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수능을 하루 앞둔 지난달 15일, 1978년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규모는 지난해 경주 지진보다 작지만 발생 깊이가 경주보다 얕아 체감 위력은 더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포항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과 서울에서도 진동을 느낄 정도였으니 과장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기록적인 지진에 눈 돌릴 새도 없이 교육계 모든 관심은 다음 날 수능에 쏠렸습니다. 정시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수능최저를 적용하는 수시전형까지 고려하면 상당수 수험생들의 당락이 그 하루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24년 만에 처음으로 수능이 연기됐습니다. 갑작스런 연기로 수능 이후 계획된 일정들이 모두 틀어지면서 혼란이 커졌습니다. 16일 휴교였던 학교들은 정상 등교를 하는 것인지, 학교에선 남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전국 각지에 배부된 수능 시험지는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수능 전날이라고 책과 문제집을 모두 버린 학생들은 물론, 사전에 계획되지 않아 조달이 어려운 고3 학생들의 급식문제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엉켜버렸습니다.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교사와 교수들도 일주일 더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대학도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매주 잡혀있던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자니 계획과 달리 ‘수능 이전’ 논술이 되고, 일주일 미루자니 그 다음 주에 잡혀있던 다른 대학 논술일정과 중복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수능이 밀리면서 수능 성적 발표일과 정시 원서접수까지 모두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는 출판업계와 여행업계까지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출판사는 수능 기출문제집 인쇄계약에, 여행사와 항공사는 수능 이후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비용을 헤아리자면 16일이었던 수능이 23일로 미뤄진다는 사실 하나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 셈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였지만 포항학생들 때문에 왜 몇 십만 수험생이 피해봐야 하냐는 말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기적인 민낯이 오래 전 한 고교 교실에서 봤던 게시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안내돼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여느 게시판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 눈높이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아주 낮게 걸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호기심이 생겨 교사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불편함과 불가능함의 차이’를 가르치고 싶었더라고 말입니다. 그 반에는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해 보통 학생들의 허리에도 못 미치는 작은 키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낮은 높이에 게시판을 걸어놓으면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이 허리를 굽혀야 하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보통 눈높이에 놓였더라면 그 학생은 아예 게시판을 보지도 쓰지도 못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한 학생에겐 불가능한 일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초유의 수능 연기로 당황한 마음에 눈물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자녀를 봐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좋지 않았을 겁니다. 학교도 대학도 이래저래 감수해야 할 불편과 비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연기를 결정한 건 포항 학생들에게 곳곳에 금이 가 부서져버린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불편을 감수한 학생과 어른들보다도 수능 전날 집에 가지도 못하고 냉기가 도는 체육관에서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여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었을 테니까요. 누구보다 놀랐을 고3들이지만 이번 기회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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