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Ⅱ 응시자 2012년 23.5%에서 지난해 5.6%로 하락.. '올해 접수자 1.4%'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서울대 학부생 교육, 특히 공학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서울대 내부에서 나왔다. 13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연 ‘서울대 교육,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세미나에선 서울대 학부교육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유재준 교수는 학생들이 입시제도에 맞춰 중고교에서 입시에 유리한 교과만 선택해 배우는 현상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수능에서 대학 공학교육에 필수 교과목인 물리Ⅱ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전국에서 4000여 명으로 4년제대학 전체 공대 정원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공계열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는 서울대만이 아닌 전국 대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들은 최근 고교 때 물리Ⅱ를 배우지 못한 학생이나 수학과학 수준이 뒤처지는 학생을 위해 예비과정이나 기초과목을 개설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2012수능에서 전체 응시인원 대비 23.5%를 차지했던 과탐Ⅱ 응시자는 매년 큰 폭으로 축소돼 가장 최근인 지난해 수능에선 5.6%까지 떨어졌다. 올해 수능 원서접수 결과 물리Ⅱ 접수비율은 1.4%까지 하락하면서 사실상 고사 직전에 놓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리뿐 아니라 화학Ⅱ도 1.6%로 1%대를 기록했으며 생명과학Ⅱ는 4.0%, 지구과학Ⅱ는 4.3%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6월 공개한 2021대입 교과이수기준에서 과탐Ⅱ 과목 이수를 권장했다. 심화되는 과탐Ⅱ 기피현상으로 인해 이공계열 신입생들이 대학 수업을 소화하는 데 난항을 겪는 데 따른 것이다. 이전부터 과탐Ⅱ 응시를 권장해왔지만 올해 명문화한 셈이다. 반면 과탐Ⅱ 응시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압박으로 과탐Ⅱ+Ⅱ 조합에 대한 가산점을 폐지하기도 했다. 과탐Ⅱ는 과탐Ⅰ에 비해 범위도 넓고 난이도도 높아 수험생들이 응시를 꺼릴뿐 아니라 응시인원이 적어 응시인원에 따라 등급별 인원이 결정되는 현 상대평가 체제에선 불리하게 작용한다.  

서울대 학부생 교육, 특히 공학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서울대 내부에서 나왔다. 13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연 ‘서울대 교육,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 세미나에선 서울대 학부교육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서울대 2021 교과이수기준.. 과탐Ⅱ 이수 권장>
서울대는 지난 6월 2021대입에 적용되는 ‘교과 이수기준’을 공개했다. 당장 내년 고1부터 도입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비해 수요자 배려 차원에서 사전예고를 한 셈이다. 개정 교육과정 적용과 관련해 대학이 먼저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원자격이나 수능최저학력기준과 성격이 다른 교과이수기준은 지키지 않더라도 지원이나 합격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서류평가에 반영되고 고교에서 배워야 할 최소수준을 제시한 것이긴 하나 사실상 ‘필요조건’으로 여겨진다.  

이 가운데 이수기준은 아니지만 “진로희망에 따라 과학Ⅱ 과목 이수를 권장함”이란 문구가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 과학Ⅱ 이수 권장은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를 감안한 조치다. 교육계에서는 수능 과탐Ⅱ 응시 기피현상으로 이공계 진학생들이 대학수업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과학Ⅱ 이수를 권장해왔다. 이공계에서 수학하기 위해 과학Ⅱ 지식이 필수란 판단에서다.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 자연계열이나 정시에서 과탐Ⅱ 1과목 필수이수를 설정한 것은 서울대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였다. 

