진을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박사에게 연구를 맡겼는데 다음 달 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재선 출마가 유력한 조 교육감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를 핵심 공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 교육 관계자는 “IB를 도입한다는 것은 기존 교육과정이나 평가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교육개혁”이라며 “이런 사안을 속도조절 없이 추진하는 것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들의 우려나 반응을 그대로 전달받는 실무팀 입자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공립학교, IB 도입 가능성은?> 
국제표준교육과정인 IB DP(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me, IB과정)는 전 세계 147개국 3700여 개 학교가 도입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국제적으로 인증된 고교 교육과정이다. 해외 거주 글로벌 전문가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가 설립 운영됐으나 국제통용이 가능한 교육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대학진학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국가와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학교에 통용되는 공통된 표준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요구에서 출발했다. 공통의 커리큘럼과 표준화된 평가기준을 공유함으로써 지역과 국가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고 인정되는 교육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IB는 엄격한 인증과정을 통해 우수학교를 선별, 인증시스템을 부여하고 있다. IB교육과정을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후보학교로 등록한 후 3년에서 5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학교시설, 교원, 재단, 행정체제, 예산투명성, 학부모와의 관계 등 다방면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검증을 통과한 학교들은 IB World School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으며 매 5년마다 지속적인 검사를 통해 인증을 재갱신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IB인증을 받은 학교는 2017년 현재 전 세계 152개국 4541개 학교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1980년 첫 IB교육과정이 도입된 후 2017년 현재 12개 학교에서 IB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IB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는 학교는 제주 국제영어도시 내에 개교한 NLCS 제주와 브랭섬홀 아시아를 포함해 국내 학교에서는 유일하게 경기외고가 IB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경기외고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가 아닌 유일하게 국내학교로서 IB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기외고는 2010년부터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의 인가를 획득해 영어국제반을 대상으로 IB디플로마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 제주 공립학교에 IB과정이 도입되면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공교육 사례가 된다. 제주교육청은 지난달 제주한라대에서 2017 제주교육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의 IB 교육과정 적용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강연자로 참석한 일본국제교육센터 대표인 이쿠코 츠보야 뉴우에루 IB 일본대사는 ‘IB 교육과정의 일본 도입 사례’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교육청 관계자는 “연구용역은 2월쯤 완료될 예정”이라며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주지역에 맞는 도입지침을 만들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도내 IB교육과정을 실시하는 시범학교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교육에 IB교육과정 도입을 선도한 이쿠코 IB 일본대사는 “교육은 미래를 바꾸는 힘이 있다”면서 “경제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한국도 IB 교육과정을 국제학교에서만 운영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미권 상위대학에서도 IB 졸업생이 일반고 졸업생보다 합격률이 높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IB는 전과목이 논술형이지만 50여년 간 채점 공정성이 검증된 공신력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은 2013년 도입이 결정된 IB과정의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고자 대입에서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 IB과정만으로도 입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올해 3월 기준 42개교의 공립학교가 IB인증을 완료했고 인증을 기다리는 후보학교들까지 더하면 전체 105개교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내년까지 IB 인증 신청 공립학교를 2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쿠코 IB 일본대사는 “한국에 IB과정으로 도입하려면 먼저 한국 교육당국이 각급학교, 국제기구와 협력해 IB교육과정을 적용하고 그에 맞는 평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IB 전 과정을 자국어로 번역해 원하는 교사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돋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면서 “일본의 IB도입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입시험뿐만 아니라 공교육의 수업과 학습 방식을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