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외고 최초이후 국내 12개교 도입 "선결과제 연구 선행돼야"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제주에서 공립학교 최초로 세계 공통 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가 도입된다.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 IBO가 주관하는 IB교육과정은 논술과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특징이다. 수업 평가 기록 일체화 교육과정으로 현재 교육부에서 강조하는 과정중심평각의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교육청은 4일 “제주도의 공립 초중고교에 IB 커리큘럼을 도입하기로 하고 도입방안 등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제주교육청은 지난 1~2일 제주한라대에서 ‘평가혁신으로 미래를 새롭게!’라는 주제로 2017 제주교육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의 IB 교육과정 적용 가능성을 논의했다. 일본국제교육센터 대표인 이쿠코 츠보야 뉴우에루 IB 일본대사를 강연자로 초청해 ‘IB 교육과정의 일본 도입 사례’에 대해 소개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직접 자료를 조사하면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다. 모국어와 외국어 수학 과학 인문사회 예술 등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직접 심화와 표준 과정을 고를 수 있다.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IB 인증서(diploma)를 받게 된다. 해외에선 IBDP의 교육과정 이수를 통해 획득한 점수와 디플로마 자체가 대학 입학 전형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공교육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에 대비한 세계 수준의 교육과정을 반기면서도 공교육에 정착하기 위해선 세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제주에서 공립학교 최초로 세계 공통 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가 도입된다.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 IBO가 주관하는 IB교육과정은 논술과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특징이다. 수업 평가 기록 일체화 교육과정으로 현재 교육부에서 강조하는 과정중심평각의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제주 공립학교, IB 도입 가능성은?>
국제표준교육과정인 IB DP(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me, IB과정)는 전 세계 147개국 3700여 개 학교가 도입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국제적으로 인증된 고교 교육과정이다. 해외 거주 글로벌 전문가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가 설립 운영됐으나 국제통용이 가능한 교육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대학진학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국가와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학교에 통용되는 공통된 표준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요구에서 출발했다. 공통의 커리큘럼과 표준화된 평가기준을 공유함으로써 지역과 국가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고 인정되는 교육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IB는 엄격한 인증과정을 통해 우수학교를 선별, 인증시스템을 부여하고 있다. IB교육과정을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후보학교로 등록한 후 3년에서 5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학교시설, 교원, 재단, 행정체제, 예산투명성, 학부모와의 관계 등 다방면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검증을 통과한 학교들은 IB World School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으며 매 5년마다 지속적인 검사를 통해 인증을 재갱신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IB인증을 받은 학교는 2017년 현재 전 세계 152개국 4541개 학교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1980년 첫 IB교육과정이 도입된 후 2017년 현재 12개 학교에서 IB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IB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는 학교는 제주 국제영어도시 내에 개교한 NLCS 제주와 브랭섬홀 아시아를 포함해 국내 학교에서는 유일하게 경기외고가 IB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경기외고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가 아닌 유일하게 국내학교로서 IB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기외고는 2010년부터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의 인가를 획득해 영어국제반을 대상으로 IB디플로마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 제주 공립학교에 IB과정이 도입되면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공교육 사례가 된다. 교육청 관계자는 “연구용역은 내년 2월쯤 완료될 예정”이라며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주지역에 맞는 도입지침을 만들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도내 IB교육과정을 실시하는 시범학교를 운영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교육에 IB교육과정 도입을 선도한 이쿠코 IB 일본대사는 “교육은 미래를 바꾸는 힘이 있다”면서 “경제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한국도 IB 교육과정을 국제학교에서만 운영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미권 상위대학에서도 IB 졸업생이 일반고 졸업생보다 합격률이 높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IB는 전과목이 논술형이지만 50여년 간 채점 공정성이 검증된 공신력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국제 바칼로레아(IB)의 목표는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탐구심이 강하고, 명석하며 배려심이 풍부한 젊은이를 길러내는 것도 목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2013년 도입이 결정된 IB과정의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고자 대입에서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 IB과정만으로도 입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올해 3월 기준 42개교의 공립학교가 IB인증을 완료했고 인증을 기다리는 후보학교들까지 더하면 전체 105개교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내년까지 IB 인증 신청 공립학교를 2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쿠코 IB 일본대사는 “한국에 IB과정으로 도입하려면 먼저 한국 교육당국이 각급학교, 국제기구와 협력해 IB교육과정을 적용하고 그에 맞는 평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IB 전 과정을 자국어로 번역해 원하는 교사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돋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면서 “일본의 IB도입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입시험뿐만 아니라 공교육의 수업과 학습 방식을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현실적 문제점 산적.. 선행연구 우선해야>