올해 초 서울대에서 열린 ‘고교-대학 연계 샤 교육포럼’에서도 공학교육의 위기가 지적됐다. 샤 교육포럼에 참석한 유 교수는 “지난해 수능에서 과탐을 선택한 학생 24만6545명 가운데 물리Ⅰ 과목을 선택한 학생은 5만5415명,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463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지난해 4년제 일반대학 자연계열 정원 약 15만 명에 비해 턱 없이 적은 수준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려면 고교에서 물리Ⅱ의 개념을 익히는 것인 필수인데 입시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큰 문제는 과목 편중이 대학 신입생들의 학력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공계열 교수들이 최근 10년 간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토로하고 있다”며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수학 과학 수준이 처지는 학생을 위한 신입생 예비과정이나 기초과목을 개설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021 수능 개편안에서 등장한 '과탐Ⅱ 폐지'>
무수한 논란을 몰고 온 탓에 결국 폐기된 교육부의 ‘2021 수능개편 시안’에선 사실상 과탐Ⅱ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당시 교육부가 제시한 1안 ‘일부 절대평가’와 2안 ‘전 과목 절대평가’ 모두 과탐Ⅱ 폐지를 전제했다. 발표를 맡은 교육부 박춘란 차관은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의 수능 출제범위는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까지”라며 “과학Ⅱ는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돼있어 교육과정 내용에 부합하도록 수능 출제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과탐Ⅱ가 수능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한 긍정 의견도 존재한다. 한 고교 교사는 “그간 과탐Ⅱ로 인해 학생들의 부담이 컸다. 서울대 지원을 위해서는 과탐Ⅱ 응시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과탐Ⅱ 응시 시 안정적인 점수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기에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물리의 경우 몇 년 새 응시자가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사실상 ‘회피과목’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부작용들을 고려하면 수능에서 과탐Ⅱ를 제외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우려되는 ‘의대 쏠림 현상 강화’에 더해 교육적 측면에서 학생들의 기피 현상만 심화되리란 예측 때문이다. 박 차관도 브리핑에서 “수능에서 과학Ⅱ가 제외되면 과학교육이 굉장히 위축된다”며 “한국 과학교육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금도 수험생들이 과탐Ⅱ를 기피하는 탓에 대학에 들어와 제대로 된 강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과정의 흐름 상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과탐Ⅱ 개념들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조차도 이 같은 학생들을 위한 기초강의를 개설한 것으로 안다”며 “우리나라 교육은 고교교육과 대학입시 간 관련성이 매우 크다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나서 재정을 지원해가며 대입전형 바로세우기를 통해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실현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대입의 관문인 수능에서 과탐Ⅱ를 제외하는 것은 가뜩이나 많은 과탐Ⅱ 기피 학생들을 더욱 늘릴 여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과탐 Ⅱ+Ⅱ 조합 '가산점 폐지'>
서울대는 2018학년 전형안내에서 지난해 적용했던 과탐 Ⅱ+Ⅱ조합 가산점 폐지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과탐 Ⅱ+Ⅱ조합을 선택해 응시하더라도 더 이상 가산점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서울대 관계자는 “과탐 Ⅱ+Ⅱ 가산점을 폐지한 것이 맞다. 정시에서 Ⅱ+Ⅱ 응시자에게 더 이상 가산점은 주어지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심화과목인 Ⅱ를 2과목 응시했다는 점은 서류평가 등에서 감안할 생각이다. 입시를 떠나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Ⅱ+Ⅱ 조합을 선택한다는 것은 학업역량 고취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폐지한 Ⅱ+Ⅱ 가산점은 2014 입시가 치러진 2013년부터 준비해 지난해 처음 적용했던 제도다. 서울대는 2013년 과탐Ⅱ+Ⅱ 가산점을 향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뒤 2017학년을 적용 시점으로 공지했다. 지난해 서울대는 대입 주요사항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2013년부터 예고한 바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 탐구영역 과목을 ‘Ⅱ+Ⅱ’로 응시한 학생에게 모집단위별 수능 성적 1배수 점수 폭의 3%를 가산점으로 부여한다”고 발표하면서 기존 예고내용을 실현했다.  

수능에서 과탐은 8과목으로 구성돼있다.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4개과목이 각각 Ⅰ과 Ⅱ로 구분돼 Ⅰ과목이 4개, Ⅱ과목이 4개다. 과탐Ⅱ는 Ⅰ과목에 비해 범위가 넓고 난이도도 높다. 일종의 심화과목인 셈이다. 서울대의 Ⅱ+Ⅱ 가산점 제도 신설은 심화과목인 과탐Ⅱ 응시를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고교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과탐Ⅱ를 어렵다는 이유로 수험생들이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려는 의도다.

