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도입, 부작용 우려'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2019학년부터 서울 내 모든 일반고와 자공고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다. 대학처럼 고교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기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당장 내년부터 선도학교 20여 개교를 운영하고 교육과정을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주일 전 교육부가 공개한 2022년 고교학점제 도입계획이 전교조 등 최대 교원단체의 뭇매를 맞는 가운데 '서울형 고교학점제'의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다. 

고교학점제의 서울형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교내에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희망과목을 개설한 주변학교, 온라인 강의를 활용하는 교육과정이다.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진로맞춤형 교육으로 학생성장을 지원하겠단 취지다. 이미 정부가 2022년까지 고교학점제 전면도입을 선언했지만 이보다 한 발 앞서 대응하겠단 의도가 엿보인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진보성향 교원단체인 전교조도 반기를 든 가운데 조 교육감의 다소 섣부르게 보이는 대응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교육계는 2022년 고교학점제 도입틀 두고 기본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부내용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원수급과 시설확보, 2021수능 개편안 유예로 엇박자를 이루게 된 2015개정교육과정과 평가체제도 장기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2019학년부터 서울 내 모든 일반고와 자공고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다. 대학처럼 고교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일주일 전 교육부가 공개한 2022년 고교학점제 도입계획이 전교조 등 최대 교원단체의 뭇매를 맞는 가운데 '서울형 고교학점제'의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2019학년 서울지역 모든 일반고, 서울형 고교학점제 도입>
내후년부터 서울지역 모든 일반고와 자공고에 개방-연합형 선택 교육과정을 전면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조 교육감은 “내년에는 서울 내 일반고 성장을 선도하는 구심점 역할을 위해 개방/연합형 선도학교를 20곳 내외로 운영하고 2019학년에는 자율고를 포함한 모든 일반고에서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이 안착되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2022년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개방-연합형 선택 교육과정을 확대해 정부와 함께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년부터 선도학교를 지정해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개방-연합형 선택 교육과정 선도학교는 20개교 내외로 운영한다. 관내 11개 교육지원청별로 1~2개교를 선정할 예정이다. 선도학교 지원금은 학교당 3000만원이다.  

선도학교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뉜다.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선도학교는 지역이나 학교 여건에 맞게 특색 있는 교육과정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연합형 선택 교육과정 선도학교는 학교 간 협력과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한 학교에서 개방형과 연합형 교육과정을 모두 운영할 수도 있다. 

교육과정 자체도 다양화한다. 미래기술 영역의 거점형 선택 교육과정을 신설해 운영하도록 할 예정이다. 서울 내 특성화고, 산업정보학교, 문화예술정보학교 등을 미래기술 거점학교로 지정, 일반고 학생들이 로봇 드론 3D프린팅 코딩 등 학습분야와 내용을 확대한다. 이와 함께 개포디지털혁신파크 디지털대장간 국립과천과학관 다시세운상가 등 사회교육자원을 활용해 프로젝트형 수업을 위한 연합형 선택 교육과정 모형도 개발한다.

쌍방향으로 실시간 토의수업이 가능한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도 추진한다. 교사와 18명 내외 학생들이 화상수업을 하는 방식이다. ‘강의실 없는 대학’으로 불리는 미국 미네르바스쿨의 수업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양재고(과학사/과학철학)와 한서고(국제경제)를 거점으로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기존에 운영하던 연합형 선택 교육과정은 운영 학교 수를 늘린다. 희망학생은 있지만 개별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을 주변 학교들이 연합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현재 8개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고 내년부터는 관내 모든 지원청인 11개 지원청에서 운영하기로 했다. 

현장에선 개방-연합형 교육과정 도입으로 늘어날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육청은 단위학교 수강신청과 시간표 프로그램을 개발해 행정업무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추진해 학생 교과지도에 대한 고민도 덜어줄 계획이다. 학생 선택과목 수요조사를 거쳐 단위학교 교원으로 운영 가능한 과목을 우선 개설하되 추가적으로 필요한 강사 현황을 전수 조사/분석해 강사 인력풀을 갖춘다. 

대학처럼 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공강시간 활용방안도 제시했다. ‘공간배움’(가칭)을 구축, 수업과 다음 수업 사이 빈 시간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학습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도 가능한 복합/교육공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공강이나 공간활용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 학교에는 3000만원 내외의 예산도 지원한다. 학교구성원의 의식을 개선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컨설팅 연수 워크숍 등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2기 계획을 통해 그간 진행했던 교육청의 교육과정 혁신노력에 더해 학교현장의 요구에 따른 맞춤형 지원책을 제공함으로써 교육과정의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이제 막 출발한 고교학점제를 선도적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아니라던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전면도입 가능할까>
서울청은 지난 7월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 확대를 예고했다. 다만 당시에는 고교학점제와 차별점을 분명히 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개방형 교육과정은 2015개정교육과정에 맞춰 진행하고 있던 제도다. 고교학점제를 염두에 두고 개방형 교육과정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 개방형은 고교학점제보다는 좁은 개념이다. 기존 문/이과계열로 구분돼있던 과목 선택을 벗어나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학점제는 학점 이수기준도 있어야 하고, 재수강개념도 생기는 등 좀 더 넓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개방형 교육과정은 자유로운 과목 선택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고 개별 교육과정을 형성해가는 방식을 뜻한다. 2015개정교육과정의 적용 기반을 마련하고 특정 진로과정에 제한받지 않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개방형 교육과정은 ‘부분개방형’과 ‘완전개방형’으로 나뉜다. 부분개방형은 학교의 지정과 학생의 선택이 혼용되는 형태인 반면 전면개방형은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확대한 유형이다. 

