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휘문고 교장

대도시의 일반적 규모의 고교는 학년당 10개반씩 30개 반, 재적 학생은 1000여 명 안팎이다. 이런 규모 학교에는 교사 60명, 행정실 직원 5명, 공무직 5명, 식당 영양사와 조리원 등 10여 명의 비정규직까지 합쳐 대략 80명이 근무한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연간 500만원 내외여서 학교 예산은 대략 50억원 정도다. 예산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인건비다.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60~70%인 30억원에서 35억원 정도가 인건비로 나간다. 남은 15억원 내지 20억원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보건실이나 과학실 방송실 도서관 진학지도실 등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축제 체육대회 백일장 같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지원하며, 전기요금이나 상하수도요금, 전화나 인터넷 통신비 등을 내고 나면 남지 않는다. 교장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런 규모의 학교 회계에서 1억원은 대단히 큰돈이다. 만약 교장에게 학교 교육역량 강화와 학생의 학력 신장, 학부모만족도 제고를 위해 연간 1억원을 준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신동원 휘문고 교장

또 한 분 체육 선생님에게는 조깅 사이클 수영 유도 태권도 등 생존스포츠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것을 부탁드리겠다. 한강변에서 일반인이 뛰는 모습을 보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뛰는 폼이나 걷는 모습은 일반인과 완전히 다르다. 학생들에게 걷고 뛰는 자세를 바르게 훈련시켜, 1000미터 경기, 10km 단축 마라톤까지 마스터시켰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주먹구구로 배운 사이클, 초등학교 이후로 끊은 수영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고 싶다. 유도나 태권도 등 예를 중시하는 격투기를 가르쳐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건강하고 활력 있는 일상생활에서 용기 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늠름한 젊은이로 키우고 싶다.생존 교육을 시키고 싶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정원 외로 교사를 확보하는 것이다. 보통 10년 경력을 지닌 교사 연봉이 5000만원 정도다. 1억원이면 교사 두 명을 더 채용할 수 있다. 교사 한 명은 일주일에 16시간 내외 수업을 하면서 정규 동아리 1개, 자율동아리 1개를 지도할 수 있다. 한 명은 연극 선생님, 한 명은 체육 선생님을 모시고 싶다. 정규수업시간에 연극을 편성해 주당 2시간씩 수업을 진행하겠다. 한 시간은 반 별로 수업해 연말 반별 연극제를 준비하겠다. 한 반을 3개 조로 편성해 1조는 극본과 연출을 맡기고, 2조는 조명과 음악을 맡기고, 3조는 배우와 관객으로 참여하면서 창의력과 상상력 협업능력 공감능력 등을 키워주고 싶다. 한 시간은 두 개 반씩 묶어서 학생들이 여러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자신의 언어 습관을 교정하거나 발표력(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계발하겠다.

변화하는 미래 세계를 가르치고 싶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산업이 바뀌고, 자본주의 질서가 바뀌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학생들이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20년 뒤, 2037년 세상을 과연 예측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에는 과거 얘기만 있을 뿐, 미래 얘기는 몇 줄 되지 않는다. 정보통신과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변화의 속도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변화의 원리와 방향을 알려줘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 최첨단 분야에 있는 국내외 교수와 연구자, 개발자들을 영역별로 초빙하여 미래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교육을 시키고 싶다.

국공립 대학 교수의 강의료는 1시간에 30만원, 2시간에 45만원으로 규정돼 있다. 1억원이면 연간 대략 400시간이다. 고등학교에서 1단위는 17시간 수업이므로 23단위에 해당한다. 200개에 달하는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펼쳐 놓을 수 있다. 5개 반을 편성해 매주 2시간씩 선택 수업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전교생의 20%인 200여 명의 학생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강연 34개, 시간으로는 68시간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고교에서는 1년 동안 일반적으로 68단위를 이수하고, 3년간 204단위를 이수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1년간 72단위를 이수하고, 3년간 216단위를 이수하게 된다. 학생들은 3년 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미래 세계에 대한 150여 개 주제의 강연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풍성하게,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다가올 최첨단 미래 세계에 유능하게 적응하기 위해 학생 개인의 특기나 진로를 계발하자는 얘기다.

학습 부진아를 적극적으로 지도하겠다.
시간제 교사나 대학생을 채용해 학습 부진아를 돕고 싶다. 미래세계의 특징 중 하나가 개인의 지적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초, 중등 단계에서 학습 부진이 생기면 성장하면서 바로 빈부의 격차로 이어지고 대물림이 되기 쉽다. 학교에서 학습 부진아를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빈부에 의한 사회 양극화를 방지하고, 사회 갈등을 완화해 장기적으로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학습부진아는 초등학교 고학년 단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중학교에서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하고 고교에 입학하는 비율은 전체 학생의 10%에서 20%에 달한다. 고교 단계의 학습부진아들은 지적 장애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가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고교 단계에서 이를 방기하는 것은 사회 부적응아를 양산하는 일이다. 교장의 양심과 윤리, 책임에 치명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시간제 교사나 대학생을 채용해 학습부진아를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싶다. 대학생은 1시간에 1만5000원, 시간제 교사는 2만5000원 선이다. 1억원이면 연간 5000시간의 강사료다. 고등학교는 연간 34주 수업을 하므로 5000시간이면 주당 147시간을 운영할 수 있다. 30개 반을 운영한다면 주당 4시간 수업이 가능하다. 한 반당 6명씩 배정하면 전교생의 18%에 해당하는 180명의 학생에게 주당 4시간씩 추가로 보충 수업을 해줄 수 있다. 그렇게 하고도 약 1800만 원 정도 남는다. 남은 돈은 학습부진아용 특별교재 개발, 교원 연수비로 활용할 것이다. 학습 부진아를 과목에 따라, 학습 부진 정도와 수준에 따라, 학습 부진의 원인에 따라 6명 단위로 조를 편성하고, 각 조별로 적절한 처방을 내려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적극적으로 학습 부진을 치료해 주고 싶다.

현재 서울 시내에 39개의 사립초등학교가 있다. 매년 입학정원이 4000명 정도이므로, 재학생 수는 2만명 선이다. 일반적으로 초등학생 한 명을 교육시키는데 정부 예산이 연간 500만원 정도 소요된다. 사립초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학부모들이 수업료를 모두 부담하면서 연간 1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절감한다. 서울시내 전국단위 자사고 1개교, 광역단위 자사고 22개교, 사립외국어고 6개교 등 29개교도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수익자가 교육비를 모두 부담한다. 이들 학교도 100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절감하고 있는 셈이다.

사립초와 자사고가 절감하는 예산이 2000억원인데, 서울시내에 유치원 880개, 초등학교 603개, 중학교 384개, 고등학교 320개 등 2187개의 교육기관이 있다. 이들 학교의 교장에게 학교 규모와 여건에 따라 1억원 내외의 예산을 줄 수 있는 규모다. 교육력을 제고 할 수 있는 2000개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키거나, 고교까지 수업료를 면제하거나,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은 교육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무관하다. 정부 교육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바꿀 때가 됐다. 지금 학부모들은 공짜보다는 건강한 학교,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 공부하는 학교, 행복한 학교, 뒤처진 아이가 없는 학교를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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