대입에 대한 열망이 큰 사회구조 상 대입과 연계되지 않은 과목들은 수험생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현실이다. 때문에 서울대는 Ⅱ+Ⅱ 가산점을 적용한 2017학년 이전부터 일관되게 과탐Ⅱ 응시를 권장해왔다. 일례로 서울대 수능최저를 충족해야 하는 지균에서 과탐을 선택한 수험생이나, 서울대 정시에서 과탐을 선택한 수험생들은 서로 다른 분야의 Ⅰ+Ⅱ, Ⅱ+Ⅱ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지원 가능했다. 이는 올해 입시에서도 마찬가지다. Ⅰ+Ⅰ 조합인 수험생은 서울대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 또한 서울대는 1개 과목에만 몰입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동일 분야의 Ⅰ+Ⅱ도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화학Ⅰ+물리Ⅱ, 생명과학Ⅱ+지구과학Ⅱ와 같은 조합은 인정되나, 물리Ⅰ+물리Ⅱ와 같은 조합으론 지원할 수 없다. 

실제 과탐Ⅱ 응시자는 매년 감소 추세다. 2012학년 수능만 하더라도 과탐Ⅱ를 1개 과목이라도 응시한 인원은 전체 수능 응시인원 대비 23.5%(15만2597명) 수준이었으나 2013학년 25%(15만5627명), 2014학년 10.9%(6만6076명), 2015학년 8.3%(4만9237명), 2016학년 7%(4만1263명)로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급기야 가장 최근 치러진 2017학년 수능에서는 5.6%(3만872명)까지 떨어졌다. 과탐Ⅱ 1개과목 응시자와 2개과목 응시자에 대한 구분이 없기 때문에 실제 인원은 이보다 더 줄어든다. 

과탐Ⅱ에 대한 수험생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과탐Ⅰ까지 포함해 과탐Ⅰ과 과탐Ⅱ 중 1개 과목이라도 응시한 인원은 일시적인 감소를 제외하면 확연한 확대 추세다. 전체 수능응시인원 대비 과탐을 1개 과목이라도 응시한 인원 비율은 2012학년 36.6%(23만7589명)에서 2013학년 38.9%(24만1790명), 2014학년 38.9%(23만5946명), 2015학년 38.7%(23만377명), 2016학년 39.4%(23만729명), 2017학년 44.2%(24만3857명)로 늘고 있다. 일시적으로 0.2%p의 비율 감소를 보인 2015학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과탐 응시비율이 확대된 셈이다. 계속된 취업난으로 이공계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탐 응시인원 비율이 점차 높아진 반면 과탐Ⅱ 응시인원은 확연한 감소한 것이다. 

과탐Ⅱ 응시자 감소는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다양한 요인 중에서도 서울대를 제외하면 과탐Ⅱ를 필수 반영하는 대학이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과탐Ⅱ 응시를 요구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과탐Ⅱ 응시 없이도 지원 가능하도록 규정한 상황에서 응시자에 한해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울대 외에는 과탐Ⅱ를 응시하지 않아 지원 불가능한 상위대학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탐Ⅱ는 과탐Ⅰ 대비 학습부담도 크다. 심화과목인 만큼 학습범위가 넓고 난이도도 높다. 게다가 응시자가 줄어들면서 백분위/등급/표점에서 불리함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더욱 선택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평가원이 한 해 전 사례를 고려해 심혈을 기울인 2017수능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2016수능에서는 과탐Ⅱ 응시자들의 불이익이 뚜렷했다. 물리Ⅱ의 경우 만점을 받아도 백분위가 94에 불과했으며, 지구과학Ⅱ도 만점자 백분위가 96에 그쳤다. 물리는 2등급이 사라지는 현상까지 발생해 1문제라도 틀리면 3등급을 받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가뜩이나 요구되는 학습량이 많은 상황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까지 감내할 수험생은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과탐Ⅱ 응시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탐 Ⅱ+Ⅱ 인원도 많을 수 없는 상황이다. 평가원이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연계열 최상위 N수생들이 모여 있는 대성학원을 통해 Ⅱ+Ⅱ 조합생을 추산해 볼 수 있다. 올해 치러진 3월 모의고사에서 대성의 Ⅱ+Ⅱ 조합 수험생들은 극소수였다. 이영덕 대성학력평가연구소장은 “지난해 서울대 의대 합격생의 절반 가량이 대성학원 수험생일 만큼 상위권 수험생들이 많이 몰려있지만, Ⅱ+Ⅱ 조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3월 대성 모의고사를 치른 자연계열 수험생은 5648명, 그 중 Ⅱ+Ⅱ조합은 17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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