토론자로 참석한 대정고 우옥희 교장은 IB과정의 공교육 도입 가능성을 중심으로 의견을 펼쳤다. 우 교장은 “현재 일반고에선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하지 않는 수업, 시험을 위한 수업, 교과서 위주 수업, 분절된 이수 과목 수가 많고 내용이 중복된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창의적 체험활동이 있지만 형식적 행정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다. 교과와 비교과 시간도 나뉘어 있긴 하나 물리적 시간의 충족 여부만 확인할 뿐 교육활동의 질에 대한 관리는 미흡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IB DP는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른 차별화된 수업이 특징”이라며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을 위한 별도의 교원조직과 예산확보가 관건이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른 차별화된 수업을 위해선 수업의 변화와 질을 관리하기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 교사의 수업과 평가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IB과정을 적용할 경우 예상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먼저 IB과정을 이수하고자 하는 학생을 어떻게 확보하고 선발할 것인가 하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IB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영어능력을 갖춘 학생 자원 확보가 가능할지, IB과정을 필요로 하는 외국대학 진학희망학생은 얼마나 될지, IB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했을 때 학생모집이 가능할지, IB과정을 원하지 않는 지역 학생들의 고교 진학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IB과정을 도입했을 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은 어떻게 할 것인지 ▲IB과정 중도 탈락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교사 확보와 행정조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IB과정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은 어떻게 부담할 것이며 안정적 재원확보는 가능한지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우 교장은 “IB DP를 공교육에 도입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라며 “공교육에 왜 IB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하는지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교육 관계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B DP의 공교육 도입 가능성은 높지만 실현을 위해선 선결과제가 많아 국가 교육과정의 질 관리를 통안 대안탐색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국어로 IB DP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IBO와 협약하고 선행연구를 거쳐 예상되는 문제점의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생과 학부모, 교원, 지역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B, 2015개정교육과정과 연계방안>
심포지엄에 이어 2일 오후 제주교육청에서 열린 ‘IB 교육과정 및 평가제도의 제주교육 적용방안: 과정중심 평가 및 고교학점제 연계를 중심으로’ 세미나에는 충남삼성고 박하식 교장이 참석했다. 박 교장은 국내 고교에 IB교육과정인 IB DP를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박 교장은 “다른 분야에선 글로벌을 많이 강조하지만 교육만큼은 글로벌에 대한 논의가 늦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2010년 경기외고에서 처음으로 IB 인증을 받았다. 처음 인증을 받았을 때는 경기외고를 시작으로 다른 학교까지 확산됐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며 “생각과는 다르게 7년 동안 IB에 대한 논의가 없다가 드디어 IB가 공론화됐다는 사실이 반갑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만 박 교장 역시 IB교육과정을 국내에 정착하기 위해선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IB도입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한다기보다는 개별학교가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지만 선택은 개별학교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IB기관과 협약을 맺고 IB시험뿐만 아니라 커리큘럼까지 일본어로 개발한 상태다. "한국이 한국에 맞춘 IB교육과정을 만들기 전까진 영어로 진행되는 IB교육과정은 외고가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도 확보해야 하지만 교육과정을 수행할 학생들의 영어능력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2015개정교육과정과 IB의 연계 방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먼저 IB과목이 국내 고교의 선택과목으로 편성될 수 있도록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서 IBDP운영학교에서 사용하는 IB교재를 교과서로 승인해야 한다. 국내 고교 과목은 학기 중심 5단위를 기본으로 하나 IBDP에서는 한 과목은 2년에 마치도록 돼 있어 과목 단위수도 조정이 필요하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이 두 가지를 고려해 IBDP과목을 국내고교에서 선택과목화할 수 있도록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박 교장의 제안이다. 

IB교육과정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선 대학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IB학위는 이 학생이 대학에서 수업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인증서 역할”이라며 “IB가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국내대학에서 IBDP를 위한 전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IB를 이수한 학생들을 위한 전형이 마련돼 있다”며 IB교육과정이 공교육에 정착하기 위해선 대학 차원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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