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혁신학교, 중학교 객관식 시험 폐지.. 자사고 완전추점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018년 주요업무계획을 공개한 가운데 교육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정책들이 다수 포함돼 우려를 낳았다. 교육현장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수요자와 현장을 위한 업무계획이라기 보다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진영단일화를 겨냥한 행보로 읽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 교육감이 3일 서울교육청에서 공개한 ‘2018학년 주요업무계획’에 따르면 올해 서울형 고교학점제인 개방-연합형 교육과정 선도학교 20곳을 지정해 6억6000만원을 투입한다. 혁신학교는 초중고 20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서울지역 중학교 22곳에서 중간/기말고사 등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수행평가 등으로 대체하는 ‘과정중심 평가’도 도입할 방침이다. 업무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자사고 완전추점제 도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버전 고교학점제인 ‘개방-연합형 교육과정’ 선도학교 지정은 2019년 서울 내 모든 일반고와 자공고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교육부의 2022년 고교학점제 전면 확대 방침에 전교조마저 반대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상황에서 서울청이 이보다 앞서 2019년 고교학점제 도입을 예고한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원수급과 시설확보, 평가체제 마련 등 현실적 문제가 산적해있다. 

매년 기초학력미달로 논란이 된 혁신학교 확대 역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2014년 이후 혁신학교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2016년에는 혁신학교 10곳 전부가 학교향상도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해 우려를 낳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에서 저조한 학력수준과 대학 진학률을 보인 것은 혁신학교 운영을 재검토해야 할 수준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018년 주요업무계획을 공개한 가운데 교육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정책들이 다수 포함돼 우려를 낳았다. 교육현장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현장을 고려한 업무계획이라기 보단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선명성 강조를 위한 행보로 읽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형 고교학점제 ‘개방-연합형 교육과정’ 6억6000만원 투입>
고교 부문에서는 서울형 고교학점제로 불리는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에 역점을 두고 추진한다. 20개 내외 선도학교를 선정해 6억6000만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연합형 선택 교육과정은 11개 권역 30개교로 확대하며 미래기술 영역 거점형 선택 교육과정도 5개교에서 신규 운영한다.   

선도학교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뉜다.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선도학교는 지역이나 학교 여건에 맞게 특색 있는 교육과정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연합형 선택 교육과정 선도학교는 학교 간 협력과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한 학교에서 개방형과 연합형 교육과정을 모두 운영할 수도 있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조 교육감은 선도학교 운영을 기반으로 2019학년 서울 내 모든 일반고와 자공고에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개방-연합형 교육과정 선도학교 지정은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다. 2022년까지 고교학점제 전면도입한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해 진보성향 교원단체인 전교조가 반기를 든 가운데, 서울이 이보다 앞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단 계획을 밝히자 현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교원수급과 시설확보, 2021수능 개편안 유예로 엇박자를 이루게 된 2015개정교육과정과 평가체제 등이 난점으로 제시됐다. 전교조는 ▲학교와 교사에게 과목 개설권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학년별 교육과정을 폐지해 사실상 학년제가 폐지되는 것인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위해 학급은 사실상 해체되는 것인지 등 선결과제를 지적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고교학점제는 중등교육 전체의 틀을 바꾼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돼서는 안 된다”며 “하다못해 인근학교와 연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학생 안전문제 등 합의되지 못한 사안들이 즐비하다”고 꼬집었다. 

<혁신학교 200개 확대.. 학력미달 논란 불구 ‘밀어붙이기’>
올해 서울지역 초중고 혁신학교가 200곳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초등학교 120곳, 중학교 34곳, 고등학교 14곳 등 168곳에서 32곳을 추가하기로 했다. 서울 내 전체 초중고교 1208곳의 약 15%가 혁신학교가 되는 셈이다. 혁신학교는 학급당 학생수 25명~30명으로 운영되며 학년당 5학급 이내 ‘작은 학교’ 운영으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다. 

혁신학교 가운데 고교에서 기초학력미달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조 교육감이 밀어붙이기가 재현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곽상도(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혁신학교 학업성취수준’ 자료에 따르면 기초학력미달에 해당하는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에 달했다. 전국 고교 평균이 4.5%에 그친 데 비하면 학력저하 현상이 뚜렷하다. 2015학년 혁신학교 기초학력미달비율은 7.9%, 전국 평균은 4.2%였던 데서 격차가 심화돼 우려를 자아냈다. 