당시 교육계 전문가들은 개방형 교육과정 도입으로 고교학점제 도입의 초석이 마련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제도다. 문 대통령이 공약집을 통해 제시한 도입 방안은 유형별/단계별 확대다. ▲1단계 학교 내 개인맞춤형 선택 교육과정 ▲2단계 학교간 연합 교육과정 운영 ▲3단계 지역사회연계형 교육과정 운영 ▲4단계 온라인 기반형 교육과정으로 확대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고교학점제 추진 계획이 공개되자 서울청을 비롯 경기 세종 등 각 시/도교육청도 고교학점제 도입 관련 TF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고교학점제나 개방형 교육과정 모두 교원수급이 문제로 꼽힌다. 교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만 예산 확보 방안은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교사 임금이 계속 상승하고,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기조에 따라 많은 수의 교사를 정규직으로 충원할 경우 필요한 재정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원 수요에 대한 면밀한 예측도 필요하다. 명확한 수요 예측 없이 무작정 확대할 경우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한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가 잘못된 수요예측의 예시로 꼽힌다. 2012년 6100명이었던 강사는 불과 4년만인 2016년 37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인프라 구축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교과교실 등 시설 증축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연구학교에서 시설 증축을 필요로 하는 경우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소요액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정 실효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선택권을 준다 하더라도 결국 대입과 연관된 국/영/수 기초과목을 중심으로 수강하지 않겠냐는 우려다. 2015개정교육과정에 발맞춰 수능 절대평가 전환도 논의됐지만 2021수능 개편도 ‘졸속’이란 평과 함께 유예된 상황이다. 수능과 내신 평가체제에 변화가 없는 한 학생들은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더라도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한 과목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소인수과목의 경우 인근학교와 연합을 추진하겠단 계획이지만 학교 간 이동 시 학생들의 안전문제를 비롯해 '인근' 학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교조 '아이디어 수준 고교학점제, 세부문제 합의 필요'>
교육부는 일주일 전인 지난 달 27일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2022년 고교학점제 도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학점제 도입에 필요한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방안’을 연구하는 정책연구학교 60개교를 3년간 운영하기로 했다. 일반계고와 직업계고 각 30개교다. 하지만 전교조가 “기본 개념에 대한 합의도 없이 전면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고교학점제 도입을 전면 비판하고 나서면서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교육계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는 교원 수급, 시설 확보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섣부른 도입이라는 입장이다. 관련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2022학년 도입을 못박았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수능 내신 절대평가제 도입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장기 과제로 넘겨 실현 가능성을 따져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교육과정이나 교육정책들에 대한 평가나 다른 교육제도와의 전반적 연관성에 대한 검토 없이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해 학교현장에 일방적으로 내리매기는 방식이 반복돼왔다”며 “새로운 정책은 기존의 학교교육과 따로 놀면서 학교현장의 혼란과 부담만 가중시켜왔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27일 논평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연구학교는 2022년 전체 고교에 시행하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에, 전면적 확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시범학교의 성격보다는 고교학점제 연착륙을 위한 선도학교의 성격이 강하다”고 짚었다. 

특히 고교학점제는 중등교육 전체의 틀을 바꾼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출발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학교와 교사에게 과목 개설권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학년별 교육과정을 폐지해 사실상 학년제가 폐지되는 것인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위해 학급은 사실상 해체되는 것인지 ▲다른 학교와 사회기관에서는 학점 이수가 가능한지 ▲미이수, 낙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인지 ▲내신평가는 절대평가-교사별 평가를 하는 것인지, 그럴 경우 현재 대입제도와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지 ▲일반학교에도 직업과목이 개설되는지 등에 대해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습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현재 수능 중심 대입 경쟁이 고교 교육을 지배하면서 수능에서 비중이 높은 영어/수학에 대해 과도한 몰입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여전히 국영수 중심의 학습을 기본으로 하는 바탕 위에 진로 관련 과목을 집중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편식 교육은 더욱 심화된다는 비판이다. 

2015교육과정에서 교과군 별 필수 이수단위가 매우 낮은 점도 편식 현상을 부추길 것으로 봤다. 진로/적성 교육 강화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의 특정 교과군의 집중 이수를 장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교육부의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외에도 고교학점제는 비정규 강사의 양산, 학급 공동체 약화, 입시와의 부조화, 학사운영 어려움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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