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기 남해해성고 전 교장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 없이 입시 대비가 정말 가능한가요?” 필자가 우리 학교 입학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우리나라 남단 남해군에서도, 하루에 버스도 몇 대 오가지 않는 면 소재지에서 약 2Km쯤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의 의구심이 클 수밖에 없다. 학원이나 과외를 ‘끊어’ 본 적 없는 자녀가 과연 이 시골 고교에서 자기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며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 과연 시골 교사들이 강남의 일명 ‘일타’ 강사만큼 족집게 식으로 학생들에게 수능에 최적화된 내용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 그 중에서도 고등학생이거나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 준비를 위해 당연히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학원에서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을 하더라도, 다들 다니니까, 내 아이만 안 다니면 불안하니까 부화뇌동 격으로 사교육 시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학교는 바꾸기 힘들어도 학원이나 과외는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꾸기 쉽고 언제든 개방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을 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최성기 남해해성고 전 교장

우리 학교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근무해 온 학교는 주변에 학원 하나 없는, 그야말로 산과 논, 밭, 바다뿐인 농어촌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경상남도 대학진학률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명문 학교로서 거듭나고 있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이름 없는, 그냥 흔한 농어촌 고교였고,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지역민 수가 줄어들며 폐교 위기에까지 갔지만 교직원과 학부모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학교 살리기 방안을 모색하다 전국 단위 학생 모집이 가능한 농어촌 자율학교를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승인을 받았다.학원숙제 하느라 학교숙제를 해 가지 않고,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시험공부하느라 뒷날 학교 수업은 소홀히 보낸다는 말들을 들으면 교육자로서 씁쓸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교육 제도나 법률을 만들어도 현실적으로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다양한 양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하물며 줄넘기 수행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줄넘기 과외를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학부모나 학생이 이처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대학 입시에 대한 정보 부족, 둘째, 학교와 자녀에 대한 불신, 그리고 셋째,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일 것이다.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리, 환경적 여건이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들에게는 공교육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에 1996학년도부터 ‘야간 자율학습 시간 교육방송 시청’을 의무적으로 운영했고, 2005년 경남교육청으로부터 우수 학교로 선정돼 ‘EBS 교육방송’을 통해 본교의 교육활동이 전국에 몇 차례나 방영되기도 하였다. 물론 수능 교육방송이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 우리 학교가 있는 곳은 난시청 지역이어서 교육방송 시청에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읍에 거주하고 있던 몇 명의 교사가 직접 비디오테이프로 방송을 녹화해 오면 그것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활용해 학생들은 부족 과목을 충당했다. 어려운 시절 우리 학교 학생들은 그렇게 공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오랫동안 학생들을 자리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 가르치면 당연히 성적이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없었고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한 끝에, 바로 현 입시 제도와 교육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진학부장과 함께 ‘보따리 장수’ 심정으로 학교의 교육 실적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각 대학을 다니며 우리 학교를 알리고 여러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낱 시골 고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으로 대하던 각 대학 입학처(본부)의 시선도, 치열한 노력이 쌓이다 보니 언젠가부터 바뀌었고 하나둘 그들 대학의 입시 정보를 내주었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토대로 다시 학교 교육의 밑바탕을 세우고, 학교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 비교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수업은 교사 중심보다는 학생들의 토론, 발표, 개인 프로젝트 위주로 구상하고 그렇게 학생들이 수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권장했다. 정규 시간이 끝난 후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 강좌 시간을 직접 만들고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수업을 개설하는, 소수 인원으로 이루어지는 ‘수월성 수업’을 만들었다. 각종 소논문과 학술제를 통해 학생들의 지적 잠재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인턴십프로그램을 두어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시간도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학생 중심의 교육 방식 속에서 교사는 그 전보다 자유로워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학생에게 기회와 선택을 준다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아니 그 이상 교사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사교육 시장에서 벗어난 시골, 그것도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피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는 학생들의 기상과 식사를 챙기기 위해 이른 아침 시간에 출근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3년 동안 학교와 기숙사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1명의 교사와 9명의 학생이 작은 가족을 이루는 멘토링 제도로 교사는 온전히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시험 기간이면 교무실 앞은 질문할 학생들로 붐빈다. 선생님들의 표정은 귀찮다거나 짜증스럽지 않다. 우리 학교의 일상적인 모습이고 당연한 풍토이기 때문이다. 면학시간이면 교실과 복도에서 자유롭게 앉고, 실내보다는 실외 토크방에서 공부하는 것이 일상생활이다. 언젠가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가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가 놀라워한 적 있었다. 복도에 줄줄이 앉아 책을 보거나, 개인 사물함 위에 문제집을 얹어 놓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감독하는 교사 하나 없이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며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나라 학교 모습 같지 않다며 감탄하다 돌아갔다.

공교육은 절대 어렵지 않다. 학생을 존중하고 잠재능력을 믿어 주면 된다. 조급하게 당장의 결과와 실적을 위해 학생들을 닦달하고 그들의 잠재 능력을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고 믿어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는 반드시 교사의 희생과 헌신, 노력이 필요하다. 교사는 노동자도 아니요, 월급쟁이도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교직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 위주의 대입 전형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는 가르치는 데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교사도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부모도 배워야 한다. 사교육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버리고 학부모도 자녀의 능력치와 진로를 이해하고 입시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무조건 자녀들을 책상 앞에 앉혀 두고 “공부해!”라고만 하지 말고 ‘무엇을’ ‘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으로 이런저런 풀이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물론 사교육 시장을 없애는 것은 어렵다. 사교육도 필요하다. 다만,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태초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 닫힌 문을 열고 나가 거친 들판에 족적을 남기면 그 뒤로 다른 사람이 따르게 되고, 많은 족적이 쌓이고 굳으면 그것이 바로 ‘길’이 된다. 아무리 힘든 여정이라도 누군가 앞장서 나아갈 때 길은 열리게 된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육도 새로운 방향을 향하여 다시 문을 열고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장강대하도 작은 여울에서 시작하였듯 대한민국 남단 자그마한 시골 고교 하나가, 사교육에 멍들어 뒷걸음친 대한민국 교육의 숨통을 트이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남쪽 남해해성의 밤하늘에는 각양각색의 별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반짝이고 있다. 험난한 파도도 일고 악천후가 계속될 지라도 등대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듯, 교육의 진정한 가치인 ‘기초와 기본이 바로선 토대 위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와 양보를 서슴지 않는,어진 심성을 가진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도록, 이것이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공동체가 심혈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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