조 교육감이 이 같은 현장의 우려를 의식한 듯 혁신학교의 학력저하 문제를 옹호하려 했지만 도리어 비난여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10월 국정감사 전 서울교육청은 ‘혁신고, 성적향상 정도 자율고보다 높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자아존중감 자기통제력 등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담았다. 하지만 혁신고의 학업성취도를 자공고와 자사고를 합한 개념인 자율고와 비교하는 ‘꼼수’가 드러나면서 궁색한 옹호에 그쳤다. 서울지역 자공고는 교육소외지역 위주로 지정돼 일반고 평균보다 취약한 편이다. 학교의 노력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지표인 학교향상도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한 학교가 2014년 8개교, 2015년 9개교로 늘어나더니 2016년에는 모든 학교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장의 우려에도 조 교육감이 혁신학교 확대를 밀어붙일 수 있는 데는 국정과제라는 배경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0대 국정과제 혁신학교 확대를 제안하면서 힘을 얻었다. 진보성향 이재정 교육감은 지난달 경기 내 혁신학교 100개교를 신규지정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하윤수 회장은 지난 7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성과를 일반화해서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하 회장은 “일부 교육과정 다양화 등 교육적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행방법과 성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면서 “(2014년 기준)서울 관내 혁신고 10곳 중 8곳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교향상도 마이너스 수치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중학교 22곳, ‘객관식 시험 폐지’>
서울 중학교 22곳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객관식 시험을 없애고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과정중심 평가’를 도입한다. 22개교를 ‘과정중심 평가 선도학교’로 지정학교 학교당 1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조 교육감은 “초중고 평가에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을 포함한 평가혁신 방안 추진을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박사에게 연구를 맡겼는데 다음달 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IB는 국제표준교육과정으로 국제적으로 인증된 고교 교육과정이다. IB 교육과정의 핵심은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논술 토론형 학습방식이다. 제주교육청이 국내 공립학교 최초로 IB교육과정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관심이 모아졌다.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가 아닌 국내 고교 중에선 경기외고 단 1곳에서만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공교육에 IB과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다만 IB는 국제인증이 필요하고 영어가 아닌 모국어를 활용할 경우 IB본부와 국가차원의 협약이 필요하다는 등 현실적 문제점이 적지 않다. 지난달 열린 제주교육 심포지엄에서도 이 같은 비판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대정고 우옥희 교장은 “IB DP를 공교육에 도입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라며 “공교육에 왜 IB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하는지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교육 관계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B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영어능력을 갖춘 학생 자원 확보가 가능할지, IB과정을 필요로 하는 외국대학 진학희망학생은 얼마나 될지, IB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했을 때 학생모집이 가능할지, IB과정을 원하지 않는 지역 학생들의 고교 진학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사고 ‘선발권 무력화’ 완전추점제 도입 검토 중>
업무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자사고 학생선발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완전추첨제’ 도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관계자는 “완전추첨제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해 법률적 검토와 도입 후 효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며 “3월 발표 예정인 2019학년 고입전형 기본계획에서 도입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고입 시기를 후기로 바꾸는 고입 동시실시에 대한 고교 현장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 교육감의 완전추첨제 발언은 혼란만 야기하는 섣부른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고입 동시실시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자사고측은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상곤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가 초중등 교육권한을 교육감에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조 교육감의 ‘독주’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졌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지난 달 김 부총리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필요한 교육부의 동의 절차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교육자치 정책 로드맵’을 심의 의결했다. 

교육계에서는 고교체제가 지역 교육감 성향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발하고 있다. 한 교육시민단체 대표는 “교육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정/취소 권한을 넘겨주면 대체로 진보교육감이 수장인 지역에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사라질 것이고 보수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유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결구 교육감의 의지나 성향에 따라 고교교육의 지역별 불균형이 발생하는 꼴이 될 텐데 교육부가 이런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유지하는 지역으로의 쏠림현상을 부작용으로 지적하는 시선도 있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정/취소 권한 이양이 실현될 경우 많은 학생들이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존재하는 지역으로 이탈할 수 있다”면서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구성원이나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반발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교육